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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구 Dec 18. 2022

어쩔 수 없어서 스마트폰

아침 일찍 전화벨이 두어 번 울리다가 끊어져 버렸다. 어머니였다. 웬만해서는 전화를 거시는 법이 없으신데,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얼른 전화를 되걸었다. 미처 신호가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으시는데,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다. ‘무슨 일이 있긴 있구나’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별일 없으시죠?”

“별일 없지, 다들 편하냐? 잠깐만 기다려보거라, 어머니 바꿔줄게”      


“뭔 일 있으세요?” 거두절미하고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뭔 일은...... 별일 없어. 그런데 뭘 잘못 만지셨는지 아버지 전화기가 새벽부터 먹통이 됐어, 화면에 데이터에 접속 어쩌고 저쩌고 메시지가 나오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이것저것 눌러봐도 메시지도 안 없어지고 전화도 안 걸려서 전화를 했지”      


산 지 고작 나흘밖에 안 된 전화기가 고장이라도 났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손에 익지 않아 불편한 스마트폰에 대한 불평이 함께 배인 말투였다. 아무래도 눈으로 보아야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전화를 끊고 어머니와 영상통화를 시도하였다. 다행히 영상통화 버튼을 제대로 찾아 누르셔서 금방 연결이 되었다.     

 

전화가 연결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카메라로 아버지 핸드폰의 화면을 정확히 비추는 것이 문제였다. 카메라 렌즈를 아버지 핸드폰 화면에 댄 다음 움직이지 말고 계시라고 해도 자꾸만 이리저리 손을 움직이시는 바람에 한참 만에야 겨우 화면상의 메시지를 읽을 수가 있었다.      


내용인즉슨 인터넷 데이터에 접속을 허용할지를 묻는 메시지였다. 확인을 해보니 완전 방전이 된 상태에서 충전을 하면 전화기가 재작동하면서 인터넷망에 접속할 것인지 여부를 묻는 메시지가 뜨게 되어 있었다. 쓰시던 전화기와 달리 배터리가 빨리 닳는 것을 모르시고 충전을 하지 않고 주무시는 바람에 방전이 되었던 모양이다. ‘허용’과 ‘거부’ 버튼 중 ‘허용’ 버튼을 누르게 하니 금세 화면이 홈으로 되돌아왔다.      


“에휴, 늙으면 다 별수 없어.......”  어머니의 자조 섞인 탄식을 들으며 전화를 끊었다.         


두 분의 핸드폰을 교체한 것은 지난 일요일이었다. 두 분 모두 전화기를 바꾼 지 2년이 넘은 데다가, 며칠 전 어머니가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어둔 채 세탁기를 돌리는 바람에 아예 먹통이 되어버려 바꾸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어머니 것을 바꾸는 김에 아버지 것까지 바꿔드리기로 했다.


5세대 첨단 이동통신이 일반화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아직까지  음성 통화와 문자 메시지 기능이 주인 2세대 이동통신 방식의 폴더폰, 일명 ‘효도폰’을 사용해 오셨다.      


효도폰을 고수하고 계시는 것은 두 분의 의사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적으로 나를 비롯한 자식들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연로한 어르신들에게 스마트폰은 기능이 복잡한 데다 크기도 크고 액정 때문에 간수 하기 불편할 뿐만 아니라, 농사일 중에 통화라도 할라치면 흙 묻은 손으로 조작하는 것이 여간 번거롭지 않은 등 편리함보다는 불편함이 클 것이라는 제법 그럴 듯 해 보이는 논리로 매번 교체 때마다 고려대상조차 되지 못하였다.  

  

이번에 교체할 때도 스마트폰은 아예 구입 대상에서 제쳐놓았었다. 그렇지만 일이란 것이 매양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사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집 근처 휴대폰 매장 몇 군데를 둘러보았지만, 효도폰을 파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효도폰을 생산하던 L사가 휴대폰 사업을 접으면서 공급이 완전히 중단되었단다.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고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 일요일, 기존에 쓰고 계시던 효도폰과 모양과 크기가 엇비슷한 폴더 형태의 스마트폰 두 대를 사서 시골집에 내려갔다. 우선 가족과 일가친척, 이웃과 친구분 등의 전화번호를 입력해 드린 다음 사용법 교육을 시작하였다. 평생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잡아보시고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전에 쓰던 것과 모양과 크기는 비슷하지만, 액정화면에 손만 대도 화면과 기능이 휙휙 바뀌어버리니 당혹스럽고 난감한 모양이었다.      


우선은 전화를 걸고 받는 것이 제일 시급한지라 통화 요령과 전화번호 찾는 방법을 설명해드렸다. 이어서 뭔가 잘못 조작했을 때 홈 화면으로 되돌아가는 방법과 메시지 보는 법, 동영상 촬영을 비롯해 사진 찍는 법을 설명하고 반복해서 연습을 했다. 그 정도 아시면 전화를 걸고 받는 데는 문제가 없으리란 판단에서였다. 

     

몇 번을 반복해서 설명을 해드리고 연습을 했지만, 좀처럼 이해도 안 되고 익숙해지지도 않는 것 같았다. 쓰다 보면 익숙해지시겠거니 하고 1시간여 만에 연습을 마쳤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신기한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처럼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셨다. 어머니 모습도 찍어보시고, 팔십몇 년 삶의 무게에 짓눌려 뒤틀린 당신 발에도 렌즈를 대고 셔터를 눌러보신다. 잔뜩 긴장한 모습도, 천진난만하게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도 철부지 아이들을 닮았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며칠밖에 안 쓴 전화기가 먹통이 되어버렸으니 난감하고 답답하셨을 것이다. 어떻게든 당신들 손으로 해결해 보려고 식전 내내 애를 쓰셨을 것을 생각하니 짠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지금보다 손놀림이든 말귀든 훨씬 쟀을 한 살이라도 젊으셨을 때 사드리지 못한 것이 죄스럽기도 하였다.      


아침 내내 안절부절못하셨을 두 분을 떠올리면서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 앞에서 의지할 것 없이 우두망찰 서 계신 두 분의 심정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헤아려 본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 보았다. 차표 한 장을 끊으려 해도, 자장면 한 그릇을 사 먹으려 해도 기계와 얼굴을 맞대야 하는 세상이 된 지 한참인데, ‘나이 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멋대로 속단하고 점점 세상의 변두리로 밀려 나가는 부모님께 손 한 번 내밀 생각조차 못 했던 것 같다. 과한 비약이긴 하지만, 고려장(高麗葬)이 달리 고려장인가 싶기도 하였다.        


오늘은 다행히 해가 저물도록 전화가 없으시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전화기를 다루는 것에 익숙해지신 모양이다.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사드린 스마트폰이지만, 그렇게라도 더 늦기 전에 복잡하지만 조금은 더 다채롭게 세상을 체험하게 해 드린 것 같아 다행스럽다.      


큰 숙제 거리라도 만난 듯 진지한 표정으로 조심조심 버튼을 눌러보며 연습을 하시던 두 분의 모습이 오래도록 선연(鮮然)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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