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0 삼척은 이런 곳이에요
별이 많이 보이고 하천이 흐르는 곳에서 잤다.
불도 하나 없는데 별빛에 비춰 물 흐르는 것이 보였다. 졸졸졸 흐르는 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새벽이 훌쩍 넘은 시간에 잠든 것 같다. 풀벌레 대신 개구리가 울어대는 밤이었다.
아침에도 여전히 하천이 흐른다.
물이 흐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아진 요즘 이 곳의 하천은 아직 건강하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제 최선을 다해 흐르지만 물에 사는 것들을 밀어내지 않는다. 힘 자랑하듯 세차게 흐르는 대신 많은 것들을 품기 위해 천천히 흐르는 이 모습이 좋았다. 발을 담그니 보드랍게 감싸는 느낌이 든다. 겁도 없이 다가온 송사리 몇 마리가 주위를 맴도는 모습이 귀여웠다. 내 마음도 이 풍경들을 품기 위해 천천히 흐르는 아침이었다.
삼척해변에서 맹방해변까지 진행중인 공사현장을 피해 내려온 이 마을은 다행히도 삼척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꺠끗한 물이 곳곳에 흐르고 건강한 나무가 자라고 노란 벼들이 익어간다. 가을볕도 이곳을 좋아하는지 오래도록 선명하게 머물렀다.
그 높이를 알 수 없는 하늘이 파랗게 빛나다가도 더 이상 쳐다보지 말라는 듯 눈이 멀 듯한 빛을 내보낸다. 가을 날씨가 이런 것이라면 시간을 멈추는 한이 있더라도 온통 가을 뿐인 곳에서 살고 싶다.
한참을 근덕마을의 풍경에 취해 있다가 한국의 나폴리라는 장호항에 가기로 했다.
원래 한국의 ooo 이런 곳은 잘 믿지 않는데(관광청의 속내가 보인달까) 이 좋은 날씨에 스노쿨링을 하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아 길을 나섰다.
가는 길목 작은 마을에 위치한 신흥사에도, 내평 계곡에도 들렀다. 온전히 날씨 덕분이라고 하기에는 이 장소들은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의 레벨이 너무 높다. 빌딩 높이 만한 거대한 은행나무가 길목을 지키고 그 위로 새들이 날아다닌다. 살랑사랑 시원한 바람에 코스모스 향도 담겨있다. 다 익어 터져버린 지독한 은행열매의 냄새도 향기로운 것만 같았다.
이런 곳에 작은 나무집 지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을 산책하다가 여기도 겨울에는 많이 춥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떠났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와야 할 장소 1순위로 저장하는 것도 잊지 않으며.
10분 정도 운전을 하고 장호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10분 전 지나온 환경과는 왜 이리 다른건지? 당황함이 앞섰다. 물론 아름다운 해변과 영롱한 빛은 같지만 사람들이 어마어마하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는지 평생 볼 법한 수의 사람들을 이곳에서 다 본 것 같다. 평소라면 이 수에 압도당해 길을 돌아 나갔겠지만 에메랄드 빛 장호항을 보니 포기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투명카약을 타려고 줄을 섰을 뿐이다.
급식시간에 일분 일초라도 빨리 점심을 먹겠다는 학생의 자세로 재빨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기암괴석이 많은 곳이었는데 바다 속이 생각보다 건강하다. 1km도 안 되는 주변에서 아주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을 봤다. 어랭이, 벵에돔, 숭어, 전갱이, 멸치 등 떼로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이 귀여워 쫓아다녔다.
그리고 뜨끈한 바위 위에서 휴식.
아주 열과 성을 다해 놀다가 입이 새파랗게 질릴 때 쯤에야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를 딱딱거리고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밖에 나오니 아쉬움에 자꾸만 고개를 돌렸던 것 같다. 늦가을이 오는 길목에도 마지막 물놀이를 즐기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