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엄마가 내게 건네신 말이다.
'어릴 때 더 많이 안아주고 그랬어야 했는데, 엄마가 못 그랬어. 더 많이 안아줄걸.'
코끝이 시큰했다. 내가 아이를 낳아 길러 보니,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덜 준 것 같고, 잘 못해준 것 같고, 줘도 줘도 끝이 없구나 싶었다.
우리 집은 스킨십이 많지 않았다. 서로 안아주거나 손을 잡거나 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내가 철이 좀 들고나서, 의도적으로 팔짱을 끼어 본 기억은 있다. 표현하고 싶었다. 부끄럽고 민망해서 말은 잘 못하지만 '난 엄마 아빠가 참 좋아요, 감사해요.' 같은 마음을 드러내고 싶었다. 아빠는 내게 '참 애교 없는 딸'이라며 서운함을 내비친 적도 있었다. 애교 많은 아들을 키우는 지금에 와 돌이켜 보니, 아빠가 얼마나 심심하셨을까 싶다. 무슨 복인지 이제 열두 살이 된 아들은 '엄마 사랑해, 엄마가 참 좋아, 엄마가 제일 예뻐.' 같은 말을 스스럼없이 해준다. 그런 말이 힘이 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어느새 부모님은 일흔을 넘기셨다. 어느 날엔가 엄마가 말했다.
"요즘엔 가끔, 자려고 누우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돼. 좀 무섭더라, 걱정도 되고."
나도 걱정이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아빠가 영영 떠나버리시면 그땐 어떡하지...
그래서 살아 계실 때, 엄마 아빠가 내 곁에 계실 때 조금이라도 더 잘해 드리자고 생각은 하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잊고야 만다. 나 사는 게 빠듯해서, 고달파서 잠깐 뒷전으로 밀어내는 거다. 마치 내가 걱정하던 순간은 오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다음에 엄마를 만나면, 꼭, 꽉 안아드려야지.
세상의 모든 부모가 훌륭하지는 않다.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그들과 관련된 기사를 읽거나 사연을 접하면 참 마음이 아프다. 상처받지 않은 어린이들이 상처 주지 않는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을 텐데 싶고, 상처를 받았음에도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았다. 나 역시 열혈 애청자였는데, 동은이에게 첫 번째 가해자였던 엄마 때문에 참 많이 화가 났던 기억이다.
훌륭하고자 노력하는 부모가 세상에 좀 더 많아지기를 꿈꿔 본다. 나 역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한다는 사실을 직면할 때마다 힘에 부치고 좌절하기 일쑤지만, 그래도 자각하고 노력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언젠가 꿈꾸던 그 어떤 것과 비슷하게라도 닮아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