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족은 오일머니를 좋아했다.
반짝이 슈트에 빽(백)바지, 짙은 선글라스를 쓴 채 거들먹거리며 팔자걸음 걷는 쿠웨이트 박. 70년대 중반 남편은 오일달러를 벌겠다고 중동지역 사막 나라로 떠나고, 외로움을 이겨내려 열심히 살아가는 가정주부에게 접근해 남편이 보내준 땀에 젖은 오일달러를 갈취하는 TV 드라마 속 제비족 모습이다.
빈곤했던 살림이 오일달러로 여유가 생기자, 외로움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동파견 근로자 부인 사이에 사교춤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춤바람 이야깃거리가 심심찮게 돌았다. 이때쯤 ‘쿠웨이트 박’ 드라마가 등장했다.
옆방 새댁 남편도 사우디 건설현장에 파견된 중동 근로자였다. 그는 전라도 벌교에서 무작정 상경하여 도봉동 석재공장에서 석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단단한 화강암을 망치로 두드리고, 정으로 쪼아 건축자재를 만드는 일을 했다. 거북이 등껍질같이 거친 손등은 망치로 내리쳐 부상이 끊이질 않았으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남편이었다.
어느 날 목돈 벌어 집을 장만하겠다며, 임신한 아내를 홀로 남겨두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 새댁은 홀로 아이를 낳았고, 키우느라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우리 식구들도 새댁이 안타까워 아이를 돌봐 주곤 했다. 남편이 꼬박꼬박 보내주는 돈으로 형편이 나아지는 듯 보였다. 1년 반 정도 지나자 새댁은 아기를 우리에게 부탁하고 외출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어느 날엔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고 외박하는 날도 있었다. 골목아주머니들 사이에선 새댁에 대한 이런저런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애 엄마가 젊은 남자랑 같이 가던데”
“말쑥하게 생긴 남자랑 맥주 마시는 걸 봤어.”
어머니는 고생하는 남편 생각해 열심히 저축하고, 아기도 잘 키우라며 수차례 충고를 했으나, 외모 가꾸고 사치하는데 신경 쓸 뿐 살림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느 날, 새댁은 잠시 다녀오겠다며 아기를 부탁하고 나가더니 돌아오질 않았다. 전에도 그런 경우가 있던 터라 하룻밤 자고 들어오겠지, 기다렸으나 이틀 사흘이 지나도 새댁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황당하게 아기를 떠안은 꼴이 되었다. 아기는 엄마를 기다리는지, 보채고 심하게 울어대는 통에 어머니는 꼼짝 못 하고 아기를 돌봐야 했다.
“이 산목숨을 어쩌면 좋으냐…?”
새댁은 동네 소문처럼 춤바람 나서 집을 나간 것 같았다. 외모가 빼어난 것도, 사교성이 좋은 것도 아니고, 아기 키우며 살림만 하는 펑퍼짐한 새댁이 춤바람 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드라마 이야기가 우리 옆방에서 벌어졌다. 바람은 어느 구석이든 공간만 있으며 파고들었다.
갑자기 떠맡겨진 아기를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새댁 친정이나 친척의 연락처도 모르던 터라, 사우디에 나가 있는 아기 아빠에게 연락하는 방법이 유일했다.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어머니는 편지를 쓰다 말고 많은 고민을 했다. 편지를 보내고 난 다음 새댁이 들어오면 어떡하나? 신랑이 알게 되어 가정파탄만 일으키는 건 아닐까? 편지를 받고도 속히 들어오지 않으면 아기는 어찌해야 하나? 걱정거리가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아기를 맡아 기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유를 사다 먹이고, 기저귀 빨래도 해야 하고, 보채면 달래고 재워야 하고, 동네라도 데리고 나가면 손주 냐며 묻는 통에 일일이 설명하는 일이 제일 곤란하다.
며칠을 고민하다 편지를 보냈다. 1주일 후 답장이 왔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최대한 빨리 귀국하겠다고 했다. 그 사이 새댁이 들어올까 봐 또 다른 걱정을 해야 했다. 편지를 보낸 것이 잘못은 아닐까?, 고자질한 것 같다며 걱정에 걱정이다.
한 달 정도 지나 남편이 귀국했다. 까맣게 그을 린 얼굴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은 사우디 태양만큼이나 배신감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기를 넘겨받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동안 아기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흐느끼는듯하더니 아기와 동시에 울음을 터트렸다. 굵은 눈물방울이 아기 볼에 떨어졌다. 울음소리가 골목에 퍼지자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둘 모여들어 수군대기 시작했다. ‘애 엄마가 춤바람 나서 애도 버리고, 돈도 몽땅 챙겨서 도망갔대, 아이고! 애가 뭔 죄야, 쯧~쯧 불쌍하기도 해라.’ ‘아니 주인집 할머니는 뭔 고생이고 난리래.’
다음 날 아기 아빠는 편지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귀국하는 바람에 항공료 하고 위약금을 물었고, 송금한 돈은 아내가 몽땅 찾아가 회사에 남은 돈이 없어 조금밖에 넣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아기를 시골집에 맡기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몇 달 지난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조그만 과일 봉지를 들고 찾아왔다. 벌교에서 왔다는 할머니는 옆방에 세 들어 살던 애 할머니라고 했다. 아기 소식을 묻자, ‘우리가 기르고 있는데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올라왔어요. 며느리 잘못 들어 집안이 망했어요.’ 하더니 울기 시작했다.
아들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들이 내려와 한 달여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애 엄마를 찾아 가만두지 않겠다며 집을 나갔어요. 몇 달째 소식이 없더니, 며칠 전 편지가 왔어요. 영등포 교도소에 있다고 해서 면회를 다녀오는 길이에요. 무슨 죄를 짓고 감방에 가게 된 건지? 애 엄마는 찾았는지? 통 대답을 하지 않아요. 다만 오래 걸릴 것 같다고 애를 잘 길러 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하며 또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월세 보증금을 찾으러 온 거였다.
새댁이 아기에게 남긴 거라곤 전과자 아빠와 월세 보증금 오십만 원이 전부였다. 쿠웨이트 박이 웬수고, 돈이 웬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