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찾아서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도전 정신이 활활 불타올랐었다. 장교 생활은 정말 만족스러웠지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 일을 하고 싶었다. 주변 동료들에게는 일본에 가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일하겠다는 포부를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녔다.
솔직히 군 생활이 주는 안정감은 좋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 도전을 하며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살아왔다. 3월 말 파리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앞으로는 일본에 가기 전까지 공부에만 매진할 거라 생각했었다. 7월에 JLPT N1을 따고 나서, 여름부터 스타벅스에서 바이토를 하며 내년에 대사관에 취업하겠다는 것이 당초의 계획이었다. 일본에 가면 원하는 대로 꿈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전역일이 가까워지니, 특히 4월 들어서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본으로
가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 하는 의심이 들면서 불안과 고민이 조금씩 커져갔다. 3월에 휴가를 나갔을 때만 하더라도 매일 행복했는데, 최근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서 전역날이 안 오길 바랐다. 불안에 사로잡힌 나머지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물론 인생의 큰 전환기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부정적인 감정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그렇게 일주일 넘게 온갖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이 감정이 생겨난 경로를 되짚어봤다.
밤에 잠이 안 와서 도쿄 원룸을 검색했다. 월세가 너무나 비쌌고 방은 비좁고 낡은 경우가 많았다. 도쿄 중심지에서 괜찮은 곳에 살려면 월세만 100만 원이 넘어갔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원하는 집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집값을 알아본 적이 없었다. 때가 되면 집을 잘 구할 수 있을 거라는 너무나 단순한 생각만 갖고 있었다.
대사관에 취직 후, 전문성을 살려 언젠가 일본의 대학교에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꿈도 있었다. 원룸을 검색하다 우연히 도쿄대학교 입시문제를 보게 되었는데 천재들만 풀 수 있는 수준처럼 느껴졌다. 이 정도의 학업 능력을 키우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며 절망감이 들었다.
대사관이나 영사관의 채용 공고는 매년 시기가 일정하지 않다. 4월이 될 수도 있고 11월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워홀 비자로 체류하는 동안 바이토를 하다가 내년에 대사관에 당연히 취업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확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운이 좋게 채용 시기에 맞춰 지원을 한다고 해고 합격이 보장되어 있는 게 아니었다.
돌아보니 내가 구상했던 계획들은 너무나 1차원적이고 이상적이었다. 당연히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풀릴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심지어 브런치에서 첫 글을 쓸 때도 그러한 계획이 잘 이뤄질 거라는 기대감이 컸었다. 현실을 직시하고 나니 절망감과 스트레스가 마구 올라오기 시작했다.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던 걸까? 전역을 한 달하고 몇 주를 앞둔 채, 인생을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스스로를 비난하며 지난 군 생활을 되돌리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일본으로 도전하러 간다고 떠벌리고 다닌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결국 이 부정적 감정의 근본 원인은 지나친 낙관주의에서 비롯된 거였다. 그렇다면 나는 어째서 현실의 가능성을 바라보기보단 장밋빛 미래만을 상상했던 걸까? 앞서 나는 두 편의 글을 통해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매우 갈망해 온 인간이라고 밝혔다. 다시 한 번 나의 행동에 숨겨져 있던 진짜 욕망을 들여다보자.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 여기서 ‘무언가’는 대화, 운동 같은 모든 행위가 될 수 있다. 또한 게임이나 공상 등을 통해 내가 최고라는 '가짜 쾌감'을 강렬히 느낀다. 예를 들면, 전역 전 휴가를 보내면서 주변 동료들이 나를 그리워하는 장면을 공상한다. 그러면 내 가치를 인정받는 듯한 착각이 들면서 도파민이 분비된다.
사실 인정과 관심을 바라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나는 어릴 때부터 축적돼 온 열등감과 컴플렉스로 인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정도가 심했다. 그렇기에 전역 후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때조차 나는 타인의 관심과 인정에 기반을 두었던 것이다.
단순히 전역 후에 어디 취업한다는 것보단, 안정적 생활을 포기하고 외국으로 도전한다는 말이 더 멋지지 않은가. 그런 말을 하면 주변인들은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보냈다. 그럴 때마다 몸속에서 도파민이 솟구쳤다. 그렇다. 나는 주변의 관심에서 오는 쾌락을 목표로 삶을 설계했던 것이다.
내가 정말 원했던 건 남들에게 멋져 보이고, 인정과 관심을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낙관적 미래만을 떠올렸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목표를 현실화할 것인지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저 나는 현실의 가능성이 아닌, 타인의 시선을 좇으며 존재를 증명받기 위해 살아왔던 것이다.
낙관적 미래만을 떠올리고 그것을 달성할 방법, 특히 중도에 마주칠 장애물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손해다. -가브리엘 외팅겐
작년부터 조금씩 일본 생활을 준비했어야 했다. 도쿄와 오사카의 집값, 대사관 행정직 취업 경쟁률 같은 정보들을 차곡차곡 모았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았고 전역 때가 다가오면 어떻게든 되겠지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했었다.
실은 내 인생을 돌아보면 거의 모든 게 그러했다. 학교에 다닐 때만 보더라도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보단,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과 관심을 받길 원했으니까. 그때는 게임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그런 욕망을 해소했다면, 장교 생활을 하면서는 스스로의 공상을 만들어 욕망을 해소해 왔다. 그것이 가짜 쾌락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뇌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해 기분만 좋으면 장땡이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4월 들어서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렸던 건, 공상 세계에서 나와 현실을 마주하면서 오는 충격과 괴리감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무의식에 굴레에 빠져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살아왔다. 작년 12월부터 일본 생활을 조금씩 준비했더라면, 좀 더 빨리 이런 깨달음을 얻지 않았을까?
스스로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내가 했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다. 어릴 때 괴롭힘을 당했던 장면이 여전히 생각날 정도로 상처가 많은 아이였으니까. 그런 상처에서 비롯된 인정/관심 욕구는 현실을 왜곡할 정도로 강력한 공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과거에 했던 게임이나, 장교 생활 내내 했던 수많은 공상은 나약했던 나의 자아를 지키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현실 속 실행력을 떨어뜨리고, 많은 기회를 앗아가긴 했지만…)
이제는 공상이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오랜 시간 나를 지켜왔던 공상 세계에서 나와, 진짜 현실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통해 쾌락을 느끼는 게 아니라, 나의 본질을 탐구하며 끊임없이 성장해 가는 삶을 추구한다.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받는 공상이 떠나간 자리는 불안과 두려움, 막막함 같은 현실의 감정들로 채워지고 있다. 대위 전역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은, 솔직한 나의 생각으로는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과거를 후회해도 큰 의미가 없지만, 작년 이맘때라도 조금 더 빨리 현실을 직시했더라면.. 그렇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보면 될까.
어제는 국가보훈부 제대군인지원센터에 연락을 하여 각종 교육과 전직지원금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전역 후 일본으로 간다는 생각만 했었지, 제대군인 지원제도를 알아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었다. 생각보다 지원받을 수 있는 게 많았고, 일본 취업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로도 꽤 있었다. 나라의 혜택을 받아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7월 말 교토로 가는 것을 목표로, 일본어 공부에 매진하면서 내가 성취할 수 있는 진짜 목표를 설계해 나가려 한다.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생각 정리가 계속 필요하다. 군 생활이 주었던 안정감을 떠나, 이제는 정말 스스로가 내린 선택에 따라 살아갈 때가 되었다. 미래를 알 수 없어서 막막한 느낌도 들고, 후회감과 아쉬움 등 다양한 감정들이 든다. 그렇지만 인생의 큰 전환점이라면 반드시 겪어야 할 고통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공상에 빠져 살던 과거의 나를 이해한다. 이제는 미래를 향해 진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2025년 12월 일본에 있는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고마워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