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르테오 Aug 05. 2023

그 여행

 할아버지는 다가가기 힘든 분이었다. 나이가 들고, 허리는 굽으셨지만, 그림자에서도 느껴지는 엄중함을 갖고 계셨다. 손자뿐만 아니라, 자식들과 부인에게도 엄하셨던 할아버지. 같이 있기 어려워 늘 할머니 품에 안겼었다.


 팔순이었던 할아버지와 함께 일본으로 온 가족이 여행을 갔다. 20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처음 해외여행을 갔었다. 여행안내자분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란다. 할아버지가 타지 음식을 잘 드실까 걱정했는데 불평 하나 없이 그릇을 싹 비우셨다. 여행을 다니며 늘 웃으셨던 할아버지. 15년간 보지 못했던 미소에 오히려 내가 적응을 못했었다. 할아버지도 즐거움을 느끼시는 분인 걸 같이 다니며 깨달았다.


 여행 마지막 밤, 온 가족이 할아버지 방에 모여 소회를 나눴다. 어디가 좋았었는데, 거기가 맛있었는데 하며 이야기꽃을 피웠었다. 할아버지 소감을 마지막에 듣게 되었다. 마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훈화 같은 얘기를 죽 늘어뜨리셨다. 할아버지 얼굴을 보며 경청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한 귀를 흘렸었다. 빨리 끝나길 바랐다.


 “나, 지금 참 무섭다.”


 예상치 못한 말씀에 가족들은 동요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셨다. 80년 인생 중 가족들과 함께 한 이 순간이 너무 아쉬우셨다. 좀 더 일찍 갈 걸, 좀 더 건강했더라면 이 즐거움을 너무 늦게 받으셨다. 아버지로서 가져야 할 엄함을 위해 내면의 아픔을 묻어두셨다. 자식들과 함께한 시간이 얼마 안 남아 후회스러워 오열하셨다.


 “늦지 말고, 지금 행복해야 한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회는 나를 포함한 모든 가족 구성원에게 눈물을 흘리게 했다. 할아버지를 더 살갑게 대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했다. 오히려 다가오는 할아버지를 멀리했던 순간이 후회스러웠다. 구슬피 우는 소리만이 남은 여행 소회는 가족들에게 잊히지 못할 밤이 되었다.


 얼마 후, 할아버지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 된 그 여행.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자기 죽음을 예지하셨던 할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마디를 위해 힘을 쓰셨던 것 같다. 지금은 내 곁에 안 계시지만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회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리지 말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오늘 글로써 기록해 본다.

 

 늦지 말고, 지금 행복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 마음의 문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