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읽는 친구들이 얼굴을 볼 때 한 마디 씩 하는 말이 있다. “제발 글 좀 짧게 쓰면 안되나? 너무 길어서 읽기가 부담스러워.”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바로 ‘노!’라고 답변한다. 내가 글을 길게 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나는 내가 쓴 글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다. 짧게 쓴 토막글들은 그냥 바둑의 사석처럼 버리거나 버려지기 십상이다. 누구든 자기가 쓴 글에 대해 애정을 갖기 마련이지만,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글을 짧게 쓰지 않는다. 물론 가끔씩 농담 조의 가벼운 글을 쓰기도 하지만 무언가 문제를 가지고 쓸 때는 의도적으로 길게 쓴다. 글을 길게 쓰면 그 글이 살아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글은 나중에 다시 손을 보아서 책을 만들 때 활용할 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글을 길려 쓰려고 한다.
둘째, 나는 글을 읽는이의 요구나 주문을 받고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돈을 받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요구나 주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 내 글은 읽는 이의 욕망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나의 욕망의 산물이다. 내가 쓰고 싶은 주제나 쓰고 싶은 상황에서 내 기분에 따라 글을 쓰는 것이 나의 확고한 원칙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무시하고 집요하게 짧게 써줄 것을 요구하는 무례한 친구들도 있다.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한다. “내 글을 돈 내고 읽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럴 때 친구는 무안해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권리가 있다는 표정이다. 말하자면 읽어주는 것도 선심이고, 그런 의미에서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읽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소비자 주권의 시대라 그런지 공짜로 읽으면서 요구 사항이 많다. 이런 요구가 글쓰는 이에게 무례하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요구나 욕망에 타협하지 않는다.
셋째, 나는 오히려 지금 내가 쓰는 글의 길이가 짧다는 생각도 한다. 보통 원고지 15매에서 30매 정도로 글을 쓰려 하지만 이런 형태의 글을 앞으로 더 길게 쓰려고 한다. 말하자면 단편에서 중편 정도로 늘리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짧게 써달라고 하는 지인들의 요구와 정면으로 배치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상대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그들이 하는 말이 있다. “그렇게 고집하면 네 글을 아무도 안 읽어!”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것은 고역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꾸준히 내글을 찾은 이들이 있다. 내가 어쩌다 글쓰는 일을 중단할 때면 일부로 찾는 경우도 많다. 나는 이렇게 나의 글을 읽는 이들을 위해 글을 쓴다. 어떤 의무감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글이 좋다고 생각해서 읽는 이들이다. 서로 간에 사심이 없기 때문에 쓰는 이나 읽는 이나 부담이 없다. 이들은 앞으로 내가 긴 글을 쓰더라도 그 글을 기꺼이 반겨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지금 중편 정도로 구상하고 있는 글은 ‘행복’이란 주제와 관련되어 있다.
넷째,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쉽고 재밌는 글은 남지가 않는다. 그냥 스쳐가는 바람과 같다. 나는 글을 고통스럽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글을 쓰려고 해야 한다. 나의 지나친 비판에 대해 의외로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편을 느끼고 고통스러워 할 때 읽는 이들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런 글들을 외면할 수도 있다. 그러면 생각의 발전이 오지 않는다. 무언가 머리를 쇠망치로 맞는 느낌, 머리가 아주 쥐어짤 정도로 고통스러운 느낌, 그래서 “이게 무언가, 도대체 왜 그런가? 이걸 어떻게 해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끌어낼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그저 스쳐가는 재미로는 이런 생각을 끌어낼 수 가 없다.
확실히 재밌고 짧은 글을 요구하는 것은 핸드폰과 태블릿, 카톡 문화의 필연적 요구일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내 글은 시대를 거꾸로 가려는 반 시대적 저항의 한 수단이다. 니체가 말했듯, 천둥과 벼락을 내리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런 나에게 “제발 글좀 짧게 써!”라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요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