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정치? 유령 대의원? ATM 민주주의

by 박정민

No-115

선거철이 되면 그들은 꽃이 된다


봄이 오면 꽃이 핀다.

그리고 6월이 되면 정치인이 핀다.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입니다. 항상 주민 여러분 곁에서 함께하겠습니다 "


나는 잠시 폰을 내려다봤다. 곁에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우리 동네 골목 앞 건널목. 차들이 사방에서 엉키는 그 복잡한 교차로에서, 아이 하나가 다쳤다. 뛰어놀던 아이였다. 신호등 하나 없는 그 건널목에서 차를 피하지 못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 그 순간을 목격한 사람들의 가슴은 한동안 내려앉아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그 정치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등 하나만 달아달라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골목 앞이라고.


사고가 났다고.


그는 성실하게 받았다.


그리고 말했다.


"네, 알아보고 조치하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한 달을 기다렸다.


두 달을 기다렸다.


계절이 바뀌었다.


신호등은 달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그 건널목을 뛰어서 건넜다.


그리고 나는 그 번호로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다.


그때 곁에 있던 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골목을 내다보던 동네 어른들이었다.



대한민국은 요즘 잘 나간다.


K팝이 빌보드를 점령하고, K드라마가 에미상을 받고, K방산이 유럽 시장을 뚫는다.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는 시대다. 공항에서 외국인이 한국말로 말을 걸어오는 시대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잘난 나라의 정치는 왜 이 모양일까.


K컬처는 세계 1류인데, K정치는 어째서 스스로도 민망할 만큼 3류인 걸까.


나는 그 이유를 꽤 오래 생각해 봤다.


그리고 최근에야 조금 알 것 같아졌다.



정치인을 자세히 보면, 그들에게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하나는 위를 향한 얼굴. 하나는 아래를 향한 얼굴.


위를 향한 얼굴은 놀랍도록 부드럽다. 유연하고, 다정하고, 어떤 눈치도 놓치지 않는다. 당 대표의 말 한마디에 표정이 바뀌고, 실세의 동선을 따라 몸이 움직인다. 줄을 서는 속도가 남다르고, 아첨의 문법이 정교하다. 저 사람은 저걸 언제 연습했을까 싶을 만큼.


아래를 향한 얼굴은 선거철에만 나온다.



사실 나는 이 현상에 이름을 붙여봤다.


"철새 정치"라고 부르기엔 철새가 억울하다. 철새는 그래도 계절마다 온다. 정치인들은 4년에 한 번, 혹은 필요할 때만 온다.


"유령 대의원"이라고 할까. 평소엔 존재하지 않다가, 표가 필요한 순간에만 소환된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은 따로 있다.


"ATM 민주주의". 주민은 현금을 넣는 기계고, 정치인은 그 돈을 꺼내 쓰는 사람이다. 4년마다 한 번씩 와서 버튼을 누르고, 돈이 나오면 유유히 사라진다. 신호등 하나 달아달라는 전화엔 묵묵부답이어도, 그건 자기 일이 아니다.



더 씁쓸한 건 따로 있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는 것.


개인으로 만나면 괜찮은 사람들이 많다. 진심으로 지역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엔 뭔가 바꾸겠다는 마음으로 출마한 사람도 분명 있다.


그런데 그 시스템 안에 들어가면 변한다.


위에 잘 보여야 공천을 받고, 공천을 받아야 당선이 되고, 당선이 되어야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논리. 그 구조 안에서 주민은 언제나 후순위가 된다. 진심은 전략이 되고, 정책은 구호가 되고, 사람은 표가 된다.


"알아보고 조치하겠습니다"는 말이 그 구조 안에선 그냥 통화 종료 버튼이다.


나쁜 사람이 만든 나쁜 정치가 아니라 나쁜 구조가 좋은 사람을 조금씩 나쁘게 만드는 것.


그래서 더 무섭다.



다시 문자를 본다.


이번엔 사진도 첨부되어 있다. 동네 어르신과 손을 잡고 환하게 웃는 사진. 전통시장에서 순대를 드시는 사진.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나는 그 사진들을 오래 들여다봤다.


저 아이들이 뛰어노는 골목 앞 건널목에 신호등이 생겼을까.


저 웃음이 6월 4일 이후에도 이어질까.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저 사진들은 투표일 이후로는 다시 찍히지 않을 것이다.



K컬처가 세계를 감동시키는 이유는 하나다.


진심이 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이 10년을 버틴 건 팬들이 그들의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고, 봉준호의 영화가 세계를 울린 건 이 사회의 진짜 얼굴을 담았기 때문이다.


정치도 그렇다. 진심이 없으면 결국 들킨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다.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그 문자가 얼마나 무게 없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 "알아보고 조치하겠습니다"가 얼마나 공허한 말인지도. 그러면서도 또 찍어준다. 딱히 대안이 없어서. 그래도 나아지길 바라서. 혹은 그냥 지쳐서.


그 지침 위에서 정치는 계속된다.



나는 오늘도 문자를 삭제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 건널목 앞에, 언젠가는 신호등이 생겼으면 한다고.


선거철이 아닐 때 먼저 전화해 오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고.


아이들이 안심하고 건널 수 있는 동네를 만들어줄 사람을 뽑고 싶다고.


문자 한 통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면 좋겠다고.


봄은 매년 온다. 꽃은 피고 진다. 그리고 우리는, 또 6월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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