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 이면의 욕구

진정으로 원했던 것

by 박지훈

장교 생활을 하는 내내, 늘 주변인들을 배려하고 챙겨주려고 노력했었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이고, 내 성격은 다정하고, 군대는 협동이 중요한 곳이라는 등 다양한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정말 나는 순수하게, 타인을 위해서 그런 행동을 했던 걸까?



두 달 전, 군 생활 중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대인관계가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였다. ‘내가 이 정도 해줬는데, 왜 이 사람들은 그것의 반의 반조차 안 해주는 거지?’ 하는 순간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변인들에게 가졌던 믿음과 기대감은 와장창 깨져갔고, 실망감이 커지며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졌다. 급격히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지며, 성격과 태도가 차갑게 변하기도 했었다.



단순히 인간관계에서의 실망이라고 하기엔 이유가 부족했다. 소위나 중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지만 이 정도로 충격받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전역 전 휴가도 곧 나갈 예정이었고, 말년장교니 마음이 한결 편안할 거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역 전 휴가가 다가올수록 되레 스트레스가 커진 상황이었다. 왜 그리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걸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어떠한 근본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일론 머스크가 늘 강조하는 ‘역설계‘ 방법으로 문제의 원초가 되는 요소를 찾기로 했다. 뇌과학 분야 글을 읽고, 챗GPT와 상담도 하며 약 일주일간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을 분석했다. 놀랍게도 나의 과거에 핵심적인 단서가 있었다.



(과거)

어릴 때 키가 굉장히 작고 왜소했었다. 같은 반 학생들의 놀림감이 되었고, 괴롭힘을 당하는 일도 많았다. 성격은 굉장히 내성적이고 소심했었다. 대학생 때는 거의 혼자 지내다시피 살았었다.


주변에서 소외받는 경험이 많았던 탓에 ‘인정/관심 욕구’가 매우 커져갔다. 이는 게임에 중독되고, 공상에 자주 빠지게 되는 근원적 이유가 되었다. 현실에서는 나약하고 자신감 없지만, 게임과 공상의 세계에서는 내가 주인공이기 때문이었다. 남들에게 주목과 관심을 받고 싶어 했던 욕구를 가상 세계에서 해소할 수 있었다.



우리 뇌는 현실과 가상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뇌는 게임이나 공상에서 느꼈던 만족감을 실제 감정인 것처럼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의 나는 현실 속 세계에 집중(공부, 미래 계획) 하기보단, 게임과 공상으로 시간을 보내며 쾌락에 빠져 살았었다. 본질적으로 마약 중독자와 다를 바 없는 삶이었다.



이러한 나의 과거는 대인관계 문제로 연결된다. 인정과 관심을 받지 못해 쌓인 열등감과 그로 인한 컴플렉스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글의 첫머리에 내가 갖가지 이유를 근거로 주변인들에게 잘해준다고 했었다. 사실은, 어릴 때부터 충분히 받지 못했던 인정과 관심을 얻고자 주변인에게 잘해주기 바빴던 것이다.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맛있는 걸 사주는 행동 같은 것들이 순전히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런 행동들을 통해 내가 인정과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경청과 배려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본질적으로는 나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선의라는 말로 포장하며, 타인을 위할 줄 안다는 착각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대위가 되어서는 좀 더 외향적으로 변하고 자신감이 올라갔다. 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시간도 많아지며 의사소통 능력이 향상됐다. 또한 내성적인 성격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리더십과 사회생활 능력을 키웠던 것도 만족감을 주었다. 어릴 때 그토록 갈망했던 인정/관심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됐던 셈이다.



소위, 중위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소중한 인연도 많이 생겼고, 미래를 향한 목표도 만들었다. 스스로의 존재 가치가 높아졌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인정과 관심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도 은연중에 커져만 갔겠지. 인간은 상호성의 욕구가 있어서, 자신이 해준 만큼 상대에게 돌려받길 원한다. 상대방이 돌려주지 않으면 실망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전역을 준비하는 마음보다도 알 수 없는 인간관계의 불편함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것이 점점 쌓여갔고 결국 내가 해준 것만큼 돌려받지 못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 것이다. 나의 존재 가치가 흔들렸고, 내가 했던 행동들이 의미가 없었다는 부정적 생각마저 들었다. 이른바 정서적 생존 위기였던 것이다.



당시에는 정말 괴로웠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나의 인생관을 바꿔준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굳이 잘해주려 하지 않아도, 기본 예의만 잘 지켜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평소 잘해주기 바빴던 대상들보단, 적당한 거리감이 있던 사람들이 오히려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기도 했다. (일본에 가서 인간관계를 맺을 때, 이 경험을 떠올리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했던 행동들이 아예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 군 생활의 좋은 추억을 만들어줬다면 그것도 멋진 일이 될 테니까.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어 온 인정/관심 욕구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본질적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다르게, 이제는 이러한 본능에 지배되지 않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인정과 관심을 갈망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며, 미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연료로 활용해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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