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포크는 벤토 안에 있다 - ‘식생활의 격’

벤토라는 이름의 라이프스타일

by Asparagus


런웨이는 없지만, 사무실 책상 위로 펼쳐지는 천으로 감싼 벤토박스가 무대다.

그 천을 풀어내는 순간, 마치 명품백의 더스트백을 여는 기분이 든다.


뭐가 들어 있을까. 오니기리? 다마고야키?

하얀 쌀 위에 곱게 놓인 우메보시?

일본 여자의 벤토에는 절제와 미학이 공존한다.


밥알은 군인 대열처럼 가지런하고, 반찬의 색은 색채이론 교과서처럼 정확하다.

빨강, 노랑, 초록—토마토, 계란말이, 시금치 오히타시.

심지어 볶음채소마저 ‘기름 광택’은 불허, ‘신선함의 윤기’만이 허락된다.

수채화 화가가 마지막 붓질에서 물감을 덜어내듯 미묘하게 조율된 세계.


나는 종종 그 도시락을 들여다보다가,

‘나도 저런 벤토를 들고 다니는 여자… 될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하지만 상상은 늘 부엌문 앞에서 멈춘다.

아침의 나는 여전히 덜 깬 상태고,

내 장기들은 이불 속에서 출근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오늘도 콘비니산 오니기리와 간편 미소시루를 꺼낸다.

(아주 가끔 오징어짬뽕 컵라면도.)

그게 나의 현실, 너무나 한국적인 ‘파워 로우 메인터넌스 벤토’다.


남편 도시락까지 싸주는 일본 여자를 볼 때면,

아, 괜히 한국 남자들이 일본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던 게 그냥 농담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

그리고 제일 부러운 사람은

여전히 엄마표 도시락을 들고 출근하는 사람.


도시락은 단순히 밥과 반찬을 담는 게 아니다.

‘당신의 오늘을 내가 챙긴다’는 마음을 담는 일이다.

그 마음이 참으로 어여쁘다.


게다가 작은 메모 한 장이라도 얹혀 있다면?

그건 이미 식사가 아니라 행복 패키지다.

뚜껑을 여는 순간, 밥 냄새와 함께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이 확— 퍼져나간다.


우리는 먹어야 살지만, 어떻게 먹느냐가 우리를 만든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동작으로 자신을 챙기는 작은 의식.

그게 도시락의 힘 아닐까.


한 번은 회의실에서, 옆자리 디자이너가 벤토를 꺼냈다.

천을 풀기 전부터 이미 ‘이건 나의 오후를 완성할 소품’이라는 기운이 감돌았다.

젓가락집에서 젓가락이 빠질 때의 ‘사락’ 소리,

대나무 뚜껑에서 은근히 피어오르는 향기.

그건 거의 킨포크 잡지의 정물 페이지 같았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그녀는 두 손을 모아 “이타다키마스”라고 중얼거렸다.

뚜껑을 여는 순간, 시금치 츠케모노의 초록 향과

계란말이 속 은근한 단내가 뒤섞여 공기 속에 번졌다.


그녀는 계란말이 한 조각을 천천히 입에 옮겼다.

뭔가 다른 식생활의 격이 느껴졌다.


그녀는 집에서 우버잇츠를 시켜 먹을때도,

예쁜 도자기 그릇에 옮겨 담아,

테이블보 위에 앉혀놓고 먹을 것 같다.


언젠가는 나도—
브로콜리의 위치를 2밀리미터 옮기며 점심을 시작할 날이 오겠지.
지금은 그저, 컵라면의 파 말린 건더기를
2밀리미터 건져내는 게 전부지만.


그 차이는 단순히 ‘식사’와 ‘식생활’의 차이다.
그리고 , 그 미세한 간극이
내일의 나를 조금 더 다르게 만든다는 걸 알기에—


나도 벤토 싸는 여자가 될 것이다.

올해는 꼭.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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