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은 멈춤은 삶이 내게 건네는 가장 절박한 구원의 손길이었다
열심히 살아낸 죄밖에 없는 내가 왜 고통받아야 하는지 묻던 밤, 비로소 나는 타인의 인정이 아닌 나의 숨결을 지켜내기 시작했다.
미래의 나는 늘 오늘의 나보다 우위에 있었다. 더 나은 내일, 인정받는 다음 달을 위해 오늘의 나는 기꺼이 희생되어도 좋은 소모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 올린 미래는 결국 '불안'이라는 거대한 탑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탑이 높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졌고,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도 모른 채 그 무게에 눌려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그를 만난 순간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나의 직속 상사였던 그는 유능한 보좌관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을 감출 방패가 필요했다. 성실함이 몸에 밴 나에게 그의 요청은 거절할 수 없는 명령이었고, 나는 그를 위한 완벽한 도구가 되었다.
쉴 틈 없이 그의 빈틈을 메웠지만, 그 공은 늘 그의 이름으로 치장되었고, 내가 돋보일까 더 은밀하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비위를 맞춰 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나의 심장과 영혼은 나날이 조각 조각 너덜너덜해져만 갔다.
고립의 시간
상처가 된 그림자를 안고 불안에 떨던 순간에도 '책임감' 이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은 나를 스스로 채찍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의 세계에서 호의는 곧 권리였다. 그는 내가 달아날까 교묘한 칼을 들어 나의 약점을 캐고, 나를 통해 젎은 직원들을 괴롭히려 하는 등 직원들과의 사이를 이간질시키며 수시로 교묘하게 괴롭혔다.
억압과 고통 속, 내 작은 실수는 동료들 사이에서 '무능'으로 부풀려졌고, 나의 진심은 그의 입을 거치며 일그러진 소문이 되었다.
신뢰했던 이들이 상황을 다 알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혹은 나를 제치기 위해 모든 사실을 모른 척할 때, 내가 느낀 것은 분노보다 깊은 고립감이었다. 사무실 문을 여는 것이 전쟁터에 발을 들이는 것처럼 두려웠고, 사소한 전화 벨소리에도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공포를 느꼈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할까?"
억울함에 잠 못 이루던 밤, 나는 그들에게 고통의 이유를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 물음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이 내 고통을 이해해 준다고 해서 내 삶이 회복될까? 아니었다.
내가 찾아야 할 것은 타인의 사과가 아니라, 잃어버린 '나의 오늘'이었다. 텅 빈 방에 앉아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그것은 살기 위한 숨구멍을 찾는 일이었다.
글쓰기, 회복의 시작
살아내기 위해, 숨 쉬기 위해, 지친 영혼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거창한 미래를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히는 대신, 불안한 마음을 조용히 응시하며 나에게 안부를 묻는 하루를 택했다.
글쓰기라는 아주 사소한 행위가 엉킨 실타래 같던 내 마음을 조금씩 풀어주었다. 하루의 의미는 이제 다른 누군가의 인정이 아니라, 내가 남겨놓은 이 고요한 숨결 속에 머문다.
병가라는 쉼표, 예기치 않은 멈춤은 삶이 내게 건네는 가장 절박한 구원의 손길이었다.
병가는 예고 없이 찾아온 긴 쉼표였다.
스스로 속도를 늦출 용기가 없었던 나는, 끝내 달리던 선로 위에서 멈춰 선 기차처럼 주저앉고 말았다.
닳아 빠진 신발을 신고도 달려야만 한다고 믿었던 날들, 뒤처질까 두려워 몸이 보내던 신호를 애써 지워버렸던 순간들이 단숨에 되감기듯 스쳐 갔다.
침대에 누워 바라본 창밖의 풍경은 오래된 필름처럼 흐릿했고, 그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세상이 아니라 ‘내가’ 흘러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늘 목적지를 향해 숨 가쁘게 지나치던 장면들이 제 속도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조용한 되감기 속에서, 나는 그동안 줄곧 외면해 온 작은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쁜 삶의 소음 아래 묻어두었던 나의 민낯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직장’이라는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 있었다. 성과와 효율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고, 껍질 밖의 나는 허약하고 불완전해 보였다. 그러나 그 껍질이 벗겨진 자리에서 마주한 것은 더 이상의 당혹이 아니라, 예상보다 따뜻한 삶의 결이었다.
아침 햇살이 이불 끝에 머무는 부드러운 각도, 정성스럽게 끓인 국 한 그릇의 온기, 집 앞 화단의 작은 꽃을 처음 보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선.
삶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이런 사소한 떨림에서 비로소 제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인생에는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속도가 있고, 내 의지로는 옮길 수 없는 무게가 있다는 것을.
사랑하는 것들과의 예견된 이별, 존재의 유한함,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독 같은 것들.
예전의 나는 이 무게를 피하려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측량하려 하지 않고 그저 짊어지고 걷는 법을 배우는 순례자가 된다.
지독했던 고통은 나를 무너뜨리려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고통을 지나 나는 나를 지키는 법을 배웠다.
병가는 결국 멈춤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는 방향 전환의 시간이었다
나를 괴롭히던 채찍을 내려놓고, 오래된 기준을 조용히 비워내고, 외면했던 나를 가장 따뜻한 시선으로 다시 안아주는 시간.
이 글은 어둠을 지나 다시 용기를 낸 한 해의 시작점에 쓴다.
병가는 끝났고, 나는 다시 일터로 향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괴롭힘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는 그 긴 터널을 지나왔고, 그 사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사실이다.
앞으로의 길은 예전보다 느릴지 모르지만, 분명 더 단단하고 나다운 길일 것이다.
그 쉼이 나를 살렸으니, 이제 나는 이 감사한 계절을 마음에 품고 다시 노를 젓는다.
멈춤은 실패나 후퇴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한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멈춰야 한다는 신호를 스스로 외면하고 달리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여러분의 계절들도 따뜻한 위안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비로소 내 안의 빛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타인이 그어놓은 빗금에 상처받지 마시길요. 당신의 계절은 당신만의 속도로 충분히 아름답게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안아주는 이 시간이 우리를 더 견고하게 빚어줄 것임을 믿습니다.
오늘의 숨결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나를 만난다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기에 가장 아픈 배신을 만났습니다. 열심히 일했던 만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예기치 않은 멈춤이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병들게 하였지만,
그로 인한 예기치 않았던 쉼표는 삶이 제게 건네는 가장 절박한 구원의 손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간 하지 못했던 질문들, 외면했던 마음들, 당연하다고 여겼던 속도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지요.
억울함을 풀 길이 없어 시작한 글쓰기가 저를 살렸습니다. 이 글은 저처럼 '열심히'라는 함정에 빠져 자신을 잃어버린 분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입니다.
이 글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자신을 다시 만나는 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비워냄으로써 비로소 채워지는 평온을 만납니다.
타인의 날카로운 말보다 내 안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멈춤의 끝에서 만난 나는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될 당신의 계절을 온 마음 다해 응원합니다.
지독했던 고통은 결국, 오늘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언어가 되었습니다. 흔들리며 살아내는 삶의 이유를, 조용히 당신에게 건넵니다.
by 숨결로 쓰는 biroso나.
이미 충분히 단련되었다고 믿었던 사람에게도, 삶은 새로운 방식의 균열을 다시 건네기도 합니다.
이 글은 그 균열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나를 다시 세운 기록입니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지나왔다.
그러나 아직, 나를 잃지 않았다.
느려도 괜찮다, 다시 가고 있으니까.
쉼은 끝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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