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 해를 되돌아 보며

by 이종철


이제 올 해도 이틀을 지나면 또 다시 새로운 해로 넘어간다. 물리적인 시간의 진행에 새롭다는 의미가 무색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시간의 진행을 대하는 인간의 의식과 태도는 얼마든지 새로워 질 수 있다.


올 해는 무엇보다 지난 3년 동안 전 세계인들을 괴롭혀 왔던 코로나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갖는다. 코로나가 엄습했을 때 처음 1년 간은 완전히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정체를 알지 못하는 괴물 바이러스에 대해 전세계인들, 특히 이른바 선진국으로 자처하던 유럽과 미국인들이 특히 심하게 당했다. 바이러스의 시작은 중국이었을 지 모르지만 그 효과는 유럽과 미국에서 크게 나타났다. 때문에 유럽은 중세의 페스트나 20 세기 초 스페인 독감 이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오만한 트럼프 체제 하의 미국에서 미국인들은 훨씬 더 많이 죽어갔다. 그 당시 미국 뉴욕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아내의 친구가 두려움으로 울면서 하던 이야기가 아직도 귓전에 선하다. “코끼리만한 덩치의 미국인들 시체가 산을 이루었지만, 그들을 그냥 쓸어 담아 거대한 웅덩이에 파묻고 있어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코로나 바이러스도 호모 사피엔스의 뛰어난 적응력과 숙주의 소멸 자체가 바이러스의 생존에 마이너스라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공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갔다. 아직도 코로나에 걸리는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영향은 독감 수준을 넘지 않는다. 이런 상태라면 새롭고 강력한 변종이 나타나지 않는 한 크게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올해 나는 <학술 연구재단>에 제출하는 논문 ”헤겔 <정신현상학>에서 의식과 언어의 관계‘를 썼고, 다석 유영모와 관련해 ”다석 유영모의 사상과 비판“이란 논문도 썼다. 후자는 내가 한국철학과 동양사상을 공부하면서 쓴 첫 번째 논문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1차 자료를 충분히 숙지 하지 못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11월 초에 그동안 여기 저기에 썼던 글들을 모아서 <철학과 비판>(수류화개, 2021)에 이어 에세이 철학에 관한 두 번째 책으로 <일상이 철학이다>(모시는 사람들, 2023)을 출판했다. 이 책은 최근의 나의 생각을 반영했다기 보다는 과거를 청산한 의미가 커서 후련하다는 느낌을 준다. 6월에는 <문명의 위기를 넘어>(학지원, 2023)을 공저로 냈고, 9월에는 “테마로 읽는 <정신현상학>” 원고 155매를 써서 <소요서가>에 보냈다. 서양철학 고전들을 각 방면의 전공자가 소개하는 책으로 내년에 출판한다. 내가 2022년 5월에 네이버와 프레미엄 서비스를 계약한 이래 14개월 동안 무려 140여 편의 글을 썼다. 한 달에 평균 10편 정도 썼고, 1편에 원고지 15-25매를 썼기 때문에 그 분량이 적지 않다. 이 글은 <에세이철학과 선>, <에세이철학과 글쓰기>, <청소년을 위한 서양 철학사>, <그대에게 가는 먼길>이라는 책으로 나누어서 각각 출판을 하려고 한다. 2024년에 이 작업을 한다면 에세이철학과 관련해서 나의 생각과 입지점을 좀 더 분명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올해 꼭 시도해보려고 했지만 미처 못한 일중에 하나가 외국의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일이다. 지금까지 써 왔던 글들 중에 외국 독자들의 구미에도 맞을 법한 글을 선정해서 1차 번역도 해 놓았다. 이글들을 전문가의 손을 보아서 올 해는 반드시 외국 출판사에서 출판할 것이다. 이제는 일방적으로 외국의 책들을 번역만 할 것이 아니라 외국으로 우리의 책들을 수출해야 할 때이다.


내년에는 지금 쓰던 식의 단편적인 글을 좀 더 확장해서 중편 형태의 글을 써보고 싶다. 텍스트가 홀대 받는 시기에 지독하게 이 텍스트에 나의 존재 이유를 두고서 더 길게 쓰고자 한다. 그리고 내년에는 책상 앞에서만 아니라 바깥 활동도 좀 늘리고, 유튜브와 같은 공간을 활용해보고자 한다. 이와 관련해 준비를 많이 해두었다. 처음 하기가 쉽지 않지만 일단 시작하면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스개 소리로 90살까지 야전에서 현역으로 뛰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 주변의 동료들은 이제 책은 그만 읽고 음악이나 그림 등 다른 예술을 공부하면서 취미 생활로 전환하겠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게 변신을 한 친구들도 여럿 있다. 하지만 나는 공부하는 것, 특히 글을 쓰는 것이 더욱 좋다. 피아노는 꼭 배우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쓰기를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글쓰기 처럼 경제적이고, 생산적이고, 효과적인 것을 아직 나는 경험해본 적이 없다. 글은 여행하는 것과 같아서 한 곳을 여행하면 다른 곳으로 이어지고, 그 길이 다하면 또 다른 곳으로 이어진다. 결코 끝나는 법이 없는 ‘끝이 없는 길’이 글쓰기이다. 하지만 무작위로 하는 여행 이상으로 내가 기획하고 계획한 형태로 여행도 할 수 있듯, 글쓰기도 생각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쓰고자 싶어 했던 것, 내가 써야만 할 것, 좀 더 의미있고 깊이가 있는 것 등을 중심으로 쓰고자 한다. 이런 글쓰기는 시간이 갈 수록 퇴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성장한다. 노년이 될 수록 이렇게 커지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내가 죽는 날이 나의 글쓰기도 중단하는 날이 될 것이다. 선사가 좌선하는 중에 혹은 나뭇가지를 잡고 선채로 죽듯, 나는 글을 쓰면서 죽고 싶은 것이 꿈이다.


글을 오래 쓰기 위해서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나에게는 건강이 유지된다면 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쓰기 위해서 건강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운동은 필수적이다. 열심히 근육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할 것이다. 내가 늘 애용하는 아령을 1주일에 2-3번만 해도 근육이 유지가 된다. 아령을 하면 무엇보다 힘이 생기고, 힘이 생기면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의욕과 의지가 생겨서 좋다. 이런 의지만 없다면 아무리 건강해도 의미가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화와 정치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