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찾아가는 여정
1.
소위 때 만났던 선배 장교는 카이스트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부대에서 대전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퇴근하자마자 바로 대전으로 가는 그의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선배는 장교로 복무하면 시간이 많으니 대학원에 가는 것을 추천했다.
이것을 ‘정원 외 취학 제도’라 하는데, 군의 추천을 받으면 대학원에 가는 게 가능했다. 지금도 이 제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대 위치상 서울로도 가기 좋아서, 당시에 그 형의 말을 듣고 나서 중위가 되면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확실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원을 나오면 내가 얻게 되는 것은 뭘까 생각했다. 석사학위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들이는 시간과 노력 대비해서 과연 대학원이 내게 어떠한 미래 가치를 가져다주는지 알 수 없었다.
또한 당시에 장교 전역 후에 어떤 일을 할지 계획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막연한 기대감만을 갖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건 무모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대학원 준비는 포기했다.
2.
인천국제공항에 가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안정적인 공기업에 업무 환경이 정말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모집요강을 읽고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아봤다.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때 내게 남은 복무기간은 2년 정도였다. 일하면서 준비한다면 되지 않을까라고 처음엔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불확실한 마음이 들었다. 2년 내내 공부에만 투자하면서, 기적같이 운이 따라 합격이 된다고 해도, 정말 이 일이 내게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인천국제공항에 가고 싶었던 건, 내가 그쪽 분야에 적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안정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에 명문대를 나왔던 다른 선배 장교도 인천국제공항 취업을 준비했지만 떨어졌다. 그런 머리 좋은 사람도 떨어지는 곳인데, 학업에 큰 재능을 보이지 못했던 내가 과연 그런 곳에 붙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커져갔다. 열심히 준비를 한다고 해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결국 야심 찬 취업의 꿈은 접게 되었다.
3.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갔다. 중위가 되었을 당시, 한창 자청이 <역행자>로 주가를 올리며 자기 계발 시장을 뒤흔들고 있었다. 무자본창업, 부업, N잡이 유행하면서 그의 책을 읽은 모두가 경제적 자유라는 목표를 꿈꾸기 시작했다. 월 1,000만 원을 누구나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나도 <역행자>를 읽고 나서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무자본창업 강의를 듣기도 했고, 경제적 자유를 이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열정을 키워갔다. 블로그, 맛집리뷰, N잡 등 그때 유행했던 강의들은 무지성으로 들어댔다.
그러나 이런 노력 역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어떠한 방향성도 지니지 못했고 하면 할수록 이걸 왜 하는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다.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인가? 그저 하면 무조건 된다는 말에 혹해서, 나는 무조건 된다라는 환상에 빠져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추후 다른 글을 통해 풀겠지만, 자청이 정말로 말하고자 했던 건 돈 버는 방법이 아니었다. 저마다 타고난 기질을 극복하여(예: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하고 낯선 모임에 나가기) 행복을 찾아가자는 게 그의 진정한 의도라고 생각한다. (그의 블로그만 봐도, 호르몬 관리나 생각 정리, 운동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인간의 몸과 마음의 최적화를 위해 힘쓰는 교육자의 면모도 엿보인다.)
여전히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역행자>를 읽기 전 경제적 자유라는 건 생각했던 적도 없다. 그저 나는 타인의 욕망과 성과를 꿈꾸었고, 단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내려는 데만 급급했다. 초반의 과도한 열정과 이후의 의지력 상실, 포기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진득하게 어떤 것에 집중해서 제대로 성취한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학업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 사람의 의지력을 볼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이것저것 참 많이도 했다. 하지만 내가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 나갔다.
4.
장교로서 복무한 지난 3년 10개월간 뚜렷한 가시적 성과를 냈다고 말하긴 어렵다. 스펙을 제대로 쌓은 것도 아니었고, 대외적으로 뚜렷한 수상을 한 것도 없다.
군 복무 중에 로스쿨, 의대를 준비해서 합격한 사람도 여럿 봤다. 같이 일했던 병사들도 대부분 명문대 출신이었고, 미국 유학파도 몇몇 있었다. 그들처럼 화려한 스펙을 쌓기 위해 군 복무 기간에 공부에 올인을 했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결과를 냈을까? 결과가 나왔다는 가정 하에, 어느 정도는 만족감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5.
나는 그러한 길로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고 하는 게 정확할 듯하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여러 가지 것들을 시도했으나 제대로 결과를 만든 것도 없다. 단순히 결과만 놓고 보면,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는 듯하다.
그렇지만 소득이 없는 건 절대 아니다. 우선 스스로에게 칭찬하고 싶은 것 한 가지가 있다. 독서와 글쓰기, 운동만큼은 소위 때부터 꾸준히 해 왔다. 1년에 책 100권 읽기, 벌크업 성공 같은 가시적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꾸준한 태도 자체가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역행자>와 뇌과학 책에서 소개되는 ‘유전자 오작동’ 개념을 알고 나서는 내향성을 극복하려고 발표, 모임에 나간 적도 꽤 있다. (지금은 MBTI가 E 아니냐는 이야기도 듣는다.)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미래를 그려나가고 싶다. 그러한 미래가 다소 이상적이거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당장 주변 사람들 모두를 내 편으로 만들기도 어려운데, 한일 양국 시민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하지만 나는 1퍼센트라도 그러한 비전을 현실화한다면, 그것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거대한 결과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그저 멋진 미래로 가는 과정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전역 후 일본으로 간다는 목표를 세웠다.
• 1년간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일본인들과 교류하며 현지 정서를 알아간다.
• 그 후 대사관 혹은 총영사관에 취업하여 실무적으로 협력의 기회를 만들어간다.
• 장기적으로는 한일 양국의 고령화 문제를 함께 풀 수 있는 프로젝트도 만들고 싶다.
소위 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듯, 아마 지금 글로 적는 것 이상으로 미래의 나는 매우 다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이 기쁘고 설렌다. 물론 장밋빛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진 않을 것이다. 분명 좌절하고 실패하는 순간도 올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 모두가 성장으로 이어지는 자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
앞으로 브런치에서 그러한 비전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담아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