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14
<브런치북> 자원봉사관리자의 현장 에세이
기상 특보가 뜨고, 대피령이 내려지고, 뉴스 화면이 물에 잠긴 마을을 비출 때 — 나는 이미 짐을 싸고 있었다. 자원봉사관리자에게 재난 소식은 출동 신호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한지, 어떤 장비가 있어야 하는지, 누구에게 먼저 연락해야 하는지. 머릿속은 이미 현장에 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현장 앞에 서면, 아무리 준비를 해도 언제나 무너지는 것이 있었다.
마음이었다.
대게로 유명한 그 항구 마을이 흙빛 물에 뒤덮였다. 뉴스 화면 속 강구항은 내가 알던 그 활기차던 곳이 아니었다. 그물이 둥둥 떠다니고, 어선들이 기울어져 있었으며, 항구를 따라 늘어서 있던 횟집과 가정집들은 허리까지 물이 찼다.
자원봉사자 열다섯 명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새벽 다섯 시였다. 차 안은 조용했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창밖으로 흐린 하늘이 지나갔다. 나는 그 침묵이 두려움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무언가를 단단히 마음에 다지는 시간이었다.
강구항에 도착했을 때 코를 먼저 찌른 것은 비린내와 흙내가 뒤섞인 냄새였다.
물은 이미 빠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것들이 있었다. 뒤집힌 냉장고, 쏟아진 살림살이, 마당 가득 쌓인 진흙. 그리고 그 앞에 넋을 잃고 서 있는 사람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그냥 서 있는 것이었다. 그 눈빛을 나는 잊지 못한다. 절망이라는 단어가 표정으로 번역된 얼굴이었다.
방 두 칸짜리 작은 집이 허리까지 침수됐다가 물이 빠진 상태였다. 장판 밑으로 진흙이 스며들었고, 벽에는 물이 찬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냉장고는 쓰러졌고, 오래된 텔레비전은 물을 먹어 망가진 채 한쪽 구석에 기울어져 있었다.
할머니는 마당 한가운데 앉아 젖은 이불을 손으로 짜고 계셨다.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냥 짜고 또 짜셨다. 이미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 이불을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만 알고,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는 사람의 손이었다.
봉사자들이 말없이 흩어졌다.
장갑을 끼고 삽을 들었다. 진흙을 퍼냈다. 망가진 가구를 끌어냈다. 쓸 수 있는 것과 버려야 하는 것을 나눴다. 말이 없었다. 지시도 필요 없었다. 각자 보이는 것을 했다. 볼수록 해야 할 일이 나왔다.
점심 무렵, 할머니가 조용히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잠시 후 누룽지 끓인 물을 들고 나오셨다. 아무것도 없는 부엌에서 그것만은 챙기신 것이었다. 봉사자들 앞에 한 그릇씩 내려놓으시면서 처음으로 말씀을 하셨다.
"고마워요. 이런 데까지 와줘서."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의 무게가 달랐다. 나는 그 자리에서 뒤돌아섰다. 눈물이 나왔다. 자원봉사관리자로 일하면서 처음으로 현장에서 운 날이었다.
북구 노곡동이었다. 배수펌프와 제진기가 제때 작동하지 않아 빗물이 빠지지 못하고 도심 한복판이 잠겨버린 것이었다. 자연재해가 아니라 시스템의 허점이 만들어낸 재난이었다. 그것이 더 허탈하게 느껴졌다. 막을 수도 있었던 일이었으니까.
주민들은 대피를 했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 안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좁은 골목 사이로 봉사자들이 줄지어 들어갔다. 가구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침수된 장판을 뜯어냈다. 물을 먹은 벽지를 걷어냈다. 소독약 냄새와 축축한 공기가 뒤섞인 그 골목에서 봉사자들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한 봉사자가 내게 말했다.
"관리자님, 저 집 할아버지가 우시는데 제가 어떻게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봉사자와 함께 그 집으로 갔다.
팔십 가까운 어르신이 마루에 앉아 계셨다. 수십 년 된 앨범이 물에 젖어 있었다. 사진들이 서로 붙어버린 것을 손으로 한 장씩 떼어내려다 찢어지자, 그 자리에서 무너지신 것이었다. 재산이 아니었다.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 옆에 조용히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이런 날 와줄 사람이 있다는 게, 그게 제일 고맙네."
달성군과 자매결연 도시를 맺은 담양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들녘을 가득 채우고 있던 농작물이 물에 잠겼다. 특히 딸기 농가들의 피해가 컸다. 한 해 농사를 통째로 물속에서 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너진 비닐하우스였다.
폭우에 뼈대가 휘고 비닐이 찢겨 나간 딸기 하우스가 들판에 흩어져 있었다. 그 앞에 한 중년 농부가 서 있었다. 무너진 하우스를 바라보는 그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깨가 너무 낮게 내려가 있었다.
봉사자들이 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뼈대를 다시 세우고, 찢어진 비닐을 걷어내고, 진흙에 묻힌 딸기 포트를 하나씩 꺼냈다. 살릴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가며 묵묵히 손을 놀렸다. 태양은 뜨거웠고, 비닐하우스 안은 더욱 후텁지근했다. 땀이 눈을 타고 흘러내렸다.
중간에 잠깐 쉬는 시간, 농부가 삶은 옥수수를 들고 왔다.
봉사자들에게 하나씩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거라도… 밭에서 건진 거예요."
봉사자들이 그 옥수수를 받아 들었다. 아무도 뜨겁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먹었다. 그 맛이 어떤 맛이었는지는 말로 할 수 없다. 그냥 짠맛이 났다.
물이 빠진 마을회관은 창고처럼 변해 있었다. 주민들이 황급히 피신하면서 이것저것 옮겨두었던 살림들이 뒤엉켜 있었고, 바닥에는 진흙이 굳어 있었다. 냄새가 났다. 오래된 공간이 물을 먹으면 내는 그 퀴퀴하고도 쓸쓸한 냄새.
봉사자들이 마을회관을 쓸고 닦았다. 무거운 짐을 옮기고, 썩은 것들을 버리고, 쓸 수 있는 것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세탁봉사가 이루어졌다.
세탁기를 가져온 봉사자들이 주민들의 옷가지와 이불을 받아 빨기 시작했다. 급하게 피신하느라 빨지도 못한 채 내버려 둔 빨래들이었다. 깨끗하게 세탁되어 돌아온 옷을 받아 든 한 할머니가 그것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으셨다.
"이 냄새다. 깨끗한 냄새. 이게 이렇게 좋은 거였나."
세탁 한 번이 그토록 큰 위로가 되리라고는, 솔직히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삶의 기본이 무너진 자리에서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깨끗한 옷, 따뜻한 밥, 잠을 잘 수 있는 공간. 그 작은 것들이 사람을 사람으로 돌아오게 한다는 것을, 나는 그 현장에서 다시 배웠다.
지휘를 하고, 조율을 하고, 안전을 챙긴다. 그것은 맞다. 하지만 내가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한 일은 사실 따로 있었다.
봉사자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는지, 지쳐서 멈춘 사람이 없는지, 감당하기 어려운 장면 앞에 혼자 서 있는 사람이 없는지. 관리자는 현장을 보는 동시에 사람을 봐야 한다. 피해 주민만이 아니라, 함께 온 봉사자들도 돌봐야 하는 것이다.
재난 현장은 체력보다 마음이 먼저 소진되는 곳이다.
눈앞의 참상을 보고, 사람들의 절망을 받아내고, 그래도 웃으며 일해야 하는 봉사자들. 나는 그들 곁을 수시로 오가며 짧게 말을 건넸다.
"잘하고 있어요. 잠깐 쉬어요. 물 마셨어요?"
별것 아닌 말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 말을 들으면 다시 삽을 들 힘이 났다고, 나중에 봉사자들이 말해주었다.
그들은 각자의 삶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직장도 있고, 가족도 있고, 해야 할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연락이 오면 달려왔다.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올린 지 몇 시간도 안 되어 정원이 찼다. 교통비도 없고, 수당도 없고, 심지어 점심 한 끼를 챙겨드리기도 어려운 현장이었지만.
왜 왔냐고 물으면 봉사자들은 대개 이렇게 말했다.
"그냥요. 그냥 가야 할 것 같았어요."
그 '그냥'이라는 말이 나는 참 좋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마음. 계산하지 않은 움직임. 그것이 자원봉사의 가장 순수한 형태라고 나는 생각한다.
피곤함도 있었고, 벅참도 있었고, 말로 꺼내기 어려운 감정들도 있었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현장을 바라보며 각자 무언가를 마음에 담아 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침묵이 좋았다.
재난 현장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겸손이다. 내 일상이 얼마나 평범하게 유지되고 있는지, 그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 가장 생생하게 일깨워주는 곳이 재난 현장이었다.
봉사자들은 그곳에서 힘을 보탰다. 하지만 동시에 그곳에서 무언가를 얻어 왔다. 감사함을, 연대감을, 그리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마지막으로 영덕을 떠나던 날, 강구항 어귀에서 그 할머니를 다시 뵀다.
깨끗하게 빨아 넌 빨래가 마당에 가득 널려 있었다. 집 안도 한결 정돈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손을 흔드셨다. 봉사자들도 버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
그 장면이 오래도록 뒷유리에 남았다.
재난은 많은 것을 앗아간다. 하지만 그 자리를 채우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름도 모르고, 다시 만날 기약도 없지만 가장 힘든 순간에 곁에 있어준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있는 한,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다음 화에서는 '집을 잃은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재난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어루만졌는지, 복구 너머 위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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