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리자인가, 동반자인가

by 박정민

No-94

<브런치북> 자원봉사관리자의 현장 에세이

02. 첫 번째 스토리


'나는 관리자인가, 동반자인가'


처음 명함을 받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자원봉사관리자. 일곱 글자였다. 그런데 그 일곱 글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그때 절반도 알지 못했다. 관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건 알았다. 봉사자를 모집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실적을 보고하는 사람. 그 정도가 내가 그려온 그림의 전부였다.


그 그림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해 겨울, 한 봉사자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십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퇴직 후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봉사를 신청했다고 했다. 서류를 작성하고, 교육을 이수하고, 배치까지 마쳤다. 절차상으로는 완벽했다.


그런데 한 달 후 그분이 다시 찾아왔다.


"저, 그냥 그만하려고요."


이유를 물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분이 말했다.


"봉사하러 갔는데 제가 더 외로워지더라고요."


그 말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분을 적절한 기관에 연결했고, 교육도 시켰고, 모든 매뉴얼을 따랐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분에게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


"왜 봉사를 하고 싶으세요?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셨나요?"


나는 관리는 했지만, 사람을 보지 않았던 것이다. 자원봉사관리자를 영어로 쓰면 Volunteer Manager다. Manager란 관리자다. 그런데 현장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이 단어가 점점 불편해진다. 관리란 결국 무언가를 통제하고 조율하는 행위다. 시스템을 돌리고, 수치를 맞추고, 계획대로 흘러가게 하는 것. 그것이 관리다.


하지만 자원봉사는 시스템이 아니라 마음으로 움직인다. 아무리 잘 짜인 프로그램도, 마음이 빠져나간 봉사자 앞에서는 껍데기가 된다. 반대로 아무리 초라한 현장이라도, 진심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기적이 일어난다. 나는 그것을 수백 번 목격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관리자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해졌다. 대신 이런 질문을 자주 했다.


나는 지금 이 사람 옆에 제대로 서 있는가?


동반자란 말은 거창하지 않다. 함께 걷는 사람. 옆에 있어 주는 사람. 먼저 가지도, 뒤에 처지지도 않고 나란히 걸어가는 사람.


봉사자가 처음 현장에 나가는 날, 떨리는 마음을 알아주는 것. 오래 활동하다 지쳐갈 때 슬쩍 안부를 묻는 것.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어도 커피 한 잔 함께 마시며 "요즘 어때요?" 한마디 건네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동반자의 언어였다.


관리자는 봉사자를 유지시킨다. 하지만 동반자는 봉사자가 스스로 남고 싶게 만든다. 그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크다. 16년 동안 나는 수천 명의 봉사자를 만났다.


그중 가장 오래 활동한 분들의 공통점을 나는 꽤 늦게야 발견했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저를 기억해준 사람이 있었어요."


거창한 이유가 없었다. 처음 왔을 때 이름을 불러준 사람, 힘들다고 했을 때 끄덕여준 사람, 잘했다고 말해준 사람. 그게 전부였다. 그 작은 기억이 10년 봉사를 만들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반성했다. 오늘 내가 만난 봉사자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었는가. 관리자와 동반자. 이 두 역할은 사실 분리된 것이 아니다.


행정이 없으면 현장이 돌아가지 않는다. 기록이 없으면 성장도 없다. 제도와 시스템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는 순간, 우리는 사람을 잃는다.


나는 그 균형을 찾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류 더미 위에서 허우적대다가도, 문득 현장 생각이 나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보고서보다 전화 한 통이 더 급할 때가 있었다. 숫자보다 표정이 더 많은 것을 말할 때가 있었다.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고,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자원봉사관리자를 꿈꾸는 사람에게, 혹은 이미 현장에서 지쳐있는 동료에게 묻고 싶다.


오늘 당신은 어느 쪽에 서 있었나요?


관리자였나요, 동반자였나요?


정답은 없다.


다만 그 질문을 잊지 않는 사람이, 결국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따뜻하게 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태안 바다에서 이름도 묻지 않고 나란히 솔질하던 그 사람들처럼. 관리가 아닌 연대로, 통제가 아닌 동행으로. 그것이 내가 16년 동안 배운 가장 중요한 한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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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서는 조용하던 마을 하나가 자원봉사 네트워크를 통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이야기, '주민이 주인공이 되던 날, 마을이 살아났다'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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