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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찔레꽃

by T Sunny

엄마의 찔레꽃


이제 팔순이 골목 입구까지 다다른 친정엄마의 주름은 진 고동색 장독대가 봄날의 따스한 햇볕을 받아 윤슬이 이는 듯 찰랑거린다.


막내딸의 생일을 구실 삼아 친정아버지의 호출이 있었다. 아마도 흩어져 바쁘게 사는 육 남매를 한자리에서 보고픈 부정이 발동하신 게다.


큰언니는 그렇게 힘들게 고비고비를 넘기며 살아서 조카 둘을 다 시집 장가보내고 이 불경기와 결혼 기피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호항을 누린다.

큰언니의 젊음과 바꾼 고생의 시간들은 그렇게 두툼한 이자를 챙겨서 답례를 하는 듯 환하게 웃는 근심 없는 웃음이 고맙기만 하다.

젊은 시절 삶의 매서운 찬바람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삶의 정직한 대가가 이제 드러나는 듯해서 우리 오 남매는 항상 거울로 삶는다.


큰언니는 식구들이 늘어서인지 엄마의 살림살이 장독 속의 빛 고운 간장 때문인지 플라스틱 생수통에 연신 묵은 간장을 채운다.


그 간장을 보며 문득 떠 오른 생각이 있었다.

" 참 엄마, 셋째 언니가 지난번에 엄마가 그러시더라고 '찔레꽃이 이렇게 많이 핀걸 보니 올해 간장이 참 맛나겠다' 하셨다던데 그게 무슨 말이야?"

"아이고!, 너거들은 대학서 뭐 배웠노?"

'엄마는 대학이 그런 걸 가르쳐 주는 곳인가 어디.'


엄마의 장독 안에는 조선간장이 일 년 동안 맑은 꿈을 안고 자신을 삭히고 비워서 이쁜 하얀 찔레꽃을 피우고 또 피워내고 있었다. 친정집 장독대 옆에 찔레꽃이 진짜 하얗게 피든지 간장독 안에서 엄마의 숙성된 찔레꽃이 만들어지든지 좌우지간 올해 친정엄마의 간장 맛은 역시 일품이 되어 여섯 자식들의 식탁 중앙에 항상 오르게 될 것이다.


엄마의 간장도 큰언니의 자식 농사도 모두 시들지 않는 꽃을 피우는 것 같아 너무도 따사로운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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