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쏠림 현상이 심하다. 어느 한 곳이 잘 된다고 하면 그쪽으로 우르르 쏠리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어떤 특정 분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정치가 강성 팬덤으로 치달은 것은 오래 전이다. 팬덤은 연애나 스포츠에서 생긴 문화인데, 이런 형태의 감성적 열광이 이성적 사고를 요구하는 분야에도 침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사도 어디가 잘된다고 하면 그쪽으로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서 결국에는 후발 주자가 덤터기를 쓰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쏠림 현상이 과도하게 표현된 것은 획일화된 형태의 주거문화이다. 한국은 전세계 다른 어느 국가들 이상으로 아파트 천국이다. 도시에만 아파트가 많은 것이 아니라 농촌이나 바닷가 근처에도 아파트 천지이고, 경치 좋은 산속에도 아파트가 즐비하다. 이런 현상을 본 외국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파트가 한국인들의 주거 문화를 단숨에 끌어 올린 공적이 크지만 그렇다고 전국을 아파트로 도배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물론 아파트가 편리하고 부의 축적 수단으로도 유용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것은 무언가 한국인들의 의식구조와 연관이 깊다 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파트 문화는 한국인들의 주거 생활 전체를 획일화하는 면이 크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찍듯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주거 구조가 편성되다 보니 이런 주거 공간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공간이 의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쏠림 문화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의학이 사람의 생명을 고치는 학문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생물학이나 생명공학 등 기초과학과 공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학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료 기술과 의학이 결코 발전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의사들만 돈을 벌고 의과대학으로만 지원자들이 몰리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류 대학의 기초 과학부에 합격을 해도 재수를 하거나 그보다 못한 대학의 의과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인 동향이다. 덕분에 기초 과학은 정원을 채우기도 힘들고, 이런 현상은 대학원의 경우 더 심하고, 인문대의 문사철 대학원은 아예 파리만 날리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에서는 수도권과 서울로만 진출하려 하고, 서울에서도 강남에 진출하는 것이 인생이 꿈이자 성공의 잣대가 되고 있다. 아무리 정부가 분권화를 주장하고 세종시로 행정부를 옮기려 해도 사람들이 내려가지를 않는다. 지방의 도시들이 무너져도 수도권은 더욱 비대해지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서울을 위시한 도시와 지방의 격차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과거에는 지방의 명문대들이 명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서울 인대와 그밖의 대학으로 나뉘어져 있다. 지방의 명분대들의 입학생들의 수준이 말해준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가? 한국의 쏠림 문화는 세계의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나는 그것을 한국인들의 가치와 취향의 단순성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가치가 다양하면 결코 쏠리지 않는다. 선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가 단순하고 획일적이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오로지 최고의 것으로 몰리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왜 취향과 가치가 단순한가? 교양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교양은 세계를 이해하는 수준이다. 이 수준이 높으면 세계를 이해하는 수준도 높고, 이 수준이 낮으면 별짓을 해도 제대로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때문에 교양은 개인의 가치 판단과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타인과의 소통에도 영향을 미친다. 외형적으로는 엄청 크게 발전한 것은 갖지만, 한국에서는 의사 결정에 딱 3가지 변수가 가장 중요하다. 돈이 되는가? 권력이 있는가? 사회적 신분 유지에 중요한가? 이 3가지는 지위 여하를 불문하고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가치 판단의 변수다.
그렇다면 대졸자가 이렇게 많고, 학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 졌으면서도 왜 교양수준이 낮을까? 그것은 생존 경쟁을 위한 학습에는 열심이지만, 생각하고 반성하는 학습이나 독서는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무엇보다 책을 읽어야 하는데, 지금 사람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미디어가 과거 보다 훨씬 다양해진 탓이 있기는 해도 너무 책을 읽지 않는다. 다른 미디어를 통한 지식은 너무 속도가 빠른 탓에 빨리 마시는 술이나 밥처럼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 정도다.
현대의 한국인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은 당장 출판산업이 한국에서는 대표적인 사양산업이 되고 있다는 것으로 알 수가 있다. 여기에는 대형 출판들도 예외가 아니고 교보나 영풍문고 같은 대형 서점들도 매출이 급강하하고 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미처 대처하기도 힘이 들 정도이다.
지금 한국의 정신 문화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 있다. 가치의 쏠림은 가치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선택이 없는 획일주의적 가치는 획일주의 문화나 주거 환경 교육 체계등을 획일화시키고 덕분에 교양의 수준도 떨어뜨린다. 교양의 수준이 낮은 것은 독서 수준이 낮기 때다이고, 낮은 독서율 때문에 출판산업이 사양화되고, 출판에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그대로 통용된다. 이런 상태로는 지난 수십년 동안 쌓아 왔던 대한민국의 미래 전망이 어둡다. 창업은 쉬워도 수성이 어렵다는 말이 결코 틀리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