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사랑하고 있었을까>

9화 『딸에 대하여』, 사랑이라는 이름의 간섭

by 숨결biroso나

우리가 믿고 있던 사랑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살면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이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널 위해서야.”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그러나 그 말들 속에는
상대를 위한 배려보다
내가 불편하지 않기 위함이 숨겨져 있다.

사랑하니까 이해하라고 말하고,
사랑하니까 고치라고 말한다.


그 말의 끝에는

사실 '사랑하니까'라는 방어막이 따라붙는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가장한 지배와 간섭을
사랑 그 자체로 착각한 채 살아간다.







김혜진 작가의 소설 『딸에 대하여』

읽고 나면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정말 자식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기대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동성애자인 딸과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의 이야기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순한 세대 간 갈등이 아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얼마나 쉽게 누군가를 옭아매는지를
엄마의 시선을 통해
딸 동성커플의 삶을 관찰하는 구조로 전개된다.





소설 속 ‘엄마’는 성실한 간병인이다.

헌신적으로 딸을 키워냈다고 믿는다.


하지만 딸이 말한다.

“나, 여자랑 함께 살아. 행복해.”


그 짧은 한마디에,

엄마의 세계는 조용히 무너진다.


그 무너짐은 딸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세워둔 ‘정상성의 서사’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 애는 원래 착했어. 내 말도 잘 듣고.”


이 말은 회상이 아니라 선언이다.

그 애는 내 기준 안에 머물러 있던 딸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엄마는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이해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이해하는 순간,

자신이 옳다고 믿어온 모든 것이 부정되기 때문이다.


딸은 엄마와 싸우지 않는다.

반박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말한다.

“행복해, 나는.”


그 ‘담담함’은 체념이 아니라,

경계의 선언이다.


“나는 이제 당신이 기대한 방식으로 살지 않겠다.”

"행복은 당신 기준에서 완성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살면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내 안에 가뒀을까?


엄마는 딸이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딸의 파트너인 ‘소영’을

계속 “그 여자”라고 부르며,

둘의 삶에 거리낌 없이 간섭한다.


그러면서도 늘 말한다.


“나는 딸이니까 걱정해서 그러는 거야.”

“내가 어떻게 키운 딸인데.”


사랑이라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나의 기대’와

‘내가 옳다는 확신’이 포개져 있다.





사랑에도
경계가 있어야 한다.


딸의 인생이 ‘다름’으로 존재할 때,
엄마는 그 다름을 지우려 한다.

지우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해할 수 없음은
곧 두려움이 된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어’라는 말로
쉽게 무효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랑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사랑하니까 고쳐야 한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소설 속 ‘나’는
엄마의 언어와 딸의 침묵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결국에는 둘 모두의 외로움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 여자”라 불리는 소영이
병든 노모를 정성스레 돌보는 장면에서
비로소 독자도 깨닫는다.

이건 ‘정상’의 윤리를 깨뜨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이 무엇인지를 되묻는 이야기라는 걸.

우리가 딸이든 엄마든,
혹은 그 사이의 '나'든 간에.





사랑은
동의 없는 교정이 아니라
침묵을 듣는 훈련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 사람을 나의 기준으로
측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사람이 살아온 세계를
하나도 알지 못하면서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잣대로
그를 평가한 아닌지...


소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도 쉽게, 너무도 무겁게
상대를 꺾으려는 이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랑은 말이 아니라
존중이어야 한다고.

사랑은
“너는 나와 달라도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하게 된다고.



“그 사람은 참 괜찮은 사람이에요.”
소영을 두고 딸이 엄마에게 던진 한마디.

그 한 문장 속에는
세상의 어떤 기준도 담기지 않는다.

다만, 있는 그대로를 보는 시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감정만 있다.





소설은 '딸'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 우리의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내가 믿고 있던 사랑,

내가 옳다고 믿은 기준,

그것은 정말 옳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나 자신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세워둔 방어기제였을까?

이제 묻고 싶다.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견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랑은
무엇을 고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안을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사실 자신이 낳은

자식에 관해선 더더욱 많이 힘든 부분이다.


자신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딸을 얼마나 그대로 보아주고, 딸의 침묵을

먼저 이해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랑이 간섭이 되지 않도록 서로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부터 한 번 더 살펴보게 되는 요즘,

딸에 대하여...







“사랑이란,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을 존중하는 일이다.”


by 《다시,삶에게 말을 건넨다》 ⓒbiroso나



이 글은 김혜진 작가의 소설 『딸에 대하여』에서 영감을 얻어 작성되었으며, 줄거리나 리뷰가 아닌 ‘사랑과 간섭, 그리고 진짜 존중’이라는 주제를 다룬 에세이입니다. 구체적 해석과 감정 서사는 작가의 재해석을 포함합니다.

《다시, 삶에게 말을 건넨다》 는 수요일과 금요일 기억에서 잊힌 줄 알았던 당신 마음에 조용히 말을 걸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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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 토 《숨쉬듯, 나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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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 / 토 《마음에도, 쉼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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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목 《무너지는 나를 바라보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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