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세계의광장 스토리-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비판하며 프랑스로 망명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파리 시내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국땅에서 펼쳐지는 납치와 추격의 긴박한 상황을 촬영한 곳이 바로 파리 방돔 광장이다.
광장은 도시에 사람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하지만 절대왕정이나 강력한 황제 등 권력자의 뜻과 의지에 따라 조성되기도 한다. 방돔 광장은 후자다.
방돔 광장은 1702년 ‘태양왕’ 루이 14세가 절대왕정의 위용을 드러내기 위해 궁정 건축가 망사르에게 지시해 처음 만들어졌다. 그래서 당시 광장 중앙에는 루이 14세의 기마상이 있었고, 광장의 이름도 루이 르 그랑(Louis-le Grand)이었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루이 14세의 기마상은 파괴되고, 광장 이름도 ‘방돔’으로 바뀌었다. 방돔은 프랑스 중북부에 있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지역 이름이다. 방돔 광장에는 강력한 중앙집권을 바탕으로 유럽을 호령했던 루이 14세와 나폴레옹 황제의 자취가 남아 있다.
코로나19가 유럽에 확산되기 전인 2020년 2월 18일 파리 방돔 광장을 찾았을 때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원기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폴레옹 황제가 즉위 1년 만인 1805년 오스트리아와의 아우스테를리츠 전투에서 거둔 대승을 기념하기 위해 로마에 있는 트라야누스 황제 원주탑을 본떠 만든 44m의 기념탑이다. 이 기념탑은 전쟁에서 노획한 대포를 녹여 만든 것이다. 원기둥에는 전투 장면을 나선형으로 양각한 76개의 청동 부조가 있는데 조각가 베르제레 작품이다. 처음 원기둥을 만들 때에는 꼭대기에 나폴레옹 동상을 세웠으나 나폴레옹이 실각한 후 앙리 4세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후 다시 나폴레옹이 집권하자 앙리 4세의 동상이 철거되었다. 7월 혁명으로 왕위에 올라 ‘시민왕’으로 불리며 2월 혁명 때까지 군림했던 프랑스 왕 루이 필립에 의해 나폴레옹 동상이 다시 세워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 동상은 프랑스 조각가 앙투안 쇼데가 1808년에 제작했다. 우뚝 솟은 기념탑 꼭대기에 서 있는 나폴레옹 동상은 매우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승리의 여신 ‘니케’ 상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다.
44m 높이의 원기둥 기념탑은 나폴레옹 황제가 즉위 1년 만인 1805년 오스트리아와의 아우스테를리츠 전투에서 거둔 대승을 기념하기 위해 로마에 있는 트라야누스 황제 원주탑을 본따 만들었다. 원기둥에는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내용이 나선형으로 양각한 76개의 청동 부조가 있으며 꼭대기에 나폴레옹이 승리의 여신 ‘니케’ 상을 들고 서 있다.
방돔 광장 조성을 지시했던 루이 14세의 동상은 프랑스대혁명 이후 민중들에 의해 무너져 산산조각이 났고 청동으로 된 발만 남아 현재 파리 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절대왕정을 구축했던 루이 14세 동상의 자리를 하급 장교에 불과했던 나폴레옹의 동상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프랑스대혁명이 초래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파리 루브르궁 건너편에 조성된 방돔 광장은 17~18세기 유럽의 전형적인 왕실 광장으로, 마치 황제의 응접실 같다. 광장은 생토노레 거리와 연결되며 코린트식 기둥으로 마감된 3층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건축가 망사르는 광장을 136mx146m의 장방형으로 구상했다. 그러나 재정에 부담이 되자 루이 14세는 프로젝트를 접고 1699년 광장에 대한 권리를 파리시에 넘겼다. 결국 파리시는 일부 터를 팔고 124mx140m의 장방형으로 단순화했다.
황제의 광장답게 방돔 광장은 외관이 장엄하고 웅장하다. 광장 주변의 연속되는 건축물에 의해 양방향 대칭의 공간 구성을 보인다. 광장 외관은 1702년에 완성됐으나 호화저택 건축은 1720년까지 계속되었다. 지금도 방돔 광장 주변은 음악가 쇼팽이 생을 마감했던 리츠호텔을 비롯해 최고급 호텔들과 명품상가들이 에워싸고 있다. 리츠호텔은 억만장자 이집트 사업가 모하메드 알 파예드가 소유하고 있다. 이곳은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빈이 지난 1997년 8월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숨지기 직전 그녀의 애인이자 알 파예드의 아들인 도디와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방돔 광장은 주변 건물로 사방이 막혀 있고 중앙 기념탑을 교차로가 둘러싸고 있어 보행자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광장 주변의 호텔이나 명품 숍은 보행로가 연결돼 있는데 정작 광장의 중심은 차도로 막혀 있어 사람들이 모이기 어려운 구조다. 우리나라의 광화문광장도 양쪽 차도로 둘러싸여 있는 교통섬이었는데 서울시가 새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을 통해 세종문화회관 쪽 차도를 보행공간으로 바꾸어 광장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로 했다.
광장의 주체는 사람이다. 사람을 위해서 광장이 존재하는 것이지, 광장을 위해서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때 광장이 사람 위에 군림했던 적이 있었다. 과거에는 광장의 중심적 위치와 크기, 주변 건축물 등 물리적 요소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광장의 물리적 공간에 담기는 모든 존재가 광장의 구성원이 되고, 그것은 집단의 기억체계를 통해 기록되는 동시에 개인의 경험으로 남아 가끔 회상할 수 있는 추억거리를 제공한다.
광장에는 고정요소와 변화요소가 있다. 물리적 공간과 건축물이 고정요소라면 광장에 머무르고 지나쳐간 사람들과 시대정신은 변화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광장은 물리적으로 조성된 이후 시대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지고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광장의 주체는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잠시 여행하며 거쳐가는 관광객들까지 포괄한다. 방돔 광장은 시내 중심에 있는 위치와 주변 건축물 등 고정요소는 훌륭한데 가장 중요한 변화요소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빠져 있어 박제가 돼 버린 유물 같은 느낌을 준다.
광장이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생동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나온 역사를 간직하면서도 동시대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시대 정신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권위주의 시대에 조성된 광장들이 현대에 시민들의 휴식처와 산책공간으로 변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광장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차도로 둘러싸여 있거나 보도가 지나치게 협소하게 되면 사람들이 즐겨 찾기 힘들다. 광장 주변에 보행공간을 넓히고 차도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이유다. 광장은 단순히 지나쳐 가는 곳이 아니라 머무르는 곳이 되어야 한다. 광장이 역사의 유적으로 남지 않고 생동감 있는 공간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사람의 온기로 채워져야 한다. 빈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이 광장의 성격을 규정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