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는.1

존재는 사라지고

by 이대연

늑대는 문을 열었다.


낡은 문이 소리를 냈다. 날카롭고 기괴한 소리였다. 늑대의 뾰족한 귀가 쫑긋했다.


두개골의 내벽을 긁는 것 같아 신경에 거슬렸다. 어제도 이런 소리가 났던가? 늑대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제는 아마 그랬다 해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녹슨 경첩의 마찰음 따위에 정신을 팔 만치 여유롭지 못했다.


절망으로 멀어버린 눈과 광기에 휩싸인 귀가 외부로부터의 어떤 자극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빛은 떠돌고 소리는 침묵했다.


그러나 다시 오두막을 찾은 지금, 늑대의 신경계는 잘 벼려진 칼끝처럼 예리하고 섬세했다. 불과 하루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늑대는 잠시 망설였다. 문을 열고도 선뜻 들어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문밖에서 들여다본 오두막 안은 어두웠다.


검고 습한 공기가 코끝에 느껴졌다. 건포도 같은 코가 한 번 실룩였다. 심연처럼 깊은 어둠은 은신을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러나 문을 경계로 한 빛과 어둠의 구분이 지나치게 명확했다.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식충식물의 포낭 같았다.


은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소멸에 가까워 보였다. 늑대는 진저리쳤다. 도무지 어둠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총성은 먼 곳에서 울렸다. 새들이 요란스럽게 날아올랐다. 늑대는 소스라치며 주위를 경계했다.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고 커다란 눈에 금세 핏발이 섰다.


늑대는 대기의 어떤 미세한 진동이라도 감지하려는 듯 귀를 세웠다. 저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또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다시 새들이 날아올랐다. 앞선 것보다 먼 곳이었다. 사냥꾼들이 서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보내는 신호가 분명했다.


긴장이 느슨해지자 이완된 신경조직의 틈새를 비집고 통증이 밀려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느라 무리하게 다리를 쓴 모양이었다.


총성에 민첩하게 대응하라고 가르쳐준 단 한 번의 경험은 다리에 상처를 남겼다. 총알이 박힌 자리는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심했다.


늑대는 조심스럽게 쪼그려 앉았다. 신발 밑창이 벌어져 발가락이 드러나 보였다. 발톱이 무뎠다. 늑대는 몸을 웅크려 상처를 핥았다.


축축한 피가 혀의 마른 돌기들을 적셨다. 들큼한 피 맛. 늑대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오두막 안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문을 닫자 완벽한 어둠이 늑대를 감쌌다. 늑대는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잠시 동안 늑대는 더할 수 없는 불안과 초조에 휩싸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늑대는 극단적 회의와 비약적 가정, 광신적 믿음 사이를 오갔다.


어둠이 가져다준 소멸에 대한 두려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늑대는 자신의 몸조차 확신이 가지 않았다. 의식만 남긴 채 몸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안구와 꼬리, 다리와 몸통과 장기들이 모두 어둠에 녹아내린 것은 아닐까?


늑대는 스스로 몸을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어떤 절박함 속에서 늑대가 찾아낸 것은 고통이었다.


믿음은 순식간에 늑대의 의식을 잠식했다.


찢기고 벌어진 다리의 상처에서 흘러나와 혈류처럼 온몸으로 번져 말초에까지 이르는 그것은, 이미 고통이 아니라 성스러운 구원의 희망이었다.


늑대는 고통만이 자신을 증명해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매달렸다. 온몸의 신경을 집중시켜 충분한 고통을 느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모든 감각이 신성한 고통에 참여하려는 맹신에 들뜨고 부신수질은 성급하게 다량의 아드레날린을 분비했다.


삼 초나 오 초쯤? 길면 십 초쯤? 차츰 어둠이 옅어지고 사물들이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자 믿음은 쉽게 사그라졌다.


늑대는 자신에게 남은 것이 경박한 믿음 후의 허탈감과 무분별하게 분비된 호르몬의 잔여물들뿐임을 깨달았다.


후회가 짧은 신음이 되어 흘러나왔다.


실내는 어지러웠다. 옆으로 넘어진 식탁과 시트가 찢긴 침대, 바닥에 뒹구는 깨진 식기들, 불기 없는 벽난로, 그리고 한 병의 포도주와 비스킷을 담았던 바구니….


그것은 단순한 물질적 풍경이 아니라 지나친 시간의 단면이었다.


늑대는 자책했다. 이곳을 향해 뛰는 게 아니었다. 기왕 이곳까지 왔다면 그냥 지나쳐야 옳았다.


어쩌면 문틈을 통해 엿본 어둠이 늑대를 안심시켰는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것이 은폐되고 망각되리라 믿고 싶었는지도.


어둠이 기억까지 가려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했다.


늑대는 몸을 돌려 곧장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오두막을 나가 어디로든 추적자들이 쫓아오지 못할 먼 곳을 향해 뛰고 싶었다.


그러나 뛰는 건 고사하고 걸음을 옮길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늑대는 지치고 피곤했다. 오로지 눕고 싶을 따름이었다.


늑대는 체념한 듯 다친 다리를 끌며 걸음을 옮겼다.


침대는 푹신하고 부드러웠다. 완벽한 안식처럼 편안하였다. 어디선가 할머니의 냄새가 나는 듯했다.


늑대는 눈을 감고 시트에 코를 묻었다. 머리카락 냄새와 화장수 냄새와 옅은 땀내…. 모두 할머니의 체취였다.


할머니도 이 침대 위에서 이처럼 안온했을까.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항아리처럼 굽은 등, 마른 팔과 다리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늑대는 침대로 올 때 발끝에 걸린 털실 뭉치를 떠올렸다. 털실 뭉치는 불안정하게 굴러 침대 밑으로 사라졌다. 한쪽 끝이 대나무 바늘에 연결되어 있었다.


발을 들자 밑창이 떨어져 벌어진 틈새에 낀 대나무 바늘이 딸려 올라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완의 옷가지가 꼬치처럼 꿰여 있었다.


늑대는 돌아누웠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대나무 바늘과 뜨다만 옷가지가 어둠 속에서 흐리게 비쳤다.


할머니는 온종일 안락의자에 앉아 뜨개질이나 바느질을 했다.


늑대가 태어났을 때부터 숲이 있었고 할머니가 있었고 할머니는 그렇게 앉아 털실을 엮거나 얇은 천을 이어 무언가를 만들었다.


늑대의 수명은 십수 년에 불과하다. 할머니는 어쩌면 늑대가 태어나기 몇 세대 전부터 그 안락의자에 앉아 새로 태어나는 어린 늑대들을 보아왔는지 모른다.


어미의 어미 때부터, 어미의 어미의 어미 때부터.


불행히도 늑대는 제 어미를 기억하지 못했다. 문득 돌아보니 숲이었고 혼자였고 존재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있었다.


늑대는 애써 할머니에 관한 생각을 지우며 몸을 뒤척였다. 그 바람에 시트가 찢긴 자리에서 깃털 하나가 풀썩 날아올랐다.


깃털은 금세 가라앉았다.


늑대는 거위나 오리의 깃털일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러자 오리인지 거위인지 모를 어떤 조류의 헐벗고 축 늘어진 몸이 떠올랐다.


풍성한 털이 빠진 몸은 차츰 김이 나고 기름기가 흘러내리고 이내 노릇노릇해졌다.


그렇게 녀석들은 죽고 털이 빠지고 고기가 되고 단백질과 필수지방산 등으로 분해되어 포식자의 몸에 흡수되었을 것이다.


존재는 사라지고 깃털만 남아 비상을 꿈꾸는가….


늑대는 찢어진 시트 틈새로 깃털을 밀어 넣었다.


간간이 울리던 총성이 멈춘 것으로 보아 날이 저문 것 같았다. 소리는 가까워졌다가도 금세 멀어지곤 했다.

그들은 늑대가 도망친 방향을 정확히 짚지 못한 것 같았다.


일몰의 허약한 빛에 의지해 약속한 지점에서 합류한 추적자들은 야영 준비로 바쁠 것이다. 불을 피우고 수프를 끓이고 침낭을 펼 것이다.


그리고 늑대는 새벽이 올 때까지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은?


짧게나마 잠을 청하려던 늑대는 불안해졌다. 시간이 지나면 포위망은 어쨌든 좁혀질 것이다. 늑대는 불편하게 돌아누웠다.


공연한 생각에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늑대는 수를 세기 시작했다. 오리 한 마리, 오리 두 마리, 오리 세 마리….


수를 셀 때마다 오리들이 날개를 치며 낮은 울타리를 넘어왔다. 오리 네 마리, 오리 다섯 마리….


침대를 만드는 데는 모두 몇 마리나 필요했을까. 늑대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열 마리? 아니면 백 마리?


우리에 갇힌 오리들의 목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열 마리쯤 세었을 때 목 없는 오리들이 고약한 소리를 내며 울어대기 시작했다. 오리들은 어느새 새로운 머리를 달고 있었다.


다름 아닌 늑대 자신의 머리였다.


한쪽에서는 오리의 목이 떨어져 나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목이 떨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머리가 돋아났다.


오리의 몸에 늑대의 머리를 한 우스꽝스러운 괴물들은 홰를 치거나 뒤뚱거리며 뛰어다녔다.


어떤 놈은 어흥-, 하는 울음을 울고 어떤 놈들은 꽥꽥, 하고 울어댔다. 혼잡한 우리 안에서 늑대의 의식이 출렁였다.


늑대는 눈을 떴다. 선잠이 들었다 깬 안구가 뻐근했다. 어둠과 피곤이 만들어낸 상상의 늪을 허우적거리다 잠이 든 모양이었다.


꿈 때문인지 늑대는 침대가 더는 푹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털을 뽑아 만든 것만 같아 마음이 껄끄러웠다.

그러나 늑대의 처지가 꼭 그런 모양새였다. 언제 털이 뽑혀 꼬치에 꿰일지 모를 가련한 오리나 다름없었다. 오리, 꽥꽥-.


“이 숲에서는 네가 왕이다.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지.”


늑대는 할머니의 말을 기억했다.


그런 때가 있었다. 도망이 아닌 정복이, 은신이 아닌 다스림이 늑대의 몫이었던 때가.


할머니는 잰 손놀림으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늑대는 할머니가 또 무언가를 만드는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걸 걸친 아이는 해치면 안 된다.”

“그게 뭐죠?”


할머니는 만들다 만 옷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모자가 달린 망토였다.


“빨간 망토란다.”


늑대는 본래 색을 구별하지 못한다. 빨강이든 파랑이든 흑과 백 사이에서 농담으로만 구별되는 잿빛의 일부일 뿐이었다.


할머니 역시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늑대는 의아했다.


“네가 구별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면 구별할 수 있을 게다.”

“왜죠? 왜 그래야 하죠?”


할머니는 들고 있던 망토를 무릎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가여운 표정으로 안경 너머 늑대를 응시했다.


“신발 밑창이 떨어졌구나.”


늑대는 바닥으로 내려와 침대 밑을 살폈다. 어둠에 익숙한 눈에도 털실 뭉치는 보이지 않았다. 팔을 뻗어보았지만 역시 닿지 않았다.


늑대는 털실 뭉치의 행방을 쫓아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늑대는 대나무 바늘에 연결된 실을 따라 털실 뭉치를 찾았다.


실은 침대 밑에서 반원을 그리다 끝나 있었다. 털실 뭉치라고 여긴 것이 사실은 침대 밑을 한 바퀴 돌 정도의 길이도 못 되는 나부랭이에 불과했다.


할머니는 어제 이 짧은 실로 무엇을 뜨고 있었던 걸까? 허망함에 공연히 심술이 났다.


늑대는 대나무 바늘에 꿰인 정체불명의 옷가지에서 신경질적으로 털실을 뽑아냈다. 빠르게 올이 풀렸다. 형체를 잃은 옷이 길게 바닥으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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