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왜 안 들어오는걸까

함께 사는 사람들의 시간

by 숨결biroso나


재활용 분리수거장에서 마주한
함께 사는 사람들의 시간


주말의 끝자락, 아파트 단지는 일제히 '비움의 소음'으로 깨어난다. 베란다 창문을 타고 넘어오는 비닐의 바스락 거림, 플라스틱 용기들이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내는 둔탁하고도 마른 울림들.

그것들은 각자의 집이라는 내밀한 요새에서 흘러나온 생의 흔적들이 한 곳에 모여, 잠시 같은 공기를 공유하는 일종의 '해체 의식'이다. 나는 그 시간의 가장 정갈한 앞줄을 맡는다.


제품에 붙은 라벨을 점선 따라 조심스레 벗겨내고, 캔 속의 이물질을 맑은 물로 한 번 더 헹구어내며, 종량제 봉투에 담기지 못한 종이 상자들을 크기별로 포개어 가지런히 묶는다.

쓸모를 다해 내쳐지는 것들이지만, 적어도 내 손을 떠날 때는 조금 더 단정하고 예의 바른 모습으로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손끝에 남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일주일을 성실하게 살아낸 우리 가족의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자, 누군가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 싶은 나의 작은 숨결이다.


그리고 이 모든 갈무리의 마침표는 늘 남편의 몫이다.

"여보, 이거 좀 내려놓고 와요."

나는 아무렇지 않게 등을 떠밀지만, 그 일이 단순히 폐기물을 처리하는 귀찮은 심부름만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사실 나는 남편이 한 번에 버릴 수 있도록 정돈해 놓는 내내, 그가 이 묵직한 짐을 들고나가 바깥세상의 차가운 공기를 직접 체감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묶어 보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몇 번이나 층수를 바꾸며 복도에 육중한 소리를 남겨도 남편의 발걸음은 좀체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처음에는 조금 답답한 마음이 앞섰다. 집안일에 서툰 그가 밖에서 무얼 하느라 이토록 지체하는 걸까.

혹시나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와 사소한 시비라도 붙은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쯤 창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엔 내가 알지 못했던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재활용장 한켠,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두 남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남편과 경비원 아저씨였다. 두 사람은 아무것도 버리지 않은 채, 오직 서로의 존재만을 나누고 있었다. 남편은 내가 챙겨준 음료를 아저씨와 나누어 마시며, 그 좁은 경비실 창가에 기대어 한참이나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괜히 딴청을 피우느라 늦게 들어오는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사실은 누군가의 고단한 인생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며 그들의 시린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니. 무거운 재활용 더미를 내려놓은 그의 빈손이 실은 누군가의 무거운 마음을 대신 들어주느라 그토록 늦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남편의 뒷모습이 평소보다 훨씬 크고 듬직해 보였다.

누군가의 고독을 온전히 받아내줄 수 있는 넓은 어깨를 가진 남자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내 마음속을 따스하게 채워주었다.


우리 시대 부모님들의 아픈 자화상


남편이 나중에 전해준 이야기들은 우리 시대 부모님들의 아픈 자화상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이사 오기 전 아파트에서도 그랬다. 우리가 떠나던 날, 경비 아저씨는 못내 서운한 기색을 감추며 남편의 손을 꼭 잡으셨단다.

"이제 얘기 나눌 사람이 없어 참 적적하겠네..."

그 짧은 한마디는 좁은 경비실 안에서 시계 초침 소리만을 동무 삼아 하루를 견뎌내야 했던 한 노년의 생애가 통째로 뱉어내는 고독의 증언이었다.


그 숨구멍을 통해 흘러나온 사연들은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생생했다. 한 경비 아저씨는 자녀와 아내를 외국으로 보내기 위해 청춘을 다 바쳐 기러기 아빠로 살았다고 했다. 더 나은 교육과 미래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소진했지만, 정작 돌아온 가족들은 서로에게 낯선 섬이 되어 있었다.


같은 언어를 쓰지만 마음은 통역되지 않았고, 긴 공백은 '가족'이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었단다.

"가족들이 돌아와도 다들 남 같아"

아저씨의 말은, 텅 빈 재활용 봉투처럼 허허로운 울림을 남겼다.


또 다른 아저씨의 고백은 더 아릿했다. 자식들에게 전화가 올 때는 오직 경제적 도움이 필요할 때뿐이라고.

"아버지"

라고 부르는 목소리 뒤에 숨겨진 목적을 알면서도, 아저씨는 그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자신의 노년을 다시 노동의 현장으로 밀어 넣고 계셨다.


자식을 위해 삶을 끝까지 밀어주고 자신은 정작 뒤로 물러앉은 노년. 그들의 헌신이 왜 이토록 적막한 고독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일까.


그 순간, 재활용장에 쌓여 있던 것들이 더 이상 단순한 물건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누군가의 닳아버린 시간이었고, 누군가의 숭고한 선택이었으며, 또한 누군가의 눈물겨운 포기였다.


경비원이라는 직함 뒤에는 저마다의 삶이 겹겹이 정박해 있었다. 평생의 직장을 마치고 다시 생의 현장으로 나온 분들, 자식을 키워내느라 자신의 시간을 전부 소진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하루를 묵묵히 견뎌내시는 분들.

그분들의 시간은 아주 느리고 고요하게 흐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감히 헤아리지 못할 거대한 삶의 퇴적층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로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깊게 인사를 건넨다. 출근길의 분주함을 잠시 누르고 경비실 창 너머로 건네는 그 작은 인사가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다정한 문장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청소하시는 분들을 마주치면 나는 꼭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지요."

짧은 한마디지만 그 말 뒤에 따라오는 표정은 생각보다 깊고 환하다. 그분들은 잠깐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조금 더 밝아진 얼굴로 자신의 하루를 이어간다.


버려지는 것들 사이에서
비로소 남겨야 할 마음을 배운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서로의 삶이라는 섬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주 작은 말 하나로 그 거리는 기적처럼 줄어들게 마련이다.

버려지는 것들 사이에서 비로소 남겨야 할 마음을 배운다. 우리가 끝까지 남겨야 할 것은 낡은 물건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말 한마디, 짧은 눈인사, 잠깐의 안부. 그 사소한 것들이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하는 다정하고도 단단한 지지대가 될 것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는 일, 그 숨결을 귀하게 여겨주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비워낸 자리마다
다시 온기가 고인다.


세상은 점점 편리해지지만 사람 사이의 길은 더 좁아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자주, 더 먼저 말을 건네야 합니다. 남편이 경비 아저씨와 나누던 그 음료 한 잔처럼, 우리의 작은 관심이 누군가의 시린 마음을 녹여줄지도 모르니까요. 비워낸 자리마다 다시 온기가 고여가는 그런 다정한 삶을 살아가기로 해요.


오늘, 같은 공간을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먼저 따뜻한 시선을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나의 작은 환대가 생각보다 오래도록 누군가의 가슴속에 머물며 외로운 밤을 이겨낼 빛이 되어줄지도 모르니까요.


다 버려도 남겨야 할 것은, 결국 사람이겠지요. 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서로를 지나치며 살고 있습니다. 다정한 말 한마디가 힘든 하루를 버티게 한다는 것을, 함께 산다는 건 서로의 숨결을 알아보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비워내는 자리에서 배운다.
남겨야 할 것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그 작은 숨결들이
누군가의 하루를 조용히 붙들어 준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먼저 말을 건네야 한다.


남편이 그 자리에서
음료를 나누며 머물렀던 것처럼.


그 짧은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는 온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비워낸 자리마다
다시 온기가 고인다.



지나치기 쉬운 일상속에서 조용히 피어난 마음의 풍경을 기록합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사람의 온도를 다시 꺼내어 건넵니다.


《내 마음의 풍경》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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