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철학자 모임

by 이종철

어제 파주와 일산에 살고 있는 철학자들 5명이 야당의 한 술 집에서 만났다. 일전에 이광모 선생하고 내가 술을 마시다가 나온 아이디어를 구현한 셈이다. 최고참은 이화여대 명예 교수인 정대현 선생님이고, 고려대 명예교수이자 동양철학자인 이승환 선생님, 그리고 셸링과 헤겔 등을 전공하신 숙명여대의 이광모 선생님, 요즘 인문학계에 새로 떠오르는 정보 철학 전공인 이화여대의 신상규 선생님 그리고 나까지 5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전공이 각기 다르지만 다들 한 가닥 씩 하는 분들이라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논쟁을 하는 데 지장이 없다. 최근 영화 오펜하이머 때문인지 양자 역학 및 동양 철학과 연관된 이야기, 존재론과 21세기 정보 철학, 그리고 내가 주장하는 에세이 철학 등 이야기와 논쟁이 끊어 지지 않았다. 다들 술을 좋아 하고 막걸리 맛이 좋았다. 이날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무엇보다 기존의 철학적 글에 대해 반성하면서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일상언어로 철학을 하자는 데 어느 정도 일치를 보았다. 우리는 이 모임을 3개월 마다 정기적으로 갖고, 변방 파주에서 대중 철학 강연이나 여러 가지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5명이지만 오히려 이 근방에 철학자들이 다수 살고 있어서 차츰 회원들을 늘려나가기로 했다. 당장 단톡방을 만들어 수시로 소통하기로 했다. 첫 단추가 아주 제대로 꼿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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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팔순이 훨씬 넘은 정대현 선생님의 열정과 진지한 토론 자세가 귀감이 될 듯 하다. 정대현 선생님은 내가 철학을 하겠다고 하고 정확히 41년 전 철학과 4학년 인식론 수업을 들었을 때 강좌를 담당하신 분이다. 그 당시 박동환 선생님이 안식년 휴가를 가셔서 이화여대에 계신 선생님이 대신 출강을 하셨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그 때 딱 한 번 연대에서 강의를 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 처음 내준 과제가 "자살로써 복수가 가능한가?"인데 A4 용지 한 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자살로써 복수가 불가능하다"는 논지를 편 내글을 'Excellent!'라고 평가를 해주셨다. 복수를 하려면 복수의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자살하고 나면 그 주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때의 떡밥을 내가 물고 법대에서 철학과 대학으로 진학한 것이다. 그 기억을 말씀 드리니까 선생님이 아주 반가워 하신다.



1차로 술을 적당히 마신 다음 다시 근처의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2차 토론도 열심히 하다가 거진 10시 가까이 돼서 헤어져서 이승환 선생과 나는 경의선을 탔다. 다들 집이 근처라 서울에서 처럼 술먹과 귀가를 걱정하지 않아서 좋았다. 오랜 만에 마음에 맞는 동료 철학자들과의 자리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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