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를 포장하던 중, 모서리가 튀어나온 부분을 발견했다. 대형 종이 재단기가 제대로 못 자른 거다. 커터칼을 꺼내 반듯하게 조그마한 쪽을 잘라낸다. 옆에 있던 후임이 눈을 동글케 키고 바라본다. 부담스러운 시선이 멋쩍어서 왜 보는지 물어봤다.
"대리님은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자르세요?"
시답지 않은 질문이라 생각했건만 재단을 잘하기까지 2년 정도 걸렸다. 길면 길고, 적으면 적은 시간이지만 반복된 동작은 어느새 몸 안에 새겨졌다. 지금은 재단기가 있어서 자동으로 포스터를 잘랐지만 기계를 들이기 전에는 내가 손수 종이들을 자르고, 포장을 했었다. 그래서 포스터 주문이 몰려오면 하루씩 재단량을 나눠서 잘랐었다. 한꺼번에 하면 퇴근시간을 훌쩍 넘을 때가 많아 몸도 쉽게 지쳤다. 그래서 대량 포스터 주문이 오는 날이 오지 않길 바랐지만 그날을 계기로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2022년 2월, 회사에 입사한 지 2개월도 안된 시절이다. 어느 날, A2 포스터를 100장 넘게 의뢰가 들어왔다. 같은 그림으로 100장이면 인쇄하는 공정이 좀 더 빠를 수 있었지만 다 다른 이미지였기 때문에 인쇄되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목요일 오전에 퀵으로 나가야 해서 출력되는 대로 바로 재단에 들어갔다.
UV인쇄로 진행되어서 일러스트 파일을 변환하는 시간도 걸리고, 인쇄 시간도 걸리는 작업이라 시간 내에 맞추려면 인쇄가 나오는 대로 잘라야 했었다. 단순 재단이었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작업이다. 정확하게 재단선에 맞춰서 잘라야 했고, 최대한 빨리 재단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앉아서 쉬지도 못하고 인쇄되는 대로 잘랐다. 해당 의뢰 건을 제외하고도 원래 해야 되는 일도 같이 해야 해서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았다.
목요일 아침에 일찍 출근을 해서 재단을 마무리를 하고, 간지에 잘 싸서 박스에 펼쳐서 포장을 했다. 퀵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니 다리가 풀렸다. 대표님께서는 고생한 내 모습을 보시고 홍삼액을 주셨다. 앉아서 쉬면서 다시는 저런 대량 주문 건을 받기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도 재단에 미숙해서 실수가 많았었는데 덕분에 빠르고 정확하게 자를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여러 가구들과 디자인 제품들을 선보이는 박람회는 내 눈을 즐겁게 했다. 돌아다니던 도중 어딘가 낯익은 포스터가 있었다. 자세히 본 나는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놀랐다. 그날 고생했던 포스터들이었다.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포스터가 온 벽면에 붙여져 있는 모습이 감격스러웠다. 많은 관람객들이 내부를 보기 위해 줄을 서있어서 나도 같이 줄을 서며 기다렸다.
내부에 들어와서 보니 감격에 젖었다. 그날 고생했던 시간이 싹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포스터와 부스를 보며 칭찬을 하는 관람객들의 소리가 프린트 매니저로서 행복했다. 이런 좋은 경험을 드리기 위해 내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힘든 일이 들어와도 이 작품을 만날 작가와 관객들을 위해 일하니 일이 힘들지 않고 재밌어졌다. 그리고 현장에서 그 작품을 보는 것까지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잃지 않기 위해 움직이게 되는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손으로 직접 재단하는 일은 드물지만 정상적으로 재단이 되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끝에 종이가 덜 잘렸거나, 여백이 보일 때는 직접 칼로 다시 재단을 해서 깨끗하게 만든다. 특별하지 않지만 프린트 매니저로서 마지막까지 신경을 써야 된다는 걸 놓치지 않는다. 프로페셔널함이 왜 중요한지를 그날의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생각한다. 오늘의 재단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