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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영화

<아임 얼라이브>와 좀비들 세상

by 이종철

<일상이 철학이다>를 읽고서 읽은 이들이 여러 이야기를 한다. 그 중에서 특히 영화에 관한 글이 좋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일반적인 영화 칼럼니스트들의 글과 다르게 영화를 철학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전문적으로 영화 칼럼을 써보라는 이야기도 듣는다. 철학이 영화를 소재로 글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내에서도 몇 권의 책들이 있고, 외국에서는 특히 Slavoj Žižek이 정신분석학도 끌어 들여 재밌는 글들을 여러 편 썼다. 현대는 이미지 시대이고, 영화는 이런 시대의 대표적인 총아이다. 좋은 영화를 한 편 보는 것은 텍스트를 읽는 것 못지 않다. 텍스트를 읽을 때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읽는 것처럼 똑같은 태도로 영화를 보고 리뷰까지 쓰는 습관을 갖다 보면 자연스럽게 글쓰기 훈련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년에 수십편씩 보는 영화나 드라마를 그저 재미로 넘기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영화는 철학적 글쓰기의 좋은 소재이자 사유의 동반자가 충분히 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일상이 철학이다>에 나오는 영화 이야기를 함께 읽어보자. 유아인, 박신혜가 주연한 #살아있다 (#Alive,2020)에 대해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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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얼라이브>와 좀비들 세상


“철학은 사상 속에 포착한 그 시대”라고 헤겔이 그의 유명한 책 『법철학 강의』 서문에서 말한 바 있다. 똑같은 논리로 “영화는 영상 속에 포착한 그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세상이 아비규환이 되면서 세계적으로 좀비 영화가 유행이다. 한국에서도 <부산행>의 성공 후 최근 들어서 심심찮게 좀비 영화가 나오더니, 2021년에는 넷플릭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좀비 영화가 쏟아졌다. 시리즈물 <킹덤 1.2>과 강동원 주연의 <반도> 그리고 유아인과 박신혜가 열연한 <얼마이브>(Alive), 반인 반좀비의 활약을 그린 <스위트 홈>을 손꼽을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좀비 영화에 열광한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라 할 만하다.


좀비는 서양의 드라큐라의 변형들이라 한국적 귀신과는 거리가 멀다. 이 좀비가 한국 영화에서 중요한 테마로 등장했다는 것은 토착 귀신들이 외래 귀신들에 의해 밀려나서 귀신의 세계화에 편입된 현상으로 보아도 좋겠다. 이제 하얀 소복에 머리 풀고 나오는 토착 귀신들은 급속하게 뒷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가면 조만간 한국형 귀신은 찾아보기도 힘들지 모른다.


물론 좀비들이 서양에서 직수입된 형태로 유행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무엇보다 빨리빨리 문화가 지배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한국형 좀비들은 서양의 좀비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속도가 빠르다. 이들이 떼로 달려들며 아귀처럼 물어뜯으면 혼비백산조차 할 겨를이 없다. 서양인들도 이런 한국형 좀비에 빠르게 중독되어 간다고 한다. 이제는 수입된 좀비가 한국문화의 틀 속에서 재가공되어 전 세계로 역수출되는 실정이다.


요즘은 좀비와 사람 간에 경계를 확정하고 정체성을 구분하기가 힘든 경우도 많다. 워낙 현실이 워낙 드라마틱해서 영화와 구분이 안 되고, 영화만큼이나 ‘영화 같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경우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멀쩡하던 인간들이 평소와 전혀 다르게 약 먹고 뽕 맞은 것처럼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이상한 짓거리들을 할 때 보면 과연 이들이 사람인지 좀비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2022년에 있었던 브라질 대통령 선거 무효를 주장하면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한 사건(2023.1.8.)이 벌어졌다. 2년 전인 2021년 1월 6일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미 의사당에 난입했던 사건의 브라질 버전이다. 이처럼 민주주의 국가의 본령을 깨고 의사당에 난입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좀비다. 그 사람 하나하나는 한 집안의 가장이고 직장에서 성실하게 행동하고 합리적 이성을 가진 건전한 인간일 텐데, 이들이 집단화되면 거의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정상인으로는 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일삼는다. 이런 좀비들의 막장 행위로 인해 오랜 전통을 자랑하던 제국의 민주주의 정신도 헌신짝처럼 짓밟히고 말았으니 그들의 실체를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 같다. 한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현실이 대통령 선거를 전후로 난발한 적이 있었다.


좀비 현상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멀쩡하게 정신을 차리고 살아도 힘든 세상에서 이성을 포기하고, 대책 없는 감성들을 천방지축으로 풀어 놓았다. 해서 그 사이 지하 깊숙이 처박혀 있던 ‘안 죽은 자들’(un-dead)까지 우수수 쏟아져 나왔으니, 앞으로 이 좀비들이 무슨 짓들을 못하겠는가? 정신분석학자 자끄 라깡에 따르면 ‘안 죽은 자들’(un-dead)은 산 자도 아니고 죽은 자도 아닌 제3의 존재이다. 이 괴물 같은 존재는 인간 안에 ‘내재하는’ 끔찍한 ‘과잉’(surplus)이다. 칸트 이전의 세계에서 인간은 동물적 쾌락이나 신적 광기와 싸우는 이성적 인간이었던 반면, 칸트 이후 독일 관념론에 들어서면서 싸워야 할 과잉은 절대적 의미에서 내재적인 주관성 자체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인간 안에 내재하는 '비인간'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이 '좀비'로 표상된 것이다. 현실이나 영화나 좀비들이 넘쳐 나는 이 세상에서 몸 보전하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I'm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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