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잃은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by 박정민

No-123

<브런치북> 자원봉사관리자의 현장 에세이


04. 다섯 번째 스토리


'집을 잃은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재난이 지나간 자리는 두 번 무너진다.


처음은 물이, 바람이, 불이 무너뜨린다. 두 번째는 사람들의 관심이 떠나고 난 뒤에 무너진다. 뉴스 카메라가 사라지고,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세상이 다시 제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할 때 피해 주민들은 가장 깊은 의미의 홀로 됨을 경험한다.


나는 그 두 번째 무너짐이 첫 번째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현장에서 배웠다.

집은 다시 지을 수 있다. 가구는 다시 살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꺼진 마음의 불씨는, 다시 살리는 데 훨씬 긴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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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수해 현장에서 복구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센터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가늘게 흔들렸다. 강구항 인근에 사시는 육십대 여성이었다. 수해 직후에는 봉사자들이 많이 와줘서 버텼는데, 이제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집은 대충 정리가 됐는데 자꾸 무기력해진다고. 아침에 눈을 뜨기가 싫다고.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집은 정리됐는데 마음은 정리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분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삽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목소리였고, 손이었고, 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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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심리 지원이라는 말이 있다.


재난 이후 피해 주민들이 겪는 심리적 충격과 트라우마를 돕는 활동이다. 교과서에서는 그렇게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것은 훨씬 더 소박하고, 훨씬 더 인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냥 찾아가는 것이다.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다시 찾아가는 것.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을 더 하는 것.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재난 심리 지원의 가장 진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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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봉사자들과 함께 사후 방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재난 복구 봉사가 끝난 뒤에도 한 달에 한 번, 같은 봉사자들이 같은 가정을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거창한 것은 없었다. 간단한 먹거리를 들고 가서 차 한잔 마시는 것, 안부를 나누는 것, 그리고 그냥 함께 앉아 있는 것.

처음에는 봉사자들도 어색해했다.

"이제 집도 다 정리됐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 안 하셔도 돼요. 그냥 가 계세요. 옆에 있어 주는 것 자체가 봉사예요."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봉사자들이 두 번, 세 번 방문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주민들도 달라졌다. 처음엔 어색하게 맞이하던 분들이 나중엔 먼저 전화를 해오셨다.

"이번 주에 오시죠?"

그 전화 한 통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기억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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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곡동에서 만난 박 씨 아주머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오십대 중반의 그분은 침수 피해로 오랫동안 살던 집을 수리하는 동안 임시 거처에 머물고 계셨다. 가재도구는 망가졌고, 오래된 사진첩은 물에 불어버렸고,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작은 반짇고리도 잃었다고 하셨다.

처음 만났을 때 그분은 웃으셨다. 괜찮다고,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두 번째 방문에서도 웃으셨다. 세 번째 방문에서도.

그런데 네 번째 방문날, 봉사자가 아무 생각 없이 가져간 화분 하나가 문제였다. 작은 국화 화분이었다. 그분이 화분을 받아 드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봉사자도, 나도 당황했다.


한참 울고 나서 그분이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국화를 좋아하셨거든요. 마당에 항상 키우셨는데, 그게 다 쓸려가버려서."


석 달을 웃으며 버텨온 분이 국화 한 송이에 무너진 것이었다. 그 눈물이 나쁜 것이 아니었다. 드디어 열린 것이었다. 꽉 닫아두었던 슬픔의 문이 꽃 한 송이에 기어이 열려버린 것이었다.

봉사자가 아무 말 없이 그분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냥 같이 울었다.


나중에 그 봉사자가 내게 말했다.

"제가 뭘 잘못한 건지 걱정됐는데, 울고 나서 그분 표정이 훨씬 편해지셨어요. 그제야 마음이 놓였어요."

잘못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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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이후 피해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답한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재난을 겪은 사람들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날 어떻게 대피했는지, 물이 얼마나 빨리 차올랐는지, 무엇을 먼저 챙겼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몇 번이고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


그것은 기억이 고장난 것이 아니다.

아직 그 사건이 완전히 소화되지 않았다는 신호다.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사람은 서서히 그 경험을 자신의 삶 속으로 통합해 나간다. 그러니 같은 이야기를 또 듣게 되더라도, 봉사자는 처음 듣는 것처럼 들어야 한다. 끄덕이고, 눈을 맞추고, 끊지 않고.


나는 봉사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부탁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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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에서 만난 딸기 농부 최 씨 아저씨는 처음엔 봉사자들을 잘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자존심이 강한 분이었다.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신 것 같았다. 집에 들어오려 하면 "괜찮아요,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손사래를 치셨다.


봉사자들은 그 말을 존중했다.

대신 마당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농로에 쌓인 흙을 치우고, 하우스 주변 배수로를 정비했다. 아저씨 집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을 전체를 위한 일이었다. 내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위한 일에 함께하는 것으로 접근한 것이었다.


사흘째 되던 날, 아저씨가 슬그머니 장화를 신고 나오셨다.

아무 말 없이 옆에서 함께 흙을 파기 시작하셨다. 봉사자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아무도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같이 일했다.


점심 무렵 아저씨가 처음으로 말을 여셨다.

"내가 이 땅에서 삼십 년을 농사지었어요. 이걸 하루아침에 다 잃으니까... 그냥 다 포기하고 싶었어요."


봉사자 중 한 명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 마음이 당연하지요. 그런데 아저씨, 우리가 여기 있잖아요."


단순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아저씨의 어깨를 조금 올려놓았다. 그분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길게 한숨을 내쉬셨다. 그리고 다시 삽을 드셨다.


포기하고 싶었던 사람이 다시 삽을 드는 것. 그것이 복구였다. 하우스의 복구가 아니라 의지의 복구.



나는 재난 현장을 다니면서 한 가지를 확실히 알게 됐다.


사람은 물질이 회복되어도 마음이 회복되지 않으면 일어서지 못한다. 반대로 물질이 다 사라져도 마음에 누군가가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재난 복구 봉사의 진짜 완성은 집이 다시 서는 날이 아니었다. 그 집 주인이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고, 마당을 쓸고, 이웃에게 손을 흔들 수 있게 되는 날이었다.


그날이 오기까지, 봉사자들은 곁에 있었다.

멀리서 가끔, 하지만 꾸준히.




봉사자들이 현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꼭 디브리핑 시간을 가졌다.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버스 안에서, 혹은 센터로 돌아와 둘러앉아 각자 오늘 느낀 것을 한 마디씩 나누는 것. 강요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사람만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말문을 여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늘 할머니가 손을 잡으셨는데, 손이 너무 거칠었어요. 그 손이 자꾸 생각나요."

"복구는 다 됐는데 눈빛이 살아나지 않으신 것 같아서 마음이 쓰여요."

"저도 언젠가 저런 상황이 오면 어떡하나 싶었어요. 그러면서 내 가족 생각이 많이 났어요."


봉사자들은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것을 말로 풀어냈다. 말로 풀어야 감정이 소화된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재난 현장의 무게가 봉사자 자신의 마음속에 쌓인다.


관리자의 역할은 봉사자를 현장에 보내는 것만이 아니었다. 무사히 데려오는 것이기도 했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영덕 강구항의 그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연락이 온 것은 수해로부터 꼭 일 년이 지난날이었다.


"올해 김장을 했어요. 양이 좀 많아서요. 드시러 오실 수 있어요?"

봉사자 몇 명과 함께 찾아갔다. 마당에는 빨간 고무대야에 김치가 가득했다. 작년 이맘때 진흙이 가득했던 그 마당에.


할머니가 직접 담근 김치를 덜어 비닐봉지에 담아주셨다. 하나씩 손에 쥐여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작년에 와줘서 고마웠어요. 그게 없었으면 나 그 겨울 어떻게 났을지 모르겠어."


봉사자들이 김치를 들고 마을 어귀를 걸어 나오는데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 무거운 비닐봉지가 그날따라 조금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집을 잃은 것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처럼, 집을 되찾은 것도 전부가 아니었다. 그 겨울을 함께 건넌 사람이 생겼다는 것. 그것이 진짜 회복이었다.



재난은 언제나 다시 온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사람이 사람에게 달려가는 것도 인간의 섭리다. 막을 수 없는 재난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하나다.

곁에 있어 주는 것.


무너진 집을 고치는 것도, 진흙을 퍼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더 깊이 남는 것은 그 사람 옆에 앉아 끝까지 들어주었던 누군가의 존재다.


봉사는 물질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거기 있었다'라는 사실을 남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어떤 재난도 쓸어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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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서는 '123만 명을 바다로 불러낸 것은 무엇인가' 태안 기름유출 사고와 자발적 연대의 의미, 그 기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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