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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면 달라지는 것들

by 이종철



나이를 먹고 세월이 많이 흐르다 보면 바뀌는 것도 많다. 젊었을 적에는 술 담배를 억수로 많이 했지만, 지금은 멀리서 누가 담배 연기만 날려도 피하고, 술은 한 달에 한 번 마시는 정도이고 그것도 소주 반병 정도에 그친다. 왜 그때는 그렇게 집착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젊었을 적에는 그 여인을 보지 못하면 못 살 것 같았지만,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다. 불타오르던 정염은 사라지고 이제 남은 것은 식은 재 뿐이다. 젊었을 적에는 읽을 만한 책이 나오면 없는 돈 있는 돈을 다 끌어모아서 구입하고 그랬지만, 지금은 아파트 공간만 축내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그 당시 젊은 세대들의 책에 대한 집착은 지금 세대의 아이패드 열광을 훨씬 능가했다.


젊었을 적에는 돈 좀 벌어보겠다고 별일을 다 벌려 보았지만, 세상에는 내가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돈 문제도 시쿤둥 해졌다. 무엇보다 돈이 생겨도 별로 쓸 일이 없다.


젊었을 적에는 친구와 의리를 죽자 사자 지키려 했지만, 그간 나를 무시한 *과 나를 배신한 *, 나에게 뒷다마 치면서 희희덕 거리던 재수 없는 * 등등에 몇 차례 사시미 칼에 찔리고 나니까 인간이란 게 다 그렇고 그런 것 같고, 만났다 헤어지는 것은 유도 아니더라.


젊었을 적에는 아파트 평수가 열 댓평만 되도 그 안에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 하나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세배가 넘는 공간에서 아내와 둘이서만 살아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뿐이다. 오만가지 쓰레기 같은 책, 데스크 탑과 노트북, 시디와 오디오 시스템, 운동 기구 등이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으니까 젊은 시절이나 지금이나 내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은 비슷하다는 느낌뿐이다.


젊었을 적에는 어쩌다가 택시만 타도 기분이 좋았지만, 나이를 먹으니까 과분한 차를 타고 다녀도 늘 더 좋은 차들이 눈에 밟혀 내차 바꿀 수 있는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럼에도 엄처시하에서 함부로 행동을 못하는 자신을 한심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젊은 총각 시절에는 옆에 애인만 있으면 좋았고, 마눌이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생각했지만, 60대 중반을 넘긴 지금은 마눌은 그냥 치마 걸친 남자로 보이고, 마눌도 가끔씩 나에게 '형, 술 한 잔 할까?'하고 썰렁한 친구처럼 대한다.


젊었을 적에는 여자를 대동하고 다니면 무슨 일이 있어도 호기를 부려 내가 다 비용을 지불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수입도 별로 없고 알량한 연금 몇 푼으로 그저 병원비와 약값 충당하기 바쁘고, 인터넷과 휴대폰 사용료, 넷플릭스 비용과 소소하게 가입한 휴대폰 앱 사용료 대기도 힘들다. 적지 않은 수입이 있는 마눌에게 SOS를 치면 소 닭 보듯이 하고, 외식이나 여행 등 비용이 발생하면 마눌은 무조건 더치페이 하자고 한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라고 했는데, 마눌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인색해진다.


젊었을 적에는 친구 결혼식에 가도 너 나 할 것 없이 호주머니가 가벼운 시절이라 별로 부담이 들지 않았고, 상갓집 갈 일도 별로 없어서 부의금 낼 일도 없었는데, 지금은 나이가 나이인 지라 여전히 준 조세성 비용 지출이 적지 않다. 친구 자제들 결혼식장들을 주말마다 열심히 쫓아 다니면서 축의금 봉투 마련하느라 잘하던 술 담배조차 줄이기도 했다. 이제 결혼 시즌이 한물가서 안도의 숨을 쉬려고 하니까 주변에서 하나둘씩 죽어가고 있다. 덕분에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당연히 내야 한다는 준 조세성 비용이 심하게 압박을 해온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수입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감당했지만, 지금은 수입도 변변 찮은 상태에서 그 액수가 커지니 당최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 이럴 때는 이것저것 보기 싫다고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지방의 조그만 도시에서 유유자적 살아가는 친구*이 부러울 지경이다. 이 밖에도 사고 몇 번 난 뒤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동차 보험료와 자질구레한 건강 보험료, 마눌이 나 몰래 들어 놓은 실손 보험료 등을 대느라고 등골이 빠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사정이 이러고 보니 노년에 무슨 여유가 있고, 행복이 있겠는가? 그러니 노년이 되면 유유자적 여가외 취미 생활을 즐기기보다는 차가운 길바닥 위에서 등에는 가스통 메고, 양손에는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를 들고서 악다구니를 펴게 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못 살겠다, 못 살겠다. 늙기도 서러운데 왜 늙어갈 수록 더 살기가 힘든가? 바꾸자, 바꾸자, 다 바꿔 버리자. 다 바꿔 그 옛날로 돌아가자. 옛날이 좋다.아 그 옛 시절, 참 좋았지!(Es war eine schöne Z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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