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을 본 관객수가 천만이 넘었다. 올 들어 최대의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가 된 셈이다. 런닝 타임 2시간 반 동안 잠시도 한눈을 팔지 못할 만큼 영화 자체로도 잘 된 편이다. 나는 영화는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남들이 좋다 하더라도 나에게 재미를 주지 못하면 영화관에서 종종 조는 편인데 <서울의 봄>은 그런 면에서도 합격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불편한 감정을 떨치기가 힘이 들었다. 비극으로 끝난 영화의 결말을 뻔히 알고 있는 마당에 영화가 어떻게 그리고 어디로 전개될 지가 궁금하기 보다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아쉬움만 컸기 때문이다. 마침내 영화가 끝났을 때는 이런 아쉬움이 분노로 이어지는 느낌도 들었다.
전두환으로 분장한 배우 황정민의 연기는 훌륭했다. 거의 광기어린 권력의 집착을 잘 보여주었다. 비록 악인의 역할을 맡았지만 그는 그의 소임을 아주 잘 보여주었다. 그가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면서 낄낄 거리는 장면은 영화 조커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당시 계엄사 사령관 정승화는 전두환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했으면서도 그를 충분히 견제하지 못했다. 영화에서는 그나마 수경사 사령관에 장태완을 임명하면서 전두환을 견제하도록 역할을 주는 정도였다. 한 쪽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서 권력을 장악하려고 광분했지만, 다른 쪽에서는 그저 통상적인 갈등 정도로 인식한 안이함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장태완이 전두환을 제압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지만 사실 부임한지 20여일 뿐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관이나 부하들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부족이었다. 이 부분이 <서울의 봄>을 보면서 가장 아쉽게 느껴졌던 장면이다. 야전에서 단련된 그가 20여일이 아니라 2달만 일찍 임명이 됐어도 12.12의 향방은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2. 12 군사반란이 실패할 수 있었던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진압부대 동원 등을 여러 차례 시도했고, 대통재 역시 재가를 늦추기 위해서 적지 않게 애를 쓰기도 했다. 그가 어쩔 수 없이 재가를 할 때 그 시간을 적은 것은 후세에 자신의 노력을 남기길 위해서 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인 국방장관이 반란 세력 편에 선 것이 결정타였다.
<서울의 봄>은 정보력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보안사 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합수부장까지 맡으면서 보안사의 방대한 정보력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전두환의 행운이자 한국 정치사의 비극이었다. 그는 이런 정보력과 군부내 하나회 조직을 이용해서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 시대를 경험한 세대의 입장에서 볼 때 계엄치하라 12.12 반란 사건에 대해서는 짦막한 보도 뿐이 나오지 않았다. 한강 다리가 막히고 부대 이동에 따른 탱크 소리가 서울의 밤을 진동했지만 누구 하나 그 실체를 밝히지 못했다. 그저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이 일방 통행으로 전달해준 기사만 짧게 보도한 언론의 잘못이 크고, 오로지 박정희 사후 정국을 낙관적으로만 보았던 김대중, 김영삼을 위시한 민주 세력들의 정보 부재의 과오도 크다. 이러한 정보 부재는 5.17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5.18 광주 사태가 벌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전두환이 실세라는 것은 시위에서 나온 구호에서도 드러났지만 여전히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고, 군사 반란에 성공한 조직의 목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이 세력은 의도적으로 학생들의 데모를 유도하고 부추긴 면이 컸다. 그 당시 대학생들은 서울의 봄에 대한 낙관적 기대에 들떠 있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것은 야당을 위시한 민주 세력들도 거의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학살당한 것은 정보부재에 따른 실패의 필연적 결과였을 것이다. 현실 정치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 마디로 학생운동권이나 야권 그리고 민주화 운동 세력들은 반란에 성공한 군부에 비해서 너무나 무지했고 무능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것이 아쉽고 화가 난 것이다. 왜 그때 우리는 그것을 몰랐을까? 이러한 무지와 그에 따른 죄책감은 80년 대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런 무지와 무능에 빠졌을까? 서울의 봄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너무 커서 였을까? 아니면 정권에 대한 탐욕이 커서 정작 해야될 일을 잊어서 였을까? 때문에 분노는 전두환을 위시한 군사 반란 세력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에 대해서도 컸다.
영화 <서울의 봄>은 당시 민주화를 열망하던 사람들이 놓치고 있었던 부분을 잘 보여 주었다. 그저 역사의 한 장으로 사라질 뻔했던 사건들을 다시 소환해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주었고, 이런 역사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던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 정치사의 비극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에서 계몽적 역할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