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김밥> 냉장고를 비우며 삶을 여미다.

흩어진 조각들이 둥글게 모여 일궈내는 온기

by 숨결biroso나


주말은 그렇게 시작된다.



주말 아침 냉장고 문을 열면

정신없이 지나가 버린

한 주의 흔적이 다시 쏟아진다.


명절이 지나고 남은 나물거리들

샐러드 만들고 남은 채소류

그리고 애매하게 남은 반찬

언젠가 먹겠다고 넣어두고 잊어버린 것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마치 말을 아끼는 사람들처럼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풍경.


아직 아무도 깨지 않은 부엌
식어 있는 공기
어제의 말들이
의자 위에 가만히 놓여 있다.


문을 열기 전
손끝이 잠깐 머문다
흩어진 시간들이
한꺼번에 쏟아질까 봐


그래도
오늘은
다시 모아 보자고
부엌 한가운데
아주 작은 결심이 놓인다


주말은
그렇게 시작된다.




흩어진 조각들이
둥글게 모여 일궈내는 온기



매주 주말이면 어김없이 냉장고를 비워낸다.


정리를 한다기보다,
흩어진 시간을 다시 불러 모으는 기분으로.


시금치는 한 번 더 숨을 쉬고

당근은 칼끝 아래에서 결을 드러낸다.

고사리는 여전히 보드랍고,

도라지는 여전히 단단하지만

어쩐지 오늘은 말을 걸면 대답할 것 같다.


“잘 있었니?
너희들끼리 또 이렇게 있었구나.”


"주말엔 김밥이지.
오늘도 너희들을 새롭게 변신시켜 줄게."


혼잣말처럼 흘린 말이
냉장고 안쪽에서 되돌아온다.



샐러드에 쓰고 남았던 닭가슴살.
손으로 찢으며 나뉘는 결을 보고 있으면
어제와 오늘 사이의 시간이
조용히 풀어지는 느낌이 든다.


약간의 양념.

버려질 뻔했던 것들이
손길을 만나자 갑자기 살아난다.

오이도 꺼낸다.
소금, 설탕, 식초를 조금씩 더해
잠깐의 시간을 준다.

그 짧은 기다림이
아삭아삭 씹히는 맛을 더해

김밥 전체의 숨을 바꾼다는 걸
이제는 비법처럼 안다.

아니, 손이 먼저 기억한다.


밥을 펼치고 깻잎이나 상추를 얹고

나물과 고기,
절인 오이와 단무지,
노란 달걀지단 등 남은 반찬을 차례로 얹는다.

김 위에 작은 정원이 만들어진다.

그때
내 옆에 그림자 하나가 앉는다.

큰딸이다.

말로 마음을 다 전하지 못하지만
김밥이 말리는 과정을 바라보는 눈빛만은
세상 누구보다 또렷하다.

김밥 한 조각을 건네면
아이의 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주방의 불을 한 톤 밝힌다.

나는 그 순간마다
세상이 조금 괜찮아진다고 믿게 된다.

작은딸의 도시락도 함께 싼다.
주말에도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를 생각하며
김밥을 조금 더 단단히 말아본다.

무너지지 않게.
흩어지지 않게.

도시락 뚜껑을 닫는 순간
말 대신 마음이 들어간다.


"엄마. 잘 먹을께요."
"난 엄마 김밥이 제일 맛나더라."



참기름 냄새를 따라 남편이 나타난다.
김밥 한 조각을 집어 들고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


“음... 먹을만하네.”


언제나 짧은 그 한마디.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말속에
수고했다는 인사와
괜찮다는 위로와
오늘도 잘 살고 있다는 확인이
겹겹이 들어 있다는 것을.





김밥은 참 이상하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것들을
아무 일 없다는 듯 끌어안는다.


따로 놀던 재료들이
김의 품 안에서 하나의 모양을 갖추듯
우리 가족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조금씩 다르고,
조금씩 모자라고,
그래도 함께 말려
둥근 하루를 만든다.

남편은 라면을 끓이고,

나는 김밥을 썬다.

단면 속에는
한 주간의 끝,
아이의 웃음,
재수생의 시간,
남편의 무심한 응원이 층층이 들어 있다.


냉장고를 비우는 일은
어쩌면 마음을 정리하는 일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남겨진 것들을 버리는 대신
다시 연결해 보는 일.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을 잘 말아
내일로 건네는 것.

그 정도면
우리는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주말의 김밥,
냉장고를 비우며 삶을 여미다.



매주 주말 같은 시간
나는 흩어진 하루를 가만히 모은다.


잘라 두었던 생각들
미처 닫지 못한 마음들
식탁 위에 남겨진 작은 한숨까지


한 공간 위에
조용히 펼쳐 두면
어지럽던 시간도 잠시 숨을 고른다.


둥글게 모아 쥐는 순간
우리는 다시
우리로 묶인다.





주말의 식탁 위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올라옵니다.

완벽한 재료가 아니라
남겨진 것들로도
충분히 따뜻한 한 끼가 만들어집니다.

지금, 여러분의 냉장고 속에도
다시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녀석들이
하나, 둘쯤 있지 않을까요.



살다 보면 새것보다 남겨진 것들이 더 마음에 오래 남곤 하지요.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마음,
버리지 못하고 남겨둔 시간,
그리고 서로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가족의 하루까지.

김밥을 말며 알게 됩니다.
삶은 채우는 기술보다
여미는 기술에 가깝다는 것을.

둥글게 말아 쥔 오늘이
내일의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버려질 뻔한 것들을 모아 말아 올릴 때, 우리는 다시 ‘우리’가 된다.



by 《엄마의 숨》 ⓒbiroso나.



비워낸 자리에서 마음은 가벼워진다.
우리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함께여서 따뜻하다.
주말의 김밥 한 줄이 삶을 다시 묶어준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내는 마음. 사소한 하루 속에서 발견하는 가장 깊은 사랑의 이야기.

< 뒤죽박죽 냉털이 주말 김밥 >

예전 사진 있길래 살짝 공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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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