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국내 제약영업 13년 차의 취업부터 현재진행형 생존까지.
나는 13년 차 제약영업사원이다.
10년 넘게 종합병원 제약영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제약영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구나.'이다.
내가 일을 시작한 10년 전에도 '절대 을(乙)', '술을 잘 먹어야 하는 일' 등의 이미지 때문에 제약영업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제약영업사원의 이미지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왜곡된 부분도 있지만 미디어의 그 모습들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변에는 다른 직장인과 같이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직장생활을 하는 유능한 영업사원들이 많다.
특히 외국계 제약회사는 여자 영업사원들도 많고, 최근에는 국내 제약회사도 성별에 상관없이 영업사원을 채용하는 분위기이다. (물론 기업마다 채용비율은 상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황이 외부에는 잘 드러나지 않기에 아직까지도 제약영업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제약영업 또한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보람, 동료애, 고객에 대한 존경심 등의 희로애락이 있다.
쉽게 생각하는 '노애(怒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여기에 있다.
취업사이트에 가면 제약회사 영업직에 지원할지 말 지 고민하는 글이 간간히 올라오는데, 댓글에는 '현업에는 여자 영업사원도 많다. 힘내라!'는 응원의 댓글도 있지만 '힘들 것이다.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보겠다'는 걱정 어린 댓글이 대부분이다.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간다. 성별을 떠나서 제약영업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못 할 일도 아니다.
영업의 'ㅇ'자와도 어울리지 않는 내가, 경력 13년 차가 된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는 걸 보면.
그러니 미리 겁먹고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에서는 직업으로 제약영업을 염두에 둔 사람이 취업부터 실전까지 알아두면 좋을 몇 가지 Tip을 나눠보고자 한다.
취업
제약업계는 이직이 자유로운 편이기 때문에 굳이 특정 기업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취업 시 다음 3가지 사항을 염두에 둔다면 이후 업무 만족도나 경력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좋은 회사에서 시작하라.
여기서 좋은 회사란 탄탄한 제품파이프라인(향후 출시 될 제품 포함), 임금 수준, 복지, 조직 문화 등이 업계 평균 이상 인 곳을 말한다. 이런 곳들은 국내 대기업은 물론이고 다국적제약회사의 한국 지사도 해당된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문화라고 할 수 있다. 조직문화가 경직되고 폐쇄적인 곳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이는 비단 영업직에만 국한된 내용은 아니지만 특히나 영업은 좋든 싫든 외부 고객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심한 편인데 조직 내 분위기까지 수직적이고 고압적이면 오래 일하기 힘들다.
기업의 조직문화는 재직자에게 듣는 것이 가장 자세하고 확실하다. 다만 상당수의 다국적제약회사는 소규모여서 다른 국내 기업에 비해 조직문화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라면 블라인드와 사람인 등 취업사이트의 재직자 후기와 평균 근속연수 등을 참고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많은 기업에 지원하여 면접의 기회를 최대한 많이 가져야 한다. 면접을 통해서도 그 기업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본인과 맞는지 아닌지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공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제약영업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관련 학과를 전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 지식도 중요하지만 책임감, 진정성, 친화력 등의 항목들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물론 취업 후에는 관련 학과 전공자가 제품 이해도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비전공자라도 회사에서 제공하는 제품 교육을 충실하게 받는다면 업무를 수행하는데 문제는 없다. 전공과는 무관하게 제품지식을 숙지하고 이를 고객에게 설명하는 실력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
다양한 경험을 하라.
영업직 지원의 최대 장점은 아르바이트, 인턴, 동아리 등 어떤 경험이라도 자기소개서 및 면접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제약영업의 경우 외부 요인에 의한 영향을 크게 받고, 규제도 많기 때문에 일반적인 영업·마케팅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바꿔 말하면 그렇기에 일반적인 세일즈 및 마케팅 경험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 대학의 홍보대사를 했던 경험이 제약영업직에 합격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대규모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입학 설명을 하고, 내외빈의 학교 투어를 진행했던 경험이 자기 주도성과 책임감 부분에서 점수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직군에 지원할 때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경험 중 리더십, 책임감, 진정성 등을 보여 줄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신입면접
어려운 상황을 기회로 만든 경험을 소중히 하라.
영업은 기회를 찾는 일이다. 영업을 하다 보면 플랜 B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플랜 B가 꼭 거창할 필요는 없지만 동료, 관리자가 납득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본인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무엇인지 가늠하여 당장 실행 가능한 계획부터 제시해 나간다.
이런 역량은 경험으로부터 얻는 것이 크지만, 신입이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일이라도 어려운 상황에서 문제해결 방법을 강구하고 그를 통해 좋은 결과를 냈던 경험을 자꾸 되새기며 지원서 작성과 면접을 준비하기를 추천한다.
세일즈 시연 면접을 준비하라.
내가 신입사원 면접을 봤던 때가 거의 13~4년 전이기 때문에 아직도 면접에서 세일즈 시연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에 내가 면접을 봤던 모든 제약회사는 면접 질문에 세일즈 시연이 있었다.
눈앞에 놓인 음료수, 과자, 책상, 의자 등을 면접관에게 판매해 보라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된다. 머릿속은 '무슨 말을 하지? 어떻게 팔지?' 같은 생각으로 복잡한데 설상가상으로 오래 고민할 시간도 없다.
하지만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다. 이는 위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으로 이 질문의 의도는 순간적인 상황판단과 자신감을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일단 사물의 특징 몇 가지만 염두에 두고,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답변을 시작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태도이다.
중요한 것은 배짱이다.
면접에서 중요한 것은 배짱이다. 배짱은 자신감과 같다고 생각되기 쉽지만 이 둘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자신감은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이라면 배짱은 조금도 굽히지 아니하고 버티어 나가는 성품이나 태도를 뜻한다.
나는 유독 임원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오랫동안 업계에서 일한 임원들의 눈에는 내가 영업을 하기에 너무 약해 보였던 것 같다. 한 번은 면접관이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이 일은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서 OO 씨와는 잘 맞지 않을 것 같다. 다른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라고 까지 했다.
물론 그분께서는 선한 의도로 말씀하신 것이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동생 같으면 날 뽑아줘야지… 왜 저런 말씀을 하시는 거지!!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하고 다소 건방진 생각을 했었다. 아마 그때부터 오기인지, 배짱인지가 생겼고, 그다음 면접을 본 회사에 바로 최종합격을 하였다.
일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고객의 제안을 거절하거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 어색해진 고객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은 영업사원의 몫이다. 우리는 종종 찾아오는 이런 어려운 상황을 버텨내야만 한다. 그러니 면접에서부터 배짱 있는 부분을 보여준다면 합격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경력직 면접
경력사항을 포트폴리오로 작성하여 관리해야 한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본인의 성과를 정리해서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영업의 경우 실적은 명확하게 수치로 기록되는 반면, 그 실적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정량적으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업무 내용을 세심히 기록하고, 정성적인 노력을 최대한 구체적인 숫자로 변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담당하고 있는 제품에 대한 지식이 많아야 한다.
제품 지식이 많을수록 면접관의 질문에 자신감 있게 답할 수 있고,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전문가다운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
또한, 설사 면접관들이 그 제품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에도 때에 따라서는 꽤 자세한 상황을 가정하고 제품 설명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공백이 1년 이상 되던 시기 봤던 면접에서 이전에 담당했던 제품을 고객에게 설명하는 시연을 요청받았다.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지만, 다음 순간 나는 퇴사 이후 까맣게 잊고 지냈던 제품의 상세 내용을 저도 모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암기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동안 내가 담당했던 제품의 핵심 메시지는 자다가 일어나서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반복했었다. 그것이 면접에서 자연스레 튀어나온 것뿐이었다. 더불어 면접관들 눈에는 이 모습이 굉장히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보였다고 한다. 이처럼 제품에 대한 정보 숙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회사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파악하자.
채용공고를 낸 배경과 채용을 통해 회사가 기대하는 바를 생각하며 면접을 준비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냈다고 해도 그것이 이직할 회사에서 원하는 역량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인맥관리가 필요하다.
경력직으로 이직을 염두하고 있다면 평소 인맥관리에도 신경 써야 한다.
경력직 채용을 하는 이유는 현업에서 즉시 일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업에서는 신입 채용과는 달리 경력직 채용의 경우 지인 추천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제약업계는 다수의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해 왔다. 구조조정이 자연스러운 다국적제약회사는 물론 상당수의 국내 제약회사에서도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반면에 사업영역 확대로 인해 경력직 채용을 진행하는 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직 환경이 예전에 비해 녹록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주변의 추천으로 이직과 재취업의 기회를 잡거나, 경쟁자 간의 실력이 비슷하다면 아는 이가 있으면 합격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아무래도 평판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업계는 자의든 타의든 이직을 고려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그렇다면 인맥관리 잘해 놓는 것 또한 경쟁력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