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스를 샀다는 건, 시간과 친해지겠다는 뜻이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패션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다들 부잣집 자녀일까?
나와 월급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을 텐데,
그들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비싼 코트를 들이고,
신발은 꼭 ‘최신’으로 갈아 신고,
화장품마저 제철 과일처럼 제때 갈아 바른다.
그런데 묘하다.
그렇게 ‘새로운 것’에 진심인 그녀들이
청바지 앞에서는 유독 ‘낡은 것’에 찾는다.
해진 무릎, 닳아버린 포켓, 감쪽같이 사라진 택(Tag),
햇볕에 빼앗긴 인디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래서 더 멋있는거야”
만약 그녀들의 옷장을 ‘파일 정렬’로 과거순으로 쭉 늘어놓는다면,
맨 앞자리는 거의 예외 없이 빈티지숍에서 건져 올린 오래된 리바이스가 차지할 것이다.
새 청바지를 들이기 전, 빈티지 하나쯤 ‘발굴’하는 건 이 세계의 불문율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언제나
리바이스.
더 정확히 말하면, 501일 확률이 높다.
유행의 파도를 몇 번이고 건너온, 청바지 세계의 오리지널이니까.
회사에서 청바지 얘기가 나왔다.
“요즘 청바지 하나 사려는데, 뭐가 좋을까?”
평화로웠던 대화는 순식간에 청바지 대토론으로 번졌다.
“무조건 아크네(ACNE)지.”
“아니, 청바지는 무조건 리바이스야.”
결국 소셜미디어 투표까지 갔고,
리바이스는 압승했다.
리바이스를 이길 수 있는 건 리바이스뿐이었다.
놀라운 건,
도쿄 여자들 중 열 명이면 아홉은 이미 리바이스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 대부분이 ‘빈티지’다.
그녀들은 대미지가 심할수록 눈빛이 반짝인다.
단추 채움선이 풀려 실밥이 삐죽삐죽 튀어나와도,
심지어 뒷주머니가 통째로 사라져도,
“그래서 예쁘잖아.”라고 말한다.
마치 결점이 아니라 ‘개성’이라도 되는 양.
리바이스는 어쩐지 명작 회화를 닮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값은 오르고,
누군가의 손길과 세월이 켜켜이 쌓일수록 깊이가 더해진다.
요즘 수많은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리바이스와 협업을 해도,
가장 높은 가격표는 결국 ‘가장 오래된 리바이스’에 달린다.
뉴 셀린보다 올드 셀린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리바이스도 오래될수록 더 특별해진다.
한국에서 “청바지 뭐 살까?”라고 묻는다면,
리뷰 많은 쇼핑몰 제품부터, 에잇세컨즈, MOTHER, 토템, LEE,
가끔은 ‘큰맘 먹고’ 샤넬까지 온갖 대답이 쏟아질 것이다.
하지만 도쿄에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열에 아홉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리바이스. 그리고, 당연히 빈티지.”
마치 ‘그 외의 답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찾기 어렵잖아?”
“그래서 더 매력 있는 거지.”
빈티지 리바이스는 사는 게 아니라, ‘발굴’하는 거다.
그래서 작은 셀렉트숍의 골목 안쪽까지,
마치 보물 지도를 따라가듯 기꺼이 헤맨다.
일본의 리바이스 사랑은 다른 나라들이 흉내 내기 어려운 경지다.
이 나라는 오래된 것에 시간을 덧입히고,
그 안에서 ‘새로운 멋’을 길어 올리는 데 천부적이다.
그래서 나도 가끔 상상한다.
이 리바이스를 가능한 오래, 가능한 많이 입어서,
천이 얇아질 만큼 닳게 만든 뒤에
언젠가 내 딸에게 조용히 건네는 순간을.
그건 아마 청바지가 아니라,
시간과 이야기, 그리고 나라는 사람의 한 조각을 물려주는 일일 것이다.
마치 평생 우상향만 하는 몇 안 되는 주식처럼.
해가 지날수록, 가치가 오르는 옷.
그게 리바이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