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피고 지는 순간의 빛깔
꽃잎은 사라져도
그 자리에 남은 향기는 오래도록 우리를 붙든다.
꽃이 피어나는 순간은 짧다. 아침 햇살에 봉오리가 터지고, 낮 동안 가장 화려한 빛깔을 보여주다가, 이내 바람에 흩날리며 진다.
하지만 꽃이 떠난 자리에는 향기가 남아 있다. 그 향기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을 붙잡고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인생의 많은 순간들도 이와 같다. 찰나의 기쁨, 스치는 만남, 잠시 스며들었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결국 우리 삶의 향기가 되어 오래 기억된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피어나는 순간만을 보기 쉽다. 가장 화려한 때만을 기억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건, 꽃잎이 흩날린 뒤에 남은 여백 속 향기다. 그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존재를 이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 삶의 사랑과 관계도 마찬가지다. 곁에 있는 동안은 모를 수 있지만, 떠난 뒤에야 비로소 남겨진 향기를 깨닫는다.
살아가다 보면 소중한 것들이 내 곁을 떠나기 마련이다.
부모의 젊은 시절, 아이의 짧은 어린 날들, 친구와 나눈 웃음의 계절들. 모두 끝내 붙잡을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꽃처럼 남긴 향기가 마음속 깊이 스며들어, 힘겨운 순간마다 우리를 위로한다. 그 향기가 있기에 사람은 다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꽃은 말없이 가르친다. 삶의 아름다움은 길이가 아니라 깊이에 있다는 것을. 오래 남아 있는 것 같아도 흔적 하나 남기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찰나의 순간에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며 쌓아가는 기억도 그것과 같다. 오래도록 쌓은 재산이나 명예가 아니라, 스쳐 지나간 온기와 향기가 결국 우리를 지탱한다.
때로는 꽃잎이 흩날리는 것이 안타깝다. 왜 이렇게 빨리 져야 하는가, 왜 오래 머물러 주지 않는가. 그러나 그 사라짐이 있기에 우리는 더욱 간절히 붙잡고, 향기를 기억한다.
꽃이 지지 않는다면 향기는 탄생하지 않는다. 끝이 있기에 여운이 있고, 떠남이 있기에 남음이 있다.
삶도 그렇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잃고 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남기고 있다. 그 남은 향기가 또 다른 삶의 길을 밝혀 준다.
어떤 시간은 금세 지나가 버려 아쉬움을 남기지만, 바로 그 아쉬움이 우리 마음에 향기를 남긴다. 그것이 쌓여 인생의 향기가 된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마음, 끝내 지켜내지 못한 순간, 그러나 그 안에서 피어난 따뜻한 눈빛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결국 향기는 사라짐의 반대말이 아니라, 사라진 뒤에도 존재하는 다른 이름이다.
오늘도 길가에 핀 작은 꽃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내일이면 사라질지라도, 그 향기는 오늘을 지나 내일의 마음에까지 닿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느끼는 설렘과 고단함, 슬픔과 기쁨이 모두 언젠가는 우리 곁에 머문다. 그 향기가 우리를 지켜낼 것이라고 믿어 보리라.
꽃은 피고 지지만, 향기는 머물러 사람의 가슴을 적신다. 그것이 꽃이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다.
삶의 깊이는 오래 있음이 아니라,
남겨지는 여운에 있다.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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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던 자리, 흘러간 빛》은 멈춘 듯한 하루에도 스쳐간 빛을 당신의 마음에 건네는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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