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허기> 낡은 외투를 벗고 새 숨을 입는 일

싫증이라는 거울 앞에 선 당신에게

by 숨결biroso나


마음의 허기



어느 날
아무것도 모자라지 않은데
마음이 먼저 헐거워진다


새로운 것이 곁에 있는데
숨은 가벼워지지 않고


분명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자리에 서 있는데


나는 아직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제야 알게 된다
싫증은 바깥에서 오지 않고


머물러 있던 내가
스스로 식힌 온기라는 것을



싫증이라는 거울 앞에 선 당신에게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갈구합니다. 마치 사막을 걷는 여행자가 오아시스를 찾듯, 혹은 긴 가뭄 끝에 단비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손에 넣지 못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며 앞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


하지만 참 이상한 일이지요.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선 새집의 빳빳한 벽지도, 수개월을 고민하다 들여놓은 세련된 디자인의 가구도 한 달만 지나면 풍경의 일부가 되어 무색무취하게 느껴집니다.

손에 넣기 전까진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던 열망이 막상 현실이 되는 순간, 권태라는 이름의 잿빛 먼지가 그 찬란했던 빛깔 위로 소리 없이 내려앉습니다.


어느 날 늦은 밤, 거실 한복판에 덩그러니 앉아 사방을 둘러보며 나직이 혼잣말을 내뱉곤 합니다.


왜 나는 늘 제자리인 것 같을까?


분명 더 좋은 환경으로 옮겨왔고 더 좋은 물건들을 곁에 두었는데 왜 내 마음의 허기는 가시질 않는 거지?


도대체 무엇을 더 채워야 이 지루한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가슴 시린 메아리가 되어 돌아옵니다.


우리는 흔히 싫증의 이유를 외부에서 찾으려 합니다. 대상이 변했거나 본래 생각했던 것보다 가치가 없었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또 다른 새것을 찾아 시선을 돌리곤 하죠.


하지만 사실 싫증의 뿌리는 밖이 아니라 고여서 흐르지 못하는 내면의 웅덩이에 있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은 채 대상만 바꾸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다른 색깔의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새로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에릭 프롬은 인간을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주어진 모습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형성해가는 존재"라고 말입니다.


헤르만 헤세 또한 그의 문장에서 이렇게 썼습니다.“새는 알 속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우리가 깨야 하는 것은 바깥의 세계가 아니라 어쩌면 익숙해져 버린 ‘나’일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어제와 똑같은 생각의 껍질 속에 갇혀 성장을 멈추어 있을 때 세상은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혀도 결국 반복되는 흑백 영화일 뿐입니다.


내가 정지해 있으니 흐르는 강물조차 정체된 것처럼 느껴지고 내가 무뎌져 있으니 봄날의 화사한 꽃향기도 코끝을 스치지 못하는 법입니다.


성장하는 사람은 싫증과 쉽게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거울 속의 자신에게서 새로운 결을 발견하듯 익숙한 일상에서도 매번 낯선 아름다움을 길어 올립니다.


마치 매일 굽는 빵이라도 그날의 습도와 공기의 흐름, 불의 미세한 온도를 조절하며 그 미묘한 차이를 즐기는 장인처럼 말입니다.


비결은 단순하면서도 엄격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는 정직함입니다.


그래, 지금의 나는 이만큼이구나.
하지만 내일은 한 뼘 더 깊어질 수 있어.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영혼의 보폭을 조금씩 넓히는 이들에게 세상은 매번 다른 무대를 선물합니다.


내가 바뀌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채도와 명도가 비로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제와 같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익숙한 가구가 먼지처럼 내려앉아 있고, 오래된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더 이상 나를 흔들지 못합니다.


새것이라 믿었던 모든 것들은 시간의 파도에 씻겨 무색무취해지고, 우리는 다시 낯선 갈증을 찾아 창밖을 기웃거립니다.


우리가 그토록 지루해하는 저 풍경은 우리의 눈동자가 멈춰 선 자리에서 함께 박제가 되어버 렸다는 것을.


싫증의 근원은 대상의 변질이 아니라 변화하지 않는 나에게 있으며, 정직한 자기 성찰과 성장을 통해 삶의 생동감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허기
낡은 외투를 벗고 새 숨을 입는 일



'싫증'이란 이제 당신이 변할 때가 되었다는 내면의 간절한 신호입니다.


낡은 생각의 외투를 벗어던지고 스스로를 새롭게 빚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지루함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매듭을 풀 열쇠 또한 나의 손안에 쥐어져 있습니다.


내가 어제보다 조금 더 투명해졌다면 오늘 마주하는 커피 한 잔의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양새도, 늘 걷던 산책길의 보도블록 틈에 핀 이름 모를 풀꽃도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


속이지 않는 마음으로 나를 직면하고 성장의 길을 택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다워지는 시간 속에서 영원히 늙지 않는 일상의 경이로움을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지루함은 대상이 주는 형벌이 아니라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스스로에게 씌운 굴레입니다.


오늘, 무엇을 더 가지기 전에

어떤 숨결로 자신을 새롭게 빚어내시겠습니까?





나를 바꾸지 않고 세상을 바꾸려 했던 미련을 이제야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익숙한 가구 위로 흐르는 햇살이 어제와 다르게 느껴지는 건 내 마음이 한 뼘 자란 덕분일 테지요.


성장이란 낡은 허물을 벗고 매일 조금씩 낯선 나를 만나는 용기 있는 여정입니다.

오늘도 스스로를 빚으며 지루할 틈 없는 생의 한가운데로 뜨겁게 걸어 들어갑니다.



by 《지금, 나를 빚는 시간》 ⓒbiroso나.


지루함은 변화를 두려워한 마음이 스스로에게 씌운 얇은 굴레일 뿐입니다. 권태의 원인을 외부의 낡음으로 돌리곤 했으나 문득 제 마음의 창이 닫혀 있었음을 발견하며 이 글을 씁니다.

내가 달라지면 어제의 지루함은 오늘의 경이로움이 됩니다. 정직한 자신을 마주하며, 비로소 나다워지는 글벗님들의 오늘을 온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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