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의 보아] 중 '내 몸의 문신' 참고
내 마음엔 문신이 새겨져 있다.
어렸을 땐, 성실을 몸에 새기고 다녔다.
아버지가 알려준 나를 위한 가훈이었다.
어떤 일을 하던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이불 속에서 웅크리다가도 벌떡 일어나 학교에 등교하고,
지루해서 눈이 감기지만 맨 앞자리에서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내가 원하는 정도의 결과는 나오진 못했다.
주변에서는 내 성실함을 칭찬을 해줬다.
그러나 마음 속 아쉬움은 쉽게 지워지질 않았다.
노력한만큼 보상받길 원했다.
하지만 이미 몸에 새겨진 문신은 삶 그 자체가 되었다.
많은 걸 바라진 않게 되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일찍 오지 않아도 된다.’
배려와 권유의 말을 받아들이기엔
경청과 사양만 하게 된다.
어느 날, 내 마음의 문신에 깊은 의심을 하게 되었다.
성실이 나를 배신했기에 지금 고통받는다고 생각했다.
수십년간의 신념이 박살날 위기 속에서
나는 하염없이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은 건 그저 내 자신일 뿐.
이걸 이겨 낼 수 있는 것도 나였음을 잊었다.
다시 마음 속 문신의 이유를 찾았다.
어느 상황이 되었던 마음을 행동으로 움직은 건
바로 나였다.
주체를 찾은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제는 의심하지 않는다.
혈관을 도는 피처럼
자연스럽게 나를 구성한다.
어느 것도 바라지 않고,
어느 것도 받을려고 하지 않는다.
내 마음 속 문신은 흘러가는 시간처럼
인생을 대하는 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