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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정치교육

by 이종철

드라마 공연을 오늘 날 우리가 예술로만 생각하지 않듯, 그리스인들이 비극 공연을 볼 때도 순전히 예술적 차원으로만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비극의 공연은 폴리스 시민들의 열호와 같은 환호를 받았고, 그리스 시민들은 이 비극 공연을 보면서 공감과 공포를 느끼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기술했듯, 비극은 연민을 통한 카타르시스 효과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여러 측면의 극적 효과를 통해 비극 공연은 당대 그리스인들의 사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한 효과 중의 하나가 비극이 담당한 정치교육의 역할이다. 비극은 폴리스가 당면한 문제를 보여주고, 시민들이 공동의 문제 의식을 갖고 해결을 위해 결속하고 협력하는 하나의 학습의 장이 되기도 했다. 3대 비극 시인 중의 한 사람인 아이스퀼로스는 직접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영화나 드라마는 그리스인들이 열광하던 비극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이 즐겨 보는 영화 역시 그리스 인들의 비극처럼 정치교육을 대신할 수 있을까? 영화가 현실을 밑바탕으로 현실을 재현한다 하더라도 현실과 똑같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술 작품은 현실을 예술 자체의 논리에 따라 재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현실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일정한 가치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정서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영향은 관람객들의 정치 의식이나 판단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영화 자체가 정치 교육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천만 관중을 동원한 한국 영화들은 역사물이나 사회물인 경우가 많다. 영화 <암살>은 일제 시대 독립군의 저항을 그렸고, <명랑>은 1597년 임진왜란 당시의 명랑 해전을 그린 것이다. 한국의 광부들이 지옥같은 탄광으로 강제 동원된 현실을 그린 <군함도>도 그렇고, 광주 사태에서 죽음의 사선을 넘은 택시 운전사를 그린 <택시 운전사>도 불행했던 역사적 현실을 다루었다. 이런 서사를 다룬 영화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최근에 개봉되어 천만 관중을 넘어선 <서울의 봄>과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그린 사극 <노량>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영화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현실 문제를 다룬 역사물이고, 동시에 영화 불황기에도 대부분 관람객 천만을 동원하는 데 성공한 영화라는 점이다.


이들 영화는 대부분 역사 문제와 정치 문제와 관련해 대중들의 공감을 유도할 뿐 아니라 그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판단을 유도하기도 한다. 따라서 현대의 리얼리즘 영화는 그 자체로 역사의식과 정치의식의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암살>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친일파 암살 작전을 다룬 영화이다. <암살>은 1932년 3월에 실제로 진행되었던, 조선 총독 우가키 가즈시게의 암살 작전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암살>은 타의에 의해 해방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친일파가 득세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찰 고위직으로 변신한 대표적 친일파 염석진을 사적으로 제거를 한다. 이것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친일파가 득세함으로써 스스로 친일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정의를 세우기 위해 사적으로 보복할 수도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관람객들에게 큰 공감과 함께 대리 만족을 주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1979년 유신 독재의 화신 박정희가 궁정동에서 살해를 당한 이후 정국의 혼란기를 틈타 전두환이 하나회라는 군부 내 사조직을 이용해 권력을 찬탈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12.12 군사 반란 사태는 이미 40여년 전의 시대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는 거의 모르는 역사이거나 간접적으로 희미하게만 알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서울의 봄>은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 정치사의 왜곡된 측면을 젊은 세대들에게 계몽적으로 가르쳐 주기도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단순히 흥미 위주로 보는데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군부 반란을 일으킨 세력들이 대통령을 둘 씩이나 배출하면서 여전히 호의 호식을 하고 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분노를 터트렸다고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영화는 단순히 도락의 차원이 아니라 역사와 현실의 진실을 알리고, 올바른 정치의식을 심어주는 학습 도구의 역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이러한 교육적 기능은 한국처럼 극도의 진영논리로 분열되어 있는 상태에서 더 큰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현대 한국인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비극에 열광한 이상으로 역사물과 시대물에 열광을 하는 편이다. 이것은 지난 한국의 역사가 그만큼 고통과 고난으로 얼룩져 있음을 반증하는 증표이다. 이런 역사의 아픔과 현실의 갈등이 지속되는 한 시대와 현실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는 끊임없이 대중들의 좌절된 욕구를 대리 만족시켜 주고 그들의 상처받은 정의감을 채워줄 수 있는 강력한 도구 역할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교육은 자발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타율적이며 의식적인 사회주의의 정치교육 보다 훨씬 효과가 클 것이다. 영화가 단순히 정신적 소비물에 그치지 않는 긍정적 효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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