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철학자들은 허구 헌 날 남의 이야기만 쓴다. 반면 소설가가 쓰는 글은 자기 이야기다. 철학을 한다고 하면 의례 고대에는 플라톤이 어떻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떻고, 근대에는 칸트가 어떻고 헤겔이 어떻고, 현대로 오면 라캉이 어떻고 데리다가 어떻고 들뢰즈가 어떻고 지젝이 어떻고 하는 식으로 열심히 남 이야기만 쓴다. (동양철학이나 한국철학의 경우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자기 철학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다. 반면 3류 소설가도 절대 저런 식으로 남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소설가는 1인칭이나 3인칭 화법을 통해 자기 생각과 자기 이야기를 드러낼 뿐이다.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과 남의 이야기에 의존해서 쓰는 것의 차이는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자기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자기의 삶이 없고, 자기의 시대가 없고, 자기의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철학자들이 철학 연구를 열심히 하고 논문들도 열심히 써 대지만 늘 자신이 없고 자기 비하를 일삼는 까닭이 있다. 자기 언어가 없고, 자기 삶이 없고, 자기 시대가 없기 때문이다. 허구 헌 날 남의 이야기, 남의 삶, 남의 시대만 이야기를 하니까 도대체 무엇에 자부심을 갖고 무엇을 자랑할 수 있겠는가? "한참 울고 보니까 남의 집 초상"이라는 말은 지금의 한국 철학 계의 현실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신의 식민지성은 주체성을 중시하는 철학에서 금물이다. 그럼에도 왜 한국의 철학자들은 이처럼 단순한 진리에 무지하고 외면하는가? 나포된 정신은 자기의 욕망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욕망도 모르면서 세상을 안다고 할 수가 없다. 한국에 철학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마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왜 철학과를 나오면 취업이 안 되고, 대학의 구조 조정 과정에서 첫 타겟이 철학과로 꼽히는 이유가 다 여기에 담겨 있을지 모른다. 이런 웃픈 현실에 대해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