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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구 Oct 03. 2022

도시생활자가 바라본 귀촌 귀농 직관기(直觀記)

- 1박 2일 단양 여행기 -

충청북도 단양에 다녀왔다. 오지로 알려진 단양에서도 오지로 알려진 어상천이라는 곳과 어상천 못지않게 벽촌인 구인사 인근 보발과 말금이라는 마을이었다.     

 

이틀간에 걸쳐 귀촌과 귀농을 한 분들을 한꺼번에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여유로운 전원생활이 좋아 귀촌을 한 Y 누님과 퇴직과 함께 귀농해 사과 농사를 시도하였다가 실패를 맛본 60대 부부, 그리고 블루베리 농사와 꿀벌 치는 일을 겸하고 있는 P 님 댁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농촌에서 자란데다 20년 가까이 텃밭을 가꿔오고 있고, 수시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온 내게 농촌 생활이나 그분들의 생활이 새로울 것은 없었다. 다만, 농촌과 전혀 인연이 없던 도시생활자들의 농촌 생활을 직관하면서 삶의 터전을 바꾼다는 것이, 전원생활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보발의 Y 누님댁에서 본 밤 풍경은 t사방이 높고 낮은 검은 산들의 연봉에 가로막혀 동네 자체가 커다란 호수 속 마을처럼 보였다. 땅도 하늘도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크기의 호수였다. 나는 땅 호수에 잠겨 하늘 호수의 별을 바라보고 있고, 하늘 호수에 박힌 반짝이는 별들은 하늘 아래 호수와 내 눈에 쏟아져 내릴 듯했다.


Y 누님은 지난봄 숲길 등산지도사 교육에 참여하였다가 알게 된 분으로, 자연이 좋고 번잡할 것 없는 단순한 일상이 좋아 산간벽지인 이곳 보발에 터를 잡고 풀이 나면 풀이 나는 대로, 나무가 자라면 자라는 대로 이름하여 ‘자연주의 정원’을 가꾸며 살고 있다.     


너와로 지붕을 이고 담쟁이로 치장을 한 2층 양옥집은 누님의 자연주의 원칙 덕분에 제멋대로 자란 산수유나무 울타리 깊숙이 몸을 숨긴 채 그 비밀스러운 품 안에 주목이며 복숭아, 밤, 자귀나무, 소나무, 감나무, 뽕나무 등등의 나무들과 수국, 구절초, 코스모스 등의 꽃들을 키우고 있었다.     


가끔 스스로 찾아주고 그립다 하면 주저 없이 달려와 줄 이가 몇 명쯤 있다면, 미운 잡초조차도 사랑스럽고 귀하게 여겨진다면, 가을 풀벌레 울음과 냉기 머금은 계곡물 소리가 처연하게 들리지 않는다면, 그리고 오래 혼자 있어도 스스로 즐겁고 행복하다면 귀촌도 도전해봄 직한 삶의 방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15년째 그런 삶을 살고 있고, 행복하다는 초로의 Y 누님이 부럽기도 하고 대단해 보이기도 하였다. 특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전해주시는 누님의 짧은 메시지들의 깊은 울림들이 머리와 연륜만이 아닌 이런 자발적 외로움, 이런 한가로움, 이런 자연의 기운을 한데 우려낸 정수(精髓)임을 알게 된 것도 귀촌 생활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만, 사방 빈틈없이 둘러쳐진 산수유나무 담장은 내게는 조금 높게 느껴졌다.  

   

말금이라는 동네는 옛날 금이 말(斗)로 쏟아져 나와 붙여진 이름이란다. Y 누님의 보발 집에서 지척인데도 불구하고 보발과는 천양지차, 소백산의 기운이 누그러들지 않고 성성하게 이어진, 하늘 아래 첫 동네라 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높은 곳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었다. 인가라고 해야 서너 집, 주민이라고 해야 넉 잡아도 가구 수를 크게 넘지 않을 성싶은 궁벽한 곳이었다.       


어느 옛날 구름처럼 떠돌던 몇몇에게 산이 제 품을 내어 터를 삼게 하고 호구지책을 허락하게 하였을 법한, 세상 나가는 길을 잊은 그 후손의 후손들이 대대로 근근이 대를 잇다가 마침내 절손(絶孫)이 가까워졌을 법한 그런 외진 곳이었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동구 초입에서 마주친 200살 선소나무와 누운소나무는 서서도 누워서도 먼먼 곳으로 떠나버린 누군가를 기다리는 기약 없는 애심(愛心)처럼 느껴져 안타까웠다.     


말금의 P 님 역시 숲길 등산지도사 교육을 받으며 만난 분이다. 우리나라 여성 등반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존경받는 산악인임에도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수년 전 이곳으로 들어와 벌을 키우고 블루베리를 재배하면서 살고 있다.      


같이 교육을 받았어도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지는 못했지만, Y 누님과 서로 잘 알고 지내는 데다가 지척이어서 기왕 온 김에 다녀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들러보았다.     


잘 관리된 벌통 수십 개와 말끔한 블루베리밭이 교육 기간 내내 말없이 솔선수범하시던 P 님의 성품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특히, 뽑고 돌아서면 뒤따라 오는 엄청난 풀들의 횡포에도 줄곧 친환경 농법을 고집하시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생각과 행동이 올곧고 신념이 확고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출타 중이라 뵙고 올 수는 없었지만, 얻기 힘든 존경과 보장된 편안함을 뒤로하고 귀농을 결행한 용기와 결단, 그리고 올곧은 마음으로 자연을 대하는 자세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강건하게 이 땅을 건강하게 가꿔주길 빌어 보았다.      

 

P 님 댁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눈이 마주친 선소나무와 누운소나무는 여전히 긴 목을 위로, 앞으로 빼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P 님 댁을 떠나 단양사람들한테도 오지로 알려진 어상천의 K 선생 댁으로 향했다. 단양 쪽에서는 배를 타고서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는데, 이제는 튼튼한 다리가 놓인 덕분에 단양에서 귀농 귀촌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 중의 하나가 되었단다. 


P 선생은 35년간 일한 공기업에서 퇴직과 함께 사과 농사를 지어볼 요량으로 몇 년 전 부인과 함께 이곳 어상천으로 들어왔단다. 언변과 행동거지가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속 조르바를 빼다 박은 듯한 데도 자신이 소심하고 내성적인 A형이라고 주장하는 P 선생의 집과 3천여 평 밭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오목한 새집에 알 하나가 들어있는 것만 같이 아늑하고 포근했다.  

   

귀농과 함께 부부가 살기에 좁지도 넓지도 않은 스물 몇 평 집을 짓고, 처마에는 커다란 풍경 두 개를 달아놓고, 밭에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 급수시설을 설치한 후 사과나무 수 백주를 심고 지극정성으로 가꾸었단다. 3년 만에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는데, 그만 폭우에 나무들 태반이 죽어버렸단다. 일순간에 황량해진 사과밭을 보면서 비로소 농부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단다.     


사과 농사를 재개할 엄두도 의욕도 나지 않아 2년째 치우지 않고 방치 중인데, 농사 대신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란다. 허가가 나게 되면 설치 비용을 대출로 충당할 수밖에 없지만, 그리 하더라도 수익이 힘든 사과 농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란다.     


삶이 엄연한 현실인 바에야 농부이면서 농부의 꿈을 접으려는 K 선생의 마음을 이해 못 할 바 아니었다. 특히, 70이 다돼가는 나이에 최소 5년은 소득 없이 투자만 해야 하는 사과 농사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나라도 뜯어말릴 일로 생각되었다. 다만,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는 농부라면 한 번의 실패에 태양광에 밭을 내줄 생각을 했을지, 다시 무언가를 재배하기 위해 밭을 갈았을지는 궁금해졌다.     


황량하게 방치된 3천 평 사과밭을 보면서 직업으로서의 농업이 다른 어떤 업보다 결코 수월한 것이 아님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12년을 공부하고, 직업인이 되기 위해 대학 4년을 공부해야 하듯, 농사를 업으로 삼으려면 철저한 준비와 거기에 더해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결행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게 쓰러지지 않는 길이고, 설사 한 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임을 느꼈다.  

   

세 집을 둘러보고 그동안 단편적인 지식과 많지 않은 경험을 믿고 만만하게 생각됐던 귀촌과 귀농에 대해 겸허해졌다. 귀촌인과 귀농인에 대해 겸손과 존경심이 생겼다. ‘할 것 없으면 농사나 지어보지’ 라는 말을 다시는 하기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17년째 가꾸고 있는 텃밭에 만족하기로 했다.      


용기와 애정으로 벽촌에 사람의 기운을 나누고 계신 Y 누님, P 님, 그리고 K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며, 다들 건강하게 오래도록 보발과 말금과 어상천을 지켜주실 것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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