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번뇌에서 해탈하고자 또 골프장을 찾아간다.
기분이 좋다. 친구들과 골프 약속이 있는 날이다. 처음 필드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매번 집을 나설 땐 설레고 각오를 다진다.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각오와 달리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결과 때문이다. 일반 스포츠는 대부분 경기시간 종료 후 승패를 알지만. 골프는 장갑 벗을 때 승패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골프 실력이 쌓여야 한다.
골프 시작하면서 첫 난관은 ‘백돌이’를 벗어나는 일이다. 백 타를 넘지 못하는 초보 골퍼를 말하는 애칭이다. 쉽사리 백돌이를 벗어나지 못해 골프를 포기하려 갈등을 겪었다는 사람이 많다.
그때가 골프에 대한 열정은 최고조다. 제멋대로 날아가는 골프공을 도저히 통제할 수 없어 화를 낼 여유조차 없다. 날아간 공 찾아 헤매느라 기진맥진이다. 경기 끝나고 피곤함에도 연습장으로 직행한다. 자유분방 통제 불능인 골프공에 대한 분풀이 겸 원인을 분석해 볼 참이다. 운동신경 좋다고 자부했던 자신감이 무참히 짓밟힌 것 같아 자존심 회복의 일환이다. 장갑 벗을 때의 의미를 알 때까지 백돌이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난관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백돌이 벗어나 물이 오른 보기 플레이어(90타 수준의 골퍼)는 십팔번뇌를 경험하게 된다. 이 번뇌는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화두다. 이 십팔번뇌(十八 煩惱)는 육근(六根)에 속하는 눈, 귀와 육진(六塵)에 속하는 감각이 작용하여 경험하게 된다. 경기하는 내내 육근과 육진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때론 좋고(好), 나쁘고(惡),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운(運)발이 이어지면서 겪게 되는 번뇌다.
첫 홀 티 박스에 올라가 각오를 다지며 티에 공을 올려놓는다. 목표지점을 바라보는 순간, 고요함과 긴장감이 엄습해 온다. 멀리 똑바로 보내려는 욕심이 발동한다. 한두 번 연습 스윙으로 긴장을 풀어본다. 욕심을 채우려는 행위다. 허리 각도며 미세하게 발 넓이도 조절한다. 회전력을 얻어 최대 힘으로 클럽을 휘두른다.
“탕-”
외마디 금속성 굉음을 뱉은 작은 공은 딤플에 휘감기는 회오리바람 소리를 내며 상승기류를 만들어 허공을 가른다. 이백 미터쯤 똑바로 날아가던 공은 공기저항에 회전력이 발생해 오른쪽으로 급격히 휘더니 경계선 밖에 떨어졌다. OB다. 욕심이 물거품 되는 순간 “아-아-” 탄식에 가까운 번뇌를 느낀다.
“또 슬라이스네! 머리를 들었나? 스위트스폿에 맞히질 못했네!” 아쉬운 반성을 한다.
두 번째 홀 드라이버와 아이언샷이 잘 맞았다. 그린 위에서 퍼팅만 잘 마무리하면 될 상황이라 기대치가 높아진다. 홀컵과 2 미터 남짓, 친구의 공은 이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부러움과 흐뭇함이 그린 위에 교차한다. 저마다 경사를 살피고 발걸음으로 거리도 가늠해 본다. 꼭 넣으려는 욕심에 긴장감이 최고조로 올라간다. 어-!
잘 굴러가던 공은 홀컵을 스치듯 지나쳐 버렸다. 퍼팅 실수다. 퍼터를 팽개치고 싶다. 퍼터한테 분풀이로 번뇌를 벗어나고픈 갈등이다.
이런저런 상황이 매홀 끝날 때마다 인내심을 시험한다. 샷 한번 할 때마다 변하는 감정 기복을 극복하고 이겨내야 한다. 골프를 ‘십팔번뇌’라고 하는 이유다. 골프를 끝내면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소리가 있다.
“타수는 잔디 속에 숨어있어!”
만족하지 못한 타수에 대한 변명이다. 잘 치다가 18홀 중에 실수하는 홀이 꼭 생긴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골프는 장갑 벗어봐야 안다고 말한다. 십팔번뇌로 인해 장갑 벗을 때도 만족하는 골퍼는 없다.
십팔번뇌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오르겠다고 골프장을 찾아가는 것이 골퍼의 숙명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