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지가시니 Aug 26. 2023

“It’s okay”를 외쳐도 만만해보이지 않네?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리즈 | 완벽주의 탈출기|

“괜찮아요~”라고 말할 때 괜찮지 않았던 경험이 있는가? 또는 정말 상관없고 괜찮은  경우에도, 괜찮지 않은 척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본 경험이 있는가?


괜찮아야만 하는 상황을 강요받아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괜찮아요.”라고 말할 때가 많다.


그리고 모순적으로, 정말 괜찮은 상황에서 “괜찮아요.”, “전 좋아요.”, “제가 할게요.”라고 하면, 앞으로 무리한 요구를 할까 싶어서 괜히 무표정을 짓는 경우들도 있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갈등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편으로는 사회 풍토, 문화들이 개개인의 태도와 신념을 움직이는 것 같다.


‘수락을 쉽게 하면 더 요구해도 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문화. ‘상대가 흔쾌히 수락하면 고마움을 느끼기보다는 나의 요구할 권리가 당연시되는’ 문화.


그래서 상대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아.. 지금 바쁜데. 그래도 해드릴게요.’와 같이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굳이 드러내는 말을 붙인다.  


마음 넓게 행동하면 손해 보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많은 것을 품지 못하는 사람처럼 사니깐, 정말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무렵이었다. 나눔의 기쁨을 알았지만 손해 보는 기분을 느끼는 스스로가 못나보여서,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시간을 보냈던 중이라 하는 것이 맞겠다.

나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아일랜드 홈메이트 ‘사샤’는 나의 이런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사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목소리는 크고 리액션, 손동작이 다양한 친구였다. MBTI를 검사하면 아마도 대문자 E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든다. 자연모도 노란빛이지만, 3번 이상을 탈색한 블론드 헤어에 얼굴 곳곳에 반짝 거리는 화장을 하고, 사진을 찍을 때는 입술을 앞으로 쭉 내밀어서 찍곤 했다. 즉 자신만의 색이 확실한 느낌을 주었다.


막 이사 왔던 나는 내게 없던 주방용품을 빌려야만 한다거나, 이용 시설들에 대해 질문해야 할 때가 있었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물어보면 너무나도 화통하게 “Sure!”이라고 외치고 다르 홈메이트들의 부탁에도 “It’s okay!”를 외쳤다.


나는 태어나서 저렇게 적극적으로 수락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을 처음 만난 듯했다.


하지만 그런 사샤를 만만하게 본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부탁을 쉽게 할 수 없었다. 사샤가 정색을 했다거나, 괜찮지 않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왜였을까?


사샤가 흔쾌히 부탁을 수락하는 것은 스스로의 소신에 따라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은연중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넓은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말과 행동들.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뿜는 아우라는 지켜야 할 선을 암묵적으로 알려주는 것 같았다.


따라서 사샤에게 폐가 되는 말과 행동을 하면 단호하게 굴 것 같다는 느낌이 나에게 강하게 심어졌었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적극적으로 베풀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을 오히려 더 어렵게 느끼는 경우가 있다. 두 번 부탁을 했을 뿐인데, 너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어서 마치 내가 다섯 번 정도는 부탁한 느낌을 받는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법’과 같은 인간관계에 관한 책이 서점 베스트셀러 매대 위에 놓여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지어야 하는 표정, 말투, 시선 처리, 목소리의 고저와 억양, 그리고 말의 내용 등.


하지만 내가 깨달은 “It’s okay”를 외쳐도 만만해 보이지 않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먼저 그릇을 넓히는 것이다.  그릇 넓은 사람의 성품을 이용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피할 수 없고, 사회생활에서 다  통하는 얘기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릇 넓은 사람이 주는 아우라와 당당함은 주변에서도 다 느껴지며, 이러한 사람을 더 조심 있게 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언어적, 비언어적인 요소들과 같이 기술적인 부분들은 이에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릇 넓히기. 즉 내가 타인에게 주는 도움과 따뜻함의 힘과 영향력을 믿고 흘려보내기.


작가의 이전글 울면 지는 것이 아니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