清水の舞台から飛び降りました― 일본인들의 ‘큰맘 먹은 소비’에 대하여
“清水の舞台から飛び降りました.”
(기요미즈 무대에서 뛰어내렸어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슨 비장한 선언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뛰어내리다니. 그것도 무대에서.
누가, 어디서?
그렇게 물으니, 옆자리 선배가 웃으며 설명해줬다.
“기요미즈데라 알아? 교토에 있는 절.
그 절에 유명한 ‘무대’가 있어. 거기서 뛰어내리는 각오로 뭘 샀다는 뜻이지.”
그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지만,
속으로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싶었다.
학생 시절, 내게 ‘기요미즈급’ 소비란 먼 나라 이야기였다.
옷은 ZARA나 COS로 충분했고,
기껏해야 오늘은 비싼 커피를 마셔볼까 말까 고민하는 수준이었다.
굳이 무대에서 뛰어내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런데, 입사하고 나서 달라졌다.
연말 회식 자리에서 ‘올해의 BEST BUY’라는 주제로 대화가 오갔다.
가방, 시계, 코트.
브랜드 이름들이 바람처럼 스쳐 갔다.
누군가 농담처럼 말했다.
“나 이번엔 기요미즈 무대에서 네 번은 뛰어내렸어.”
다들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건가,
아니면 다 재벌집 막내딸인가.
‘뭐 저렇게 하이브랜드를 사재끼지?’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엔 어이없었지만, 곧 나도 뛰어내렸다.
명함지갑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덜컥 사버린 에르메스 카드지갑.
가죽 한 장에 한 달 생활비 절반이 증발했지만,
손에 쥔 순간 세상에서 제일 잘나가는 회사원이 된 듯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뛰어내렸다.
기요미즈 무대에서.
아니, 사실은 신주쿠 이세탄 3층 카드 단말기 앞에서.
마르니 로퍼, 더로우 가방, 주말 호텔 스테이까지.
점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짜릿함은 은근 중독성이 있어서,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는 안 사” 대신 “다음엔 뭐 사지?”를 말하게 된다.
물론,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그 짜릿함은 약간의 현타와 동반된다.
물론 실제 기요미즈 무대에는 안전 울타리가 있지만,
사람들 마음속의 무대는 언제나 난간이 없다.
우린 쇼핑백을 들고 돌아나오며,
조금은 후회하고, 조금은 뿌듯해하고,
다음번에는 더 큰 무대를 꿈꾼다.
돈이 떨어질까 봐 겁내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다’는 이상한 고양감에 사로잡힌다.
나도 그랬다. 첫 월급의 마력에 취해
돈이 ‘술술’이 아니라 거의 ‘쏴아—’ 하고 흘러나가던 시절.
경제관념? 당시의 나는 ‘관념’보다 ‘결제’에 더 친했다.
아마 오늘도 누군가는 뛰어내릴 것이다.
긴자의 명품관이나, 시부야의 편집숍에서.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기요미즈 무대에서 뛰어내렸어.”
아주 만족스럽고, 아주 비장하게.
그리고 조금은, 철없이.
그리고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혼과 함께 그 무대를 떠났다.
정확히 말하면, 점프대는 여전히 거기에 있는데,
지갑이 집에 있다.
마치 무대를 바라보는, 은퇴한 곡예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