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
뚝 -
뚝 -.
미처 잠그다 만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차디찬 바닥으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낸다.
그녀에겐 욕실로 걸어가 수도꼭지를 잠글 힘조차 남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눈물을 쏟아낸 까닭이었다.
간호사인 그녀는 오늘도 무척이나 힘든 하루를 보냈다. 얼마 전 새로 시작한 직장에서 일어나는 환자들의 언어폭력이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래도 '꼭 행복하고 싶던 날', 잘 알지도 못하는 환자들에게 입에 참아 담기 힘든 욕을 들으니 몇 주간 눌려왔던 감정이 터져버렸다. 수도꼭지처럼 그녀의 눈물샘도, 하늘도 눈물을, 빗방울을 앞다투어 토해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숙소로 걸어가는 스스로가 처량했다. 양손엔 원래 참석하려던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장 봐온 케이크와 각종 치즈, 크래커들이 한가득.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 모든 것들을 뜯어 입에 무작정 입에 욱여넣었다. 먹을 게 좀 들어가면 이 나락에 다른 감정이 좀 채워질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목만 막혀왔다.
그녀는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모두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일어난 까닭일까..
- 고등학교 때 스키클럽 친구들과 같이 야간 스키장을 타러 가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때 스키장 조명 아래로 천천히 떨어지는 눈을 보며 '행복하다'라고 말하던 기억,
- '이 불빛들처럼 앞으로 네 인생은 계속 빛날 거야'라며 엄마가 고등학교 졸업 직전 데리고 가서 봤던 뉴욕 타임스퀘어의 뉴이어 카운트다운,
- 뉴욕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 겨울방학이면 텅텅 비던 기숙사를 다른 한국인 유학생 친구들과 점령하여 다 같이 한 이불을 덮고 덜덜 떨며 무한도전을 다운받아 보던 기억,
- 눈 오는 삼청동에서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얘기를 나누고, 새벽 2시까지 청와대 앞길을 거닐던 연애 때,
이젠 10년이 넘어 먼 꿈같이 느껴지는 기억들.
어쩌다가 난 남반구에서 6년째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는 걸까.
난 도대체 무슨 선택들을 해온 걸까.
'인생 최악의 크리스마스이브다'
그녀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