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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광 Oct 27. 2024

고통의 정의

죽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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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직관적인 고통은 죽음이었다.


대학생 1학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등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울리던 휴대폰, 그 너머로 들리는 흐느끼는 목소리, 그 떨리던 목소리의 첫마디.

친구의 부고 소식이었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느낄 수 없었다.


대화를 마치고 멍해진 머리로 학교로 향했다.

시험기간이라 시험을 마치고 다른 친구와 같이 장례식장으로 향하기로 약속을 정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군대를 먼저 간 친구의 첫 소식이었다. 아직 휴가를 나오지도 못한 친구의 소식이었다.


장례식장인 양구로 향했다. 아직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장소를 도착했다.


눈앞에 사진이 보인다.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의 사진이다. 사진뿐이다.


사진을 보자 억눌렀던 감정의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자녀상을 치르시는 부모님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감정을 억누르고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늦은 시간 전국에 흩여져 있던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회포를 풀었다. 작은 동창회 었다.


다음날 친구의 발인에 쓰일 편지를 작성을 하였다.

늦은 새벽 친구가 밖으로 불러 편지를 보여주었다.


참았던 감정이 다시 솟구쳤다. 하루를 참았던 눈물의 양은 지금까지 흘렸던 그 어떤 눈물의 양보다 많았다.

문장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친구가 한 발자국씩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친구에게 부치는 편지.

후회가 밀려온다.


밝게 웃던 친구들이 하나, 둘 슬픔에 밝음을 잃어버렸다.

숨죽여 우는 친구들. 부모님 몰래 나가서 우는 친구들. 

밝아지는 낮과 반대로 우리는 어둠 속에 있었다. 

슬픔과 고통의 새벽이었다.


발인을 했다. 친구가 운구차를 탔다. 그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우리는 양구에서 횡성까지 함께 갔다. 그와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울다 지친 나는 버스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횡성에 도착했다. 화장(化粧) 실로 이동했다.

그의 마지막 모습. 마지막 집에 들어간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차마 보지 못했다.

부둥켜안으며 울었다. 화장 시간은 나에게 하루와 같았다.


천천히 타들어 가는 그의 집. 집이 타들어가면 완전한 모습의 그는 없다.

체온이 느껴지지 않은 한 줌의 재. 허연 어떤 가루. 그의 마지막 모습이다.


갤러리의 한편에 자리 잡은 그의 사진. 마지막 남은 그와의 매개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점점 내 정신은 피폐해진다.

누군가를 잃는 고통. 인생에서 첫 상실에 대한 감정을 느낀다.

죽음이 두려워진다. 마음의 문을 닫는다.


나의 첫 고통이다. 이 고통은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죽음의 정의. 그것은 남겨질 이의 슬픔이자 고통으로 정의했다.

첫 상실에 대한 고통. 이것이 나의 첫 고통이다.


만약 그대가 혼자 많은 것을 짊어지고 떠나려 하거든 남겨질 이에 대하여 생각을 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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