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01
<브런치북> 자원봉사관리자의 현장 에세이
마을이 죽어간다는 것은 한 번에 알아채기 어렵다.
담벼락에 금이 가듯,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 어느 날 보면 골목에 아이들 소리가 없고, 경로당 앞 평상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들이 하나둘 줄어있고, 오래된 슈퍼 셔터가 내려간 채 올라오지 않는다. 그제야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동네가 많이 변했네."
변한 것이 아니었다. 비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처음 그 마을에 발을 들인 것은 어느 가을이었다. 자원봉사센터와 연계된 소규모 봉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독거노인 안부 확인, 환경 정비, 말벗 봉사. 흔하디흔한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봉사자 열두 명을 이끌고 그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나는 몰랐다. 그 골목이 나를 그토록 오래 붙잡아 둘 줄은.
첫 방문에서 만난 할머니는 문을 잘 열어주지 않으셨다. 인기척이 나도 커튼 너머로 그림자만 비쳤다. 봉사자 중 한 명이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십대 초반의 여대생이었는데, 서툴지만 진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저 무서운 사람 아니에요. 그냥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요."
한참 후에 문이 조금 열렸다. 할머니는 틈 사이로 그 여학생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셨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문을 조금 더 여셨다.
나는 그 장면을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지켜봤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어떤 매뉴얼에도, 어떤 교육 과정에도 없는 방식이었다. 그냥 앉아서, 기다리면서, 말을 건네는 것. 그게 전부였는데, 그게 문을 열었다. 프로그램은 계속됐다. 몇 주가 지나자 변화가 생겼다.
봉사자들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 "이번 주에 또 가도 되나요?" 공식 일정이 없는 날에도 혼자 마을을 찾아가는 봉사자가 생겼다. 할머니 댁 가는 길에 귤을 사 들고 가는 청년, 경로당 앞마당을 쓸다가 어르신들과 같이 앉아 점심을 먹고 오는 주부.
나는 슬며시 손을 놓기 시작했다.
원래 관리자는 프로그램을 이끌어야 한다. 일정을 짜고, 인원을 조율하고,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 만큼은 내가 앞에 나설수록 오히려 무언가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반대로 내가 뒤로 물러서면, 봉사자들이 스스로 자라났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역할은 이들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 마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오히려 봉사자가 아니었다.
이름은 박씨 아저씨라고만 부르겠다. 환갑이 갓 넘은 분으로, 젊어서는 용접 일을 하셨고 퇴직 후 마땅히 할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처음엔 봉사자들이 골목에 들어오는 게 탐탁지 않으신 눈치였다.
"이런 거 해봤자 뭐가 달라지겠어요."
대놓고 말씀하신 적도 있었다. 나는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냥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봉사자들이 골목 담벼락에 페인트칠을 하는 날, 박씨 아저씨가 슬그머니 나오셨다. 솔을 들고. 아무 말 없이 옆에 서서 함께 칠하기 시작하셨다. 봉사자들이 눈치 없이 좋아하며 말을 걸었고, 아저씨는 퉁명스럽게 받아쳤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셨다.
그게 시작이었다.
한 달 후, 박씨 아저씨는 마을의 비공식 관리자가 되어 있었다. 독거 어르신들 댁 보일러가 말썽이면 먼저 들여다봐 주시고, 봉사자들이 오는 날이면 마을 어귀에 나와 계셨다. 심지어 새로 오는 봉사자들에게 "이 집 할머니는 귀가 좀 어두우시니까 크게 얘기해요"라고 먼저 귀띔을 해주시기도 했다.
봉사자가 아니었다. 봉사자보다 더 깊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주민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마을에 주민 자율 봉사 모임이 생긴 건 그로부터 1년쯤 후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다섯 명으로 시작했다. 박 씨 아저씨, 그리고 그분이 직접 이웃을 설득해 모아온 사람들. 이들은 외부 봉사자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르신 댁 방문, 골목 청소, 명절 음식 나누기. 크지 않았지만 꾸준했다.
나는 그 모임의 첫 회의에 초대받았다. 허름한 경로당 한쪽에 모여 앉아 어떻게 운영할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무엇이 필요한지, 누가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어떻게 함께 해야 하는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혼자 웃었다.
'내가 한 일이 뭐가 있을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동시에,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햇빛이 들어오도록 옆 가지를 쳐내는 것. 꽃은 스스로 피었지만, 그 자리를 만든 건 나였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그 마을의 주민 모임은 열다섯 명으로 늘어났다. 지역 축제에 자체 부스를 꾸렸고, 이웃 마을의 봉사 모임과 교류를 시작했으며, 어느 해에는 직접 기금을 모아 마을 어르신들 생신상을 차렸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누가 지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살아난 것이었다. 마을이.
박씨 아저씨는 그 모임의 대표가 되셨다. 어느 날 전화를 주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 요즘 아침에 눈 뜨면 할 일이 있어. 그게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요."
나는 전화를 끊고 한참 그 말을 되새겼다. 봉사가 수혜자를 돕는다고 우리는 늘 말한다. 하지만 그 마을에서 내가 배운 것은 달랐다. 봉사는 돕는 사람도 살린다. 아침에 눈 뜰 이유를 만들어준다. 하루를 기꺼이 시작하게 한다.
그것이 공동체의 힘이었다.
자원봉사관리자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이 언제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그 경로당 회의를 떠올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었던 그 자리. 내가 없어도 될 것 같았던 그 순간. 역설적이게도, 그게 내가 가장 잘 해낸 날이었다.
마을은 외부의 손으로 살아나지 않는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살아난다. 자원봉사관리자의 역할은 그 알아봄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연결하고, 기다리고, 물러서는 것.
그리고 꽃이 피면, 조용히 웃으면 된다.
멀리서, 혼자.

다음 화에서는 '기업의 손이 진심이 되는 순간' — 형식적인 기업 봉사가 진심 어린 동행으로 바뀌어간 현장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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