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손이 진심이 되는 순간

by 박정민

No-108

<브런치북> 자원봉사관리자의 현장 에세이


04. 세 번째 스토리


'기업의 손이 진심이 되는 순간'


기업 봉사단이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한숨이 먼저 나왔다.


버스 두 대 분량의 인원, 맞춤 제작 단체 티셔츠, 현수막, 그리고 사진 찍는 담당자. 정해진 두 시간 안에 '봉사했음'을 증명하고 돌아가는 일정. 매년 반복되는 그 풍경이 어느 순간부터 낯설지 않게 되었다는 게 오히려 더 문제였다.


봉사가 행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 안에서 코디네이터로 움직이면서도 늘 무언가 불편했다. 봉사를 받는 어르신들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반갑다기보다는 어색한 얼굴,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어쩔 줄 모르는 눈빛. 화면 속에서는 웃고 있었지만, 카메라가 치워지면 그 공간에는 묘한 공허함이 남았다.


나는 그것을 바꾸고 싶었다. 기회는 뜻밖의 곳에서 왔다.

달성군 공단에 자리한 한 중견 제조업체의 사회공헌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매년 해오던 방식이 영 마음에 걸린다며, 올해는 다르게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그분과 만나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이 먼저 물었다.


"저희가 진짜 필요한 곳에 쓰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질문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꿨다.

나는 그동안 쌓아온 현장 데이터를 꺼내놓았다. 어떤 기관이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봉사가 일회성으로 끝나고 어떤 봉사가 실제로 남는지. 숫자가 아닌 이야기로 풀었다. 그분은 받아 적었다. 한 줄도 빠뜨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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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획된 결연 기관은 지역아동센터였다.

방과 후 갈 곳이 없는 아이들, 공부를 봐줄 어른이 없는 아이들, 저녁밥을 혼자 먹는 아이들이 모이는 곳.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센터 선생님 몇 분이 애쓰고 계셨지만 손이 늘 부족했다.


기업 봉사단은 일단 규모를 줄였다. 버스 두 대 대신 한 대, 인원은 스무 명 안팎으로. 그리고 하루짜리 행사가 아닌 1년을 함께하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한 달에 두 번, 정해진 요일에 정해진 얼굴들이 찾아오는 것. 그 일관성이 가장 중요했다.


처음 방문날, 아이들은 낯선 어른들을 경계했다.

어떤 아이는 구석 자리를 고집했고, 어떤 아이는 일부러 딴청을 피웠다. 봉사자들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어디까지 다가가도 되는지 몰라 머뭇거렸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색함도 함께 겪어야 진짜 관계가 시작되는 법이니까.


두 번째 방문부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봉사자들이 아이들 옆에 나란히 앉아 숙제를 들여다봤다. 수학 문제를 함께 풀고, 받아쓰기 연습을 도와주고, 영어 단어를 같이 외웠다. 선생님처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형처럼, 누나처럼, 삼촌처럼 옆에서 함께 씨름하는 방식이었다.


공장 현장직 출신의 한 봉사자는 수학을 썩 잘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문제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다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나 이거 잘 모르겠는데, 우리 같이 풀어볼까?"


아이가 빵 터졌다. 그리고 오히려 더 신나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그 아이는 그 봉사자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다. 자기가 더 잘 아는 어른이 생긴 것이 그 아이에게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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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만 한 것이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은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을 함께 했다. 봉사자 중 레크리에이션 강사 자격증을 가진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아이들을 위해 신나는 게임과 율동을 준비해 왔다. 처음엔 어색하게 서 있던 봉사자들도 아이들의 웃음 앞에서 무장해제가 됐다.


공장에서 매일 진지한 얼굴로 기계를 다루던 어른들이 아이들과 뒤엉켜 박수를 치고, 춤을 추고, 지는 팀이 벌칙을 받으며 까르르 웃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 시간만큼은 어른도 아이도 없었다. 그냥 다 같이 신나는 사람들이었다.


센터 선생님이 내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저 아이는 원래 웃는 법을 잊은 것 같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배꼽을 잡고 웃었어요."


나는 그 말을 수첩에 받아 적었다. 숫자로는 절대 환산할 수 없는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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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자 기업 봉사단은 특별한 날을 준비했다.

어린이날이었다. 회사 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모금을 했다. 총무팀, 영업팀, 생산팀 할 것 없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봉투를 내밀었다. 모인 금액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담당자가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 좋아하는 것들을 미리 파악해 두었고, 그에 맞는 선물을 골랐다.


선물을 받아 드는 아이들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받아본 적 없는 선물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아이, 포장지를 뜯지 못하고 한참 안고만 있던 아이, 고맙다는 말을 꾹 삼키고 뒤돌아서던 아이. 그 뒷모습들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선물의 크기가 아니었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이 그 아이들에게 진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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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되면 기업 봉사단은 또 한 번 변신했다.

이번엔 산타클로스였다. 붉은 산타 의상을 입은 어른들이 선물 보따리를 들고 센터 문을 두드렸다. 아이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철든 척하던 큰 아이들도 그날만큼은 눈이 동그래졌다. 산타로 변신한 공장 아저씨들은 서툰 호호호 소리를 내며 아이들 앞에 무릎을 꿇고 선물을 건넸다.


아이들이 속삭였다.


"산타 진짜다."


그 말을 들은 산타 아저씨의 눈가가 붉어졌다.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산타가 필요하듯, 어른들에게도 산타가 되어볼 기회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순간, 봉사는 주는 것과 받는 것의 경계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아이들과의 시간이 깊어지는 동안, 기업 봉사단의 손길은 마을 전체로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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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봄, 오래된 마을 입구 담벼락이 문제였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곰팡이와 얼룩으로 뒤덮인 회색 벽. 지나다니는 주민들도 어느 순간부터 그 벽을 그냥 지나쳤다. 익숙해지면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나는 문득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지역 대학 미술대학 학생들과 연계해 보면 어떨까. 기업의 재정 지원과 대학생들의 재능이 만나면, 그 낡은 벽이 마을의 자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담당자에게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분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너무 좋은데요. 바로 추진해 봅시다."


미대생 열다섯 명이 붓을 들고 마을로 왔다. 그들은 그냥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었다. 먼저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이 마을의 오랜 기억은 무엇인지, 어떤 풍경이 이 동네를 이 동네답게 만드는지. 그 이야기들을 담아 밑그림을 그렸다.


사흘에 걸친 작업이었다. 기업 봉사단이 페인트 준비와 잔일을 맡고, 학생들이 붓을 잡았다. 마을 골목에 꽃이 피어났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 논밭의 풍경,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 회색이었던 벽이 색깔을 되찾았다.

완성된 날 아침, 가장 먼저 나오신 것은 팔순의 할머니셨다.


지팡이를 짚고 벽 앞에 한참을 서 계셨다. 그러더니 벽화 속 논밭 풍경을 손끝으로 가만히 짚으셨다.


"우리 마을이 이렇게 예뻤구나."


그 한마디에 옆에 서 있던 미대생 한 명이 고개를 숙였다. 울지 않으려는 것이 역력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낡은 벽 하나가 마을의 기억을 담은 캔버스가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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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여름, 봉사단은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마을 어르신들이 모이는 그 공간에는 오래된 살림들이 가득했다. 고장 난 선풍기, 화면이 흐릿해진 텔레비전, 잡음이 심한 라디오. 고쳐달라는 말을 꺼낼 곳도 없어 그냥 두고 쓰거나 아예 포기한 물건들이었다.


봉사단 중 전기·전자를 다루는 기술직 직원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공구 가방을 들고 마을회관 마당에 펼쳐놓은 수리 부스는 순식간에 북적였다. 어르신들이 고장 난 전자제품을 하나씩 들고 나오셨다. 오래된 선풍기, 다리미, 전기밥솥, 심지어 오래된 라디오까지.


직원들은 한 분 한 분을 앞에 앉혀놓고 차근차근 살폈다.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쳤다. 수리가 어려운 낡은 텔레비전과 선풍기는 기업이 미리 준비해 온 새 제품으로 교체해 드렸다. 새 텔레비전이 마을회관 벽에 걸리던 순간, 어르신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이고, 이렇게 큰 거 처음이네."


그날 오후 마을회관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끌벅적했다. 새 텔레비전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으신 어르신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봉사자들은 어르신들 틈에 끼어 함께 화면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그것은 수리 봉사가 아니었다. 오래 닫혀 있던 마을회관의 공기가 다시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한 어르신이 봉사자의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자네들 덕에 우리 영감 생각이 나네. 이런 거 항상 고쳐주던 사람이었는데."


봉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그 손을 꼭 쥐었다. 기업 봉사단의 활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달성군 공단 일대 환경정화 활동도 정기적으로 이어갔다. 공단이 자리한 지역 특성상 도로변에 쌓이는 분진과 쓰레기가 주민들의 오랜 고민거리였다. 봉사단은 이른 아침 작업복 차림으로 나와 묵묵히 골목을 쓸고, 불법 투기 쓰레기를 정리하고, 화단에 꽃을 심었다. 환경 정화와 함께 쓰레기 분리배출 안내, 불법 투기 금지 캠페인도 병행했다. 직원들이 직접 홍보물을 들고 주민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엔 주민들이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 서너 번 반복되자 자연스럽게 변화가 생겼다. 물을 내다 주는 이웃이 생기더니, 나중에는 빗자루를 들고 함께 나오는 주민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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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봉사가 마중물이 되어 마을 공동체를 건드린 것이었다.


어느 해 연말,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이 직접 준비한 감사 공연이 열렸다.

노래를 부르는 아이, 율동을 선보이는 아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감사 편지를 읽는 아이. 봉사단 직원들은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그 공연을 지켜봤다. 공연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우는 건 아이들이 아니었다. 어른들이었다.


나중에 한 직원이 내게 말했다.


"1년 동안 봉사하러 간다고 생각했는데, 끝나고 보니 제가 더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가슴이 꽉 찬 느낌이에요."


가슴이 꽉 찬 느낌.

나는 그것이 봉사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연봉으로도, 어떤 포상으로도 채울 수 없는 자리. 누군가의 삶에 진심으로 닿았을 때만 채워지는 그 자리를, 봉사는 조용히 채워준다.

기업의 손이 진심이 되는 순간은 거창하지 않다.


낡은 벽 앞에서 어르신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순간. 고장 난 선풍기를 묵묵히 고쳐드리는 순간. 산타 의상을 입고 아이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 수학 문제를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순간. 이른 아침 빗자루를 들고 골목에 나서는 순간.


그 모든 순간들이 쌓여, 기업은 지역사회의 이웃이 된다. 그리고 그 이웃이 있는 마을은, 조금 더 살만해진다.

나는 그 변화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16년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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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서는 '재난 현장에서 나는 처음으로 울었다' — 재난 속 자원봉사 현장의 24시간, 그 생생한 기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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