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기억에 대하여
사라지지 않는 것은
나를 이루는 무늬가 된다
잎을 다 놓아버린 나무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한 계절을 다 지나온 얼굴
바람이 스치고
눈이 쌓이고
밤이 몇 번이나 더 깊어졌는지
말하지 않아도
가지 끝마다
숨이 조금씩 굳어 가고
비어 보이는데
안쪽에서는
무언가 조용히 단단해진다.
어쩌면 우리는
계절을 잊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딘 만큼
안으로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억의 지층, 그 아래에서 숨 쉬는 문장
아침 공기가 낮게 가라앉아 있던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아직 닿지 않은 길 위에서
나는 한 그루 겨울 나무 앞에 멈춰 섰습니다.
나무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저 잎을 다 내려놓은 채
하늘을 향해 가지를 들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올려다보니
겉으로는 텅 빈 듯 보이던 줄기 안에
수없이 겹쳐진 시간이 서 있었습니다.
겨울 나무의 나이테가 유독 촘촘한 구간은
그해의 추위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나무는 추위를 밀어내지 않았습니다.
그 차가움을 안으로 들여
자기 몸의 일부로 남겼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그런 결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시간이 약이라 말합니다.
누군가는 잊어야 산다고 말합니다.
강해져라, 넘겨라, 지워버려라.
그러나 생을 지키기 위해 새겨진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어떤 기억은
아무 예고도 없이 돌아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낯선 공기의 냄새 하나에
이미 지나간 줄 알았던 겨울이
다시 심장 가까이 내려앉습니다.
그 기억은
의식의 아래쪽에서
조용히 나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바람에
가슴을 먼저 떨리게 하는 현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그 떨림이
약함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흐려지지 않는 기억은
이미 나의 감각을 이루는 조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지워지지 않는 자국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아릿해져 오곤 합니다. 하지만 그 자국들은 우리가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에도 자신을 놓지 않았다는 가장 선명한 사랑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강함은
상처가 사라져 생기는 힘이 아니라
상처를 안은 채
걸어가는 법을 배우면서 생겨나는 숨의 깊이인지도 모릅니다.
나를 흔드는 감정의 뿌리가
사실은 나를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뻗어 나온 줄기였음을 깨닫는 순간,
고통은 더 이상 낯선 방문객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만이 가진 무늬가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억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기억을 품는 호흡의 결입니다.
지워지지 않는 흔적 앞에서
우리는 종종 무력해집니다.
그러나 그 흔적은
약해서 남은 것이 아니라
그만큼 간절히 생을 붙들었던 기록입니다.
그래서 어떤 겨울은
지나간 계절이 아니라
지금도 내 안에서
조용히 나를 자라게 하는 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도
그 촘촘한 나이테를 안고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조금씩 숨을 깊게 들이마십니다.
살다 보면 잊고 싶다는 말이 먼저 나올 때가 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습니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나를 붙들어 주고 있었다는 것을요.
겨울을 견딘 나무가 더 깊은 나이테를 남기듯,
우리 마음도 지나온 계절만큼 숨이 깊어집니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는 상처 위에 선 존재가 아니라
상처를 안고 서 있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그림자를 지우려 애쓰기보다 그 그림자를 비추는 현재의 빛을 봅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아픈 문장들을 엮어 삶이라는 한 편의 위대한 소설을 써 내려갑니다.
어떤 그리움은 지층이 되어
발길 닿는 곳마다 눅눅한 울림을 내고
어떤 아픔은 섬광이 되어
눈 감은 밤에도 망막 위를 번득이며 지나간다.
망각의 바다에 던져 넣었다 믿었던 돌멩이가
밀물 때마다 내 발등 위에 차갑게 놓일 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된다
지워진 줄 알았던 것이 실은 나를 빚고 있었음을.
아직,
지워지지 않는 기억 하나를
몰래 밀어내고 계시나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깊이 살아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잊어서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안고 가기에 단단해지니까요..
오래된 기억은 낡아가는 것이 아니라 깊게 숙성되는 것입니다.
그 아래 숨 쉬는 문장이 오늘을 견디는 가장 뜨거운 온기가 됩니다.
지층을 파헤치기보다 그 결 위에 고요히 머무는 법을 배웁니다.
내면의 언어들이 일구어낸 삶의 지형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신비입니다.
기억이 쌓여 지층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흘렀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무게를 견디며 우리 영혼이 얼마나 단단해졌는지를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오늘 당신의 발밑에서 숨 쉬는 가장 따스한 문장은 무엇인가요? 그 낮은 숨결이 당신의 오늘을 포근히 감싸 안아주기를 바랍니다.
사라지지 않는 시간은 나를 지키는 숨이었습니다.
견뎌낸 계절은 우리 몸 안에 남아 있습니다.
고통은 때로 나를 살린 뿌리입니다.
우리는 살아낸 만큼 안으로 깊어집니다.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삶을 지나며 남겨진 숨의 결을 기록합니다.
지워지지 않는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나 자신에게 가까워집니다.
망각 너머에 존재하는 단단한 진실들
세월이 깎아낸 아름다운 마음의 형상
압력 속에서 더욱 투명해지는 영혼의 언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지층을 가진 기록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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