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에 파주 출판단지에 가서 책을 받아 왔다.
인세 대신 책으로 받는 것이다.
책을 차로 옮겨 주면서 담당 이사가 나에게 묻는다.
"헤겔 철학을 하셨나 보지요?" 책 날개에 있는 나의 프로필을 보았나 보다.
"아, 예. 오랫동안 헤겔과 독일 관념 철학을 했었지요. 지금은 에세이철학에 꼿혀서 동서양을 넘나들며 철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묻지요?"
"돌아가신 저의 선친이 경희대 철학과에 오랫동안 봉직하시면서 헤겔 등 독일 철학을 가르치셨거든요."
"선친의 성함이?"
"황문수요."
"아, 저런. 황선생님은 제가 80년대 헤겔학회를 하던 당시 함께 활동하시면서 여러 차례 뵈었거든요. 그 분이 문예출판사에서 책을 내실 때 저도 같이 책을 여러권 낸 적이 있고요."
"문예출판사의 전병석 대표가 대학 선배라 책을 내주셨어요. 부친이 시간 강사를 하실 때 도움을 많이 받았더라구 하셨어요."
사람의 인연이 이렇다. 파주의 인쇄소에서 오래 전에 함께 활동을 했던 선생님의 자제분을 만나다니. 아무튼 반갑게 악수를 하고 책을 2박스 받아 왔다. 앞으로 이 책을 내가 직접 팔아야 한다. 이 시대의 라이터들은 글만 쓰는 게 아니라 영업사원으로 뛰면서 세일즈도 해야 한다. 철학자는 이 시대의 가장 불쌍한 직업군 중의 하나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기 죽을 수는 없지. 까짓거 한 달 안에 초판을 다 팔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