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의 숲 <나를 대접하는 고요>

침묵의 겹을 지나 당도한 오직 나만의 성소

by 숨결biroso나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식탁에 나를 앉히는 일은,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숲으로 들어가는 길은 대개 말이 적다

표지판도 설명도 없이
그저 나무의 그림자만
겹겹이 길 위에 누워 있다

발밑에서
마른 잎 하나가 부서질 때
숲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대신
숨이 한 박자 늦춰지고
어깨가 이유 없이 내려간다

여기서는
괜찮냐고 묻지 않아도 된다
잘 견뎠는지
어디가 아픈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숲은 이미 알고 있다는 얼굴로
나를 안쪽으로 들인다





숲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소리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소리다.
머릿속에서 계속 이어지던 문장들,
누군가에게 건네지 못한 말들,
스스로에게조차 끝내하지 못했던 변명들이
나무 사이에서 조금씩 힘을 잃는다.

대신 들려오는 것은
내 발이 땅을 밟는 소리,
외투 소매가 스치는 소리,
숨이 폐 안으로 들어왔다가 나가는 소리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된다
아, 내가 아직 여기 있구나.
아직 살아 있고, 나를 데리고 이곳까지 왔구나.

숲은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빨리 걷지 않아도 되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한 걸음,
그다음 한 걸음만 허락한다.

나무들은 모두 다른 방향으로 자라 있다.
어떤 것은 빛을 향해 비틀리고,
어떤 것은 바람을 피해 굽어 있고,
어떤 것은 이미 오래전에 성장을 멈춘 채 서 있다.

그 누구도
자신의 모양을 설명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자랐는지
어디서 상처가 났는지
말하지 않아도 나무는 나무로 충분하다.

나는 그 앞에서
괜히 등을 곧게 펴지 않는다.
잘 살아온 얼굴을 하지도 않는다.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아챈다.

숲의 공기는
차갑지도, 포근하지도 않은 딱 살아 있는 온도다.
살아 있다는 사실을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온도.

길 옆의 돌에 잠시 앉는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휴식이 아니라,
나를 다시 나에게 돌려주기 위한 멈춤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마음이 먼저 풀린다.
무언가를 잘 해내지 않아도,
아무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느낌이 천천히 퍼진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자리에서 나를 함부로 대했을까.

피곤한 몸을 끌고도
조금만 더 참자고 다그쳤고,
마음이 다쳤다는 신호를 유난으로 밀어냈다.
괜찮아야 할 이유를 찾느라
괜찮지 않은 나를 자주 뒤로 밀어두었다.

숲에서는 그런 계산이 작동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잘해온 나도,
버티지 못한 나도 같은 자리에 앉는다.

독백의 숲이란
말을 많이 하는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천천히 도착하는 곳이다.

오늘 하루를 평가하지 않는다.
누구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잠시 멀어진다.

그 대신 몸이 먼저 묻는다.


지금 숨은 괜찮은지,
발바닥은 어떤지,
심장은 너무 서두르지 않는지.

나는 이 숲에서
나에게 차를 한 잔 내준다.

물은 끓이지 않아도 되고,
향을 고르지 않아도 된다.
그저
지금의 온도로 지금의 나를 대접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나를 이렇게 대하는 일이
왜 이렇게 오랜만인지 조금 서글퍼진다.

하지만 숲은
그 서글픔마저 오래 붙잡지 않는다.
감정도, 이곳에서는 지나가는 손님일 뿐이다.

나무 사이로 빛이 한 줄기 내려온다.
정확히 나를 비추지도,
피하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냥 머문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된다.
회복이란
갑자기 밝아지는 일이 아니라
이렇게 빛이 있어도 괜찮고
없어도 괜찮은 상태로 돌아오는 일이라는 것을.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로움이 되지 않는 순간은 이런 때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내 목소리가 더 이상 쫓기지 않을 때.

나는 이 숲에서
다시 무엇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잘 사는 사람도,
강한 사람도, 괜찮은 사람도 되지 않는다.

그저, 이미 여기까지 살아온
한 사람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다.

숲은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침묵이
지금의 나를 가장 정중하게 대접한다.



침묵의 겹을 지나 당도한 오직 나만의 성소


우리는 일생 동안 얼마나 많은 소음의 허물을 뒤집어쓴 채 살아가는 것일까요.



세상의 모든 주파수를 끄고
나를 부르는 소리로부터 눈을 감을 때
비로소 문이 열리는 숲이 있습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묵은 생각들이
마른 잎처럼 밟혀 소리를 내고
오래전 잃어버린 나의 파편들이
이끼 낀 바위틈에서 반짝이는 곳


누구에게도 보일 필요 없는 문장들을
나무 밑동에 기대어 가만히 읊조려 봅니다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깊은 적막은
사실 세상에서 가장 밀도 높은 대화였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나를 처음 본 듯 환대합니다
차가운 이성보다는 따스한 연민으로
타인의 잣대가 아닌 나의 숨결로
오롯이 나를 대접하는 고요한 만찬.




소란한 세계를 건너온 나에게 바치는 정중한 마침표


세상의 모든 문장을 지우고 나면
비로소 들려오는 파동이 있습니다
마음의 가장자리에 고여 있던 말들이
숲의 정적을 타고 발등을 적시는 시간


나무들은 서로의 어깨를 건드리지 않고도
서로의 깊이를 읽어내고
바람은 이름 없는 들꽃의 떨림을
단 한 줄의 소문으로도 옮기지 않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투명해집니다
타인의 기대라는 무거운 겉옷을 벗어
굽은 가지 위에 걸어두고
오직 나의 숨소리만으로 가득 찬
이 고요의 만찬 앞에 앉습니다


누구에게도 허락받을 필요 없는 자유
나를 가장 나답게 대접하는 일은
이 깊은 적막 속에
나의 진심을 가만히 눕혀두는 것뿐입니다.





침묵으로 지어 올린 가장 안락한 별채


적막이 살갗에 닿을 때, 비로소 나는 나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보았습니다.


나무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
나는 소음의 외투를 벗어 숲의 입구에 걸어둡니다
아무도 묻지 않는 안부를
바람이 대신 물어오는 곳


뿌리 깊은 고요를 한 잔 우려내어
허기진 마음의 잔을 채우면
들리지 않던 문장들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립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수풀 사이로
오직 나만이 아는 길을 내어 걷는 일
그곳에서 나는 타인이 아닌
나를 가장 귀한 손님으로 대접합니다


세상의 속도에 발맞추느라 숨 가쁘게 달려온 당신에게, 고요는 정지(停止)가 아니라 정화(淨化)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지만, 이 독백의 숲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나무들처럼, 우리 또한 아무런 수식어 없이도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대접하는 법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작은 숲 하나를 가꾸고, 하루에 단 십 분이라도 그곳에 머물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

그 다정한 고요함이 우리의 지금을 버티게 하는 가장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줄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은 이 숲에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심는 행위와 같습니다. 오늘 남긴 고요의 흔적들이 삶의 폭풍우가 몰아칠 때 우리를 지켜줄 든든한 방풍림이 되어줄 것입니다.

나를 대접하는 고요는 결코 이기적인 도피가 아닙니다. 그것은 더 건강하게 사랑하기 위한, 더 깊게 연대하기 위한 가장 숭고한 충전의 시간입니다.


이제 나만의 숲에서 가장 깊은 숨을 들이마셔 보세요. 그 숨결 끝에 묻어 나오는 안식의 향기를 느껴보세요.

우리의 내면에는 이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견고한 숲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 숲의 고요가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고요함은 우리가 세상에 던지는 가장 우아한 저항이며, 동시에 자신에게 건네는 가장 지극한 사랑입니다.




오늘 밤, 마음의 숲에는 어떤 바람이 불고 있나요?


나를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다시 걸어갈 힘을 품고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앉았을 때, 마음은 가장 솔직해집니다.
고요는 나를 비우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작은 고요가 모여 '나'라는 거대한 숲을 이룹니다. 그 평온함 속에 깊이 스며들어 온전한 휴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숲의 숨결이 당신의 지친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줄 것입니다.



스스로를 환대하는 그 찰나의 시간이 우리의 생을 버티게 하는 빛이 되길 응원합니다.
머문 고요의 자리마다 위로라는 이름의 꽃이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by 숨결로 쓰는 biroso나.


고요는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아무도 밀어내지 않는 자리에서 나를 잠시 놓아두는 시간이다.

그렇게 마음은 스스로 돌아갈 방향을 기억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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