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취를 보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밭에서 참취가 제법 잘 자라고 있었다. 바쁘다고 물 한 바가지 주지 않았는데도 봄이 왔다고 작은 새싹들이 뾰족뾰족 올라왔나 싶었는데 어느새 나물로 먹을 수 있을 만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었다. 팔팔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된장을 조금 떼어 넣고 조물조물 무쳐 먹으면 맛있겠다 생각을 하니, 입안에선 금세 침이 괸다. 요즘에는 이렇게 밭에 심어 놓고 적당히 자라면 뜯어다가 쉽게 먹을 수 있는 참취 나물이지만, 예전에는 엄마가 산에 가셔서 뜯어오셔야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귀한 나물이었었다.
어머니가 나물을 하러 가시는 날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새벽에 나가셨다. 그리고 저녁이 다 되어서야 커다란 나물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돌아오셨다. 나물 보따리가 얼마나 컸던지 어머니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머니는 저녁을 드신 후에 나물 보따리를 방에다 풀으셨다. 그러면 방안에 취나물 냄새로 가득 찼다. 어머니가 해오신 나물들 중에는 참취가 가장 많았고, 떡취와 두릅이며 비비추 등 온갖 산나물이 셀 수 없이 많이 들어 있었다. 하루 종일 나물을 하시느라 고단 하셨을 텐데 곧바로 나물을 정리하셨다. 취나물은 연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골라서 따로따로 모둠을 만들어 두셨고, 두릅이나 비비추도 따로 한쪽에 두셨다.
나는 엄마 옆에 앉아서 왜 그렇게 나누는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엄마는 모아놓은 취나물 모둠을 가리키며 저쪽에 있는 것은 삶아서 말려서 나중에 제사 음식으로 쓸 것이고, 이쪽 연한 취나물은 내일부터 반찬으로 바로 먹을 수 있게 골라 놓으신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비비추를 보여주시면서 비비추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만져보시라고 하시며 이게 나물반찬을 해 놓으면 맛있는지 아느냐며 내 얼굴을 처다 보셨다. 그리고 잎 뒤가 흰 털이 가득 나 있는 잎을 들어 올리시면서 이건 분대라고 하는데 설에 인절미에 넣어서 떡을 해 놓으면 쫀득쫀득하고 쉽게 굳어지지 않아 좋다고 말씀하다. 그리고 가시가 달린 나물을 들어 보이시며 이건 두릅이라고 하는데 어쩌다 운 좋게 두릅나무를 만났다고 하시면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는 철이 없어서 이렇게 많이 나물을 하시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셨느냐고, 정말 고생이 많으셨겠다고 하면서 엄마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알아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다음날 아침 우리 집은 나물들로 가득했다. 커다란 가마솥에서 데쳐낸 취나물과 분대가 덕석에 널려 마당을 다 차지하였고, 부엌 뒤편에는 커다란 그릇에 담긴 나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엄마는 취나물이나 두릅 등 산나물을 데쳐서 물에 담가 우려낸 후에 반찬으로 하셨다. 그래서인지 많이 먹어도 탈이 없었던 것 같았다. 참취는 된장이나 고추장 참기름을 정도만 넣고 무쳐주셨는데, 맛이 짭 초름하니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참취를 보면 엄마가 생각이 난다. 참 힘드셨을 텐데 고단한 내색도 없이 나물을 정리하시는 모습, 나물을 하나하나 정리하시면서 이름이며, 먹는 방법 등. 나물체 취하시면서 있었던 이야기, 뱀이 나뭇가지인 줄 알고 잡을뻔했다고 하시며 아찔했던 순간까지도 생생하게 전해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많은 제사를 지내야 했고, 그 제사상에 올려야 하는 묵나물 들을 부지런히 앞산이나 뒷산으로 오가며 마련을 했어야 하셨던 어머니의 고단한 삶이 이제야 생각이 난다.
참취가 나오는 시기는 농사일도 참 바빴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