에어컨을 틀었지만 땀이 뻘뻘 난다. 여름 열기보다는 그림을 뽑아내는 프린터기 열기가 식지 않는다. 잉크를 머금은 종이가 떨어지길 기다려서는 안 된다. 가까이 가서 떨어지지 않게 받아줘야 한다. 종이가 구겨지면 다시 뽑아야 한다.
손으로 잘 받친 종이를 작업대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월리를 찾는 것처럼 잉크가 튄 자국, 잉크가 덜 나온 자국, 먼지가 묻어 잉크가 먹지 못한 자국까지 철저히 본다. 손에서도 땀이 나지만 라텍스 장갑을 끼고 봐야 그림에 손상이 안 간다. 안전이 제일이다.
끊임없이 나오는 종이를 용도에 맞게 정리해야 한다. 가게에 걸릴 포스터, 액자로 걸릴 가족사진, 나무액자로 볼 강아지 사진 등 같은 것끼리 모아줘야 한다. 특히 주의할 점, 뾰족한 종이 모서리가 다른 이미지를 긁히지 않게 해야 한다. 얇다고 큰코다친다. 조심히 쓸리지 않게 정리를 해야 한다.
칼로 재단할 이미지는 따로 모아서 직접 자른다. 외곽선이 보이지 않게 최대한 정확하게 잘라준다. 잘라낸 그림은 포장을 위해 시트지를 위에 깔고 말아 준다. 그리고 기도한다. 배달되면서 구겨지지 않기를.
A2 포스터 1장 평균 비용 7,000원. 많지도 적지도 않지만, 값만큼 잘 나오길 바란다.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냥 뽑을 수는 없다. 의뢰인을 위해서라도, 이 직업을 사랑하는 나를 위해서라도 대충은 없다. 정성을 다하며 오늘도 난 진심으로 그림을 바라본다. 끊임없이 말려오는 대충 하자는 욕망을 이겨내는 수도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