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이 피었습니다
동백꽃이 피었는데 보아 줄 사람이 없다
베란다에 붉은 동백꽃이 피었다. 여수 여행 중 해안 절벽에서 홀로 피었던 아름다움에 반해 아내가 구입해 온 묘목에서 꽃이 핀 거다. 묘목은 고향 여수 앞바다의 바닷바람을 그리워한 탓일까? 우리 집 화분에 적응하는데 힘들어했다. 아내는 정성으로 보살폈다. 이 년이 지나도 잎눈만 나올 뿐 꽃망울이 생기질 않아 속을 태웠다. 그랬던 동백이 작년 겨울 처음 꽃망울이 생기더니 삼 년 만에 붉디붉은 한 송이가 피었다.
3월이면 오동도는 동백꽃 천지다. 꽃 맞이를 위해 여수행 열차에 올랐다. 엑스포 역에서 오동도까지 방파제 따라 아침 길을 재촉한다. 여행하기 좀 이른 봄이라 여수 바닷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우리를 기다릴 동백을 기대하며 찬바람을 떨쳐낸다. 올해 동백은 해풍을 잘 받아들인 탓일까 유난히 붉다. 해무와 바람을 몸으로 받아내며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기다리다 자신을 드러낸다. 꽃눈을 가슴에 안고 기다리다 봄 내음 품은 바닷바람 살랑거리면 서서히 꽃잎을 연다. 우린 그때를 놓칠세라 오동도를 찾아간다. 반가움에 붉은 꽃에 코를 비비고 입맞춤을 한다. 노란 꽃술이 수줍은 듯 혀를 내민다.
때를 맞춰 왔음에도 기다림에 지친 몇몇은 바닥에 뒹군다. 생을 마감할지언정 화려함은 포기할 수 없었던지 통째로 떨어져 붉은 꽃잎을 유지하고 있다. 미안함에 꽃송이 몇 개를 주워 들었다. 아내는 한 움큼 꽃송이를 주워와 사랑을 꿰고 있었다. 구불구불 튀어나온 뿌리 사이에 하트모양 두 개를 만들어 동백꽃에 사랑을 전해주고 있었다.
여수에서 동백꽃만 보고 오는 건 반쪽 여행이다. 맛집 여행을 포함해야 제대로 다녀왔다고 할 수 있다. 찬 바닷바람으로 움츠려진 몸을 풀어주는데 ‘통장어탕’ 만한 것이 없다. 시래기에 굵은 갯장어 토막 넉넉히 넣고 푹 끓여낸 장어탕은 여수 어시장 사람들도 보양식을 챙길 정도다. 볼품없는 어촌식당이지만 맛은 최고라는 신월동 수협 공판장 근처에 있는 ‘상아식당’을 찾았다. 줄 서기가 어색하지만 그 집에선 필수다. 이마에 송골 맺힌 땀이 장어탕 맛의 평가다.
동백꽃 여행은 금오도 이어졌다. 여수 여객선 터미널에서 뱃길로 사십여 분 남짓이며 도착하는 섬이다. 동백꽃 터널이 있다 하여 찾았다. 그 섬에는 비렁길이라는 아름다운 둘레길이 있다. 섬을 한 바퀴 도는 5개 코스로 나뉘어 있다. 우린 동백꽃 터널이 있는 3코스에서 시작하여 1코스까지 역순으로 걷기로 했다. 첫날은 금오도 끝자락 심장리 조그만 어촌마을에 있는 하얀 펜션에서 묵기로 했다. 창문을 통해 바다가 맞닿은 출렁이는 물결이 보이고,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배를 타고 있는 듯 해안가와 인접한 펜션이다. 많은 손님이 북적이는 곳도 아니고 비렁길을 걷는 사람들이 간혹 찾는 한적한 펜션이다. 식당이 없어 펜션 주인인 노부부의 집밥으로 대신해야 한다. 어머니의 정성으로 차려주는 밥맛이다. 직접 잡았다는 놀래미 구이, 소라 무침, 방풍나물 된장국…. 속 편한 밥상이다. 노부부와 겸상하며 나누는 이야기도 금오도 여행의 행복이다.
다음날 주인집 경운기 트럭을 타고 학동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직포까지 3.5 킬로미터 구간이 비렁길 3코스다. 동백꽃이 아름다운 코스다. 해안 절벽과 숲, 바람이 어우러진 섬 여행의 모든 걸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길이다. 아내와 걷기에 좋은 두 시간 코스다.
그곳의 동백꽃은 오동도와는 달랐다. 오동도가 잘 가꾼 꾸며진 공원 느낌이라면 금오도 동백은 야생초에 비견되는 자연상태다. 특별할 곳도 없는 이곳저곳 요소요소에 제멋대로 자라다가 해안 절벽과 어우러지고, 바람과 어우러진 동백꽃 숲이다. 쉼터 옆에는 걷는 이의 사랑을 차지하려는 듯 군락으로 피어 화려함을 뽐낸다. 해안 절벽 벼랑에 끼인 채 홀로 피어난 동백은 유별나게 붉은색이 진하다. 해풍을 머금은 꽃술에는 영롱한 물방울이 맺혀있어 더욱 노랗고, 잎은 언제 씻고 동백기름 발랐는지 금방 빗질한 여인의 머리칼처럼 반지르 하다.
점심 먹기엔 좀 이른 시간이라 2코스인 직포에서 두포에 이르는 3.5 킬로미터를 더 가기로 했다. 분위기가 달랐다. 3코스가 절벽, 파도 부딪치는 거친 느낌에 화려한 동백꽃이 중화시켜 주는 느낌이라면 2코스는 편안한 해안가 어촌마을을 지나는 휴식 구간이라는 느낌이다. 체력보충, 허기진 배 채우며 잠시 쉬어갈 시점이다. 식당을 미리 알아두긴 했으나 주인이 없다. 마을 수소문 끝에 식당 아주머니를 만났다. 메뉴는 하나 선택권이 없다. ‘방풍나물 전복 칼국수’. 방풍나물은 이곳에서 가장 흔한 나물이고 수입원이라며 아주머니 나물 예찬이 끊이질 않는다. 풍 예방에 좋고, 어지럼증 치료, 눈에 좋고…, 동의보감에 나와 있다는 등 한의사 수준이다. 칼국수엔 겉절이, 배추 반포기를 커다란 양푼에 담아 즉석 양념 쓱싹이다. 방풍나물의 씁쓸한 맛에 독특한 향이 어우러진 칼국수는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이다. 거기다 더해 상머리에 앉아 아주머니 손으로 주-욱- 찢어 주는 겉절이는 이- 맛이지!
아내는 동백을 키우겠다며 금오도에서 묘목 두 그루를 샀다. 해안 절벽에서 보았던 동백꽃을 기대하며 화분에 심었다. 금오도의 바람을 그리워한 탓일까? 동백은 비실대며 우리 집 베란다에서 적응하는데 힘들어했다. 아내는 정성으로 보살폈다. 2년이 지나도 꽃망울이 생기질 않아 아내의 속을 태웠다. 그랬던 동백이 작년 겨울 꽃망울이 생겼다. 3년 만에 붉디붉은 동백꽃 한 송이가 처음 피었다. 활짝 핀 화분을 들고 은하수 공원묘지를 찾았다.
“여보! 동백꽃이 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