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글 하나로 마음을 포개어

붉은 눈동자에 틔운 봄의 문장

by 숨결biroso나


밤새 누군가

내 눈동자 속에

붉은 실을 풀어놓은 것일까.


거울 속 흰자위 위로

가시덤불처럼

뻗어 나간 실핏줄


안약 한 방울

투명한 수평선을 그릴 때,


비로소,

마주하는

흐릿한 세상 너머의 선명한 진실




"꽃이 지는 건 두렵지 않으나 ,
꽃 피우기까지의 설렘을 잊을까 두렵다"



"작가님, 눈에 핏줄은 왜요?"

다른 작가님 글 아래 남겼던 그 다정한 안부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내 거울 앞에 머문다.


좋아하는 영화나 공연, 책 한 권 펼쳐볼 여유조차 가파른 일상에 내어주고 나니, 남은 것은 뻑뻑한 안구와 진통제로 달래는 지독한 두통뿐이다.


어느덧 경칩이 지나 땅속의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는 계절이다. 차가운 겨울 끝자락을 비집고 올라오는 파릇한 새순을 보며 생각한다.


저 여린 잎들도 단단한 지표면을 뚫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실핏줄을 터뜨렸을까?


담장 너머 매화가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릴 듯한데, 내 시야는 여전히 안개 낀 새벽녘처럼 침침하다.


"꽃이 지는 건 두렵지 않으나 , 꽃 피우기까지의 설렘을 잊을까 두렵다"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나 역시 글을 쓰지 않는 괴로움이 쓰는 고단함보다 훨씬 더 크기에 오늘도 펜을 든다.


글쓰기는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하루를 연명하게 하는 간절한 숨결이기 때문이다.




'복직'이라는 꿈이 '퇴직'이라는
갈망으로 번지려는 찰나 그 어디쯤



복직을 하고 두 달이 지났다.


상사의 완고한 기대와
아랫직원의 거침없는 요구 그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닳아가는 시력을 모아
누군가의 하루를 잇는 다리가 된다.


눈이 침침해 글자가 흐려질 때마다
마음의 눈은 오히려 깊은 곳을 응시하나니
붉게 충혈된 저 눈은 상처가 아니라
오늘을 온몸으로 밀어 올린 생의 훈장이련가.


출근하는 엄마지만 집안의 온기를 잃지 않으려 서두르는 퇴근길.


집으로 돌아오면 세대차이 나는

남편과 딸 사이를 잇는 부드러운 완충재가 된다.


"엄마, 나 피곤해."
"엄마, 나 배고파."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의 지친 목소리가 들리기 전, 나는 미리 욕실로 향해 부랴부랴 씻고 간식을 준비한다. 수증기 가득한 거울 속에서 붉은 눈을 마주하며 생각한다.


이 짧은 분주함은 가족이라는 거대한 성채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나만의 작은 조공이련가


다시 문 밖을 나서면 풍경은 더욱 정교한 조율을 요구한다. 상사의 완고한 기대와 아랫직원의 거침없는 요구 그 정중앙에 서서 매끄러운 완충을 기하는 중간관리자의 삶.


우리 세대는 유교적 가치관과 현대 문화의 파고가 부딪히는 연안에 서 있는 낀 세대다. 양쪽의 언어를 통역하느라 영혼의 시력은 흐릿해지지만, 그 위태로운 균형 잡기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지탱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직장 내 괴롭힘의 아픔을 딛고, 복직 후의 시간은 다정한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졌지만, 몸이 기억하는 피로의 시차는 조금 더 긴 호흡을 요구하는 모양입니다.


마음이 괜찮다 속삭여도 몸은 붉은 실핏줄로 정직한 쉼을 간구하네요.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누군가의 완충지대가 되어주느라 붉게 충혈된 중년의 눈은 사실 세상을 따뜻하게 품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요.


마음이 앞서가더라도 몸의 속도를 기다려주며, 우리 조금은 천천히 숨을 이어가기로 해요.




브런치,
글 하나로 마음을 포개어



브런치라는 숲에 집을 짓고 글을 쓴 지 어느덧 9개월. 매일같이 쏟아내던 문장의 폭포는 이제 에너지의 소진과 함께 느릿한 여울목이 되었습니다.


애석하게도 그 귀한 응원들에 일일이 답을 남기지 못하는 마음이 무거워, 꿈속에서조차 답글을 달다가 소스라쳐 깨어날 때가 있습니다.


직접적인 화답은 아닐지라도, 틈틈이 글벗님들의 뜨락을 방문해 흔적을 남기는 저의 진심이 스며들기를 바랄 뿐입니다.


일일이 댓글에 답하지 못하는 저의 게으름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겠지요.

그렇게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은 제 진심은 이미 꿈 너머까지 닿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런치에서 얼굴도 모르는 작가님들과 글이라는 가느다란 끈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토닥이는 이 순간들이 마법같이 느껴집니다.


서로의 글을 읽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낀 세대의 고단함을 버티게 하는 가장 큰 완충지대가 아닐까 생각해요.


얼굴 모르는 우리가 글 하나로 마음을 포개는 이 신비로운 연결이 오늘도 저를 숨 쉬게 합니다.




갱년기라는 조금 무거운 외투를 걸치고

진통제로 두통의 모서리를 조금 깎아내며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립니다.


괜찮다고.

버티고 있다고.


가장 사적인 통증이

누군가에게는

뜻밖의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비록, 안약에 기대어 세상을 보고 있지만

곧 괜찮아지겠죠.


붉게 충혈된 눈 속에서도

우리의 봄은

조용히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붉은 피꽃이 지고 난 자리에

더욱 단단한 생의 열매가 맺힐 것을 믿으며,

오늘도 숨을 쉬듯 글을 씁니다.


우리 조금은 느려도 괜찮으니,

이 길을 함께 끝까지 걸어가 보아요.



by 숨결로 쓰는 biroso나.



오늘도 쓰는 자리에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어지러운 하루를 다독이며,
쓰는 동안만큼은 비로소 내가 되어간다.

브런치는 그런 공간이다.
세상 속에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자리.
나의 이야기를 쓰고,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숨결처럼 닿기를 바라는 곳.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나 혼자 쓰는 글로
머물러 있었을지도 몰라요.

이 글은
지금도 묵묵히 글을 읽어 주시는
글벗님들에게 보내는 조용한 안부입니다.

“ 오늘도 머물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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